새정부 출범이후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편가르기 싸움과 소동을 지켜보고 있으면 과연 우리사회가 진보하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문명을 스스로 파괴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니얼퍼거슨은 그의 책 시빌라이제이션에서 서양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인을 경쟁, 과학, 재산권, 의학, 소비사회, 직업윤리의 6가지로 구분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특히 재산권이 나머지 5가지가 가능했던 기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쟁은 무의미하며 과학, 의학, 소비사회의 발전도 재산권의 기초위에 성립한다. 따라서 인류가 맬더스 트랩을 극복하고 지금의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준 문명발전의 핵심적인 요소가 사유재산의 보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사유재산의 보장은 단순히 내가 살 집과 먹을것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그안에는 내가 노력하면 남들보다 좋은 음식과 집, 멋들어진 좋은 차를 소유할 수 있으며 남들과 불평등하게 많이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든 재산이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항상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질투하는 인간들에게 사유재산이 보장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재산권 보장에 숨어있는 함의는 우리는 불평등을 방조하고 불평등을 권장한다는 것이며 그에 따라 문명이 발전해 왔다면 그동력은 불평등이다.

누구든 노력하면 마음껏 불평등하게 소유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림에 따라 산업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생활수준이 급격히 향상되었음에도 지구가 부양하는 인구는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역사상 어느시대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도래한 것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남보다 더 많은 재산을 불평등하게 소유할 수 있는 탐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게된 이후부터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죄많은 인간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진화, 발전시킴으로써 이기심과 탐욕이 긍정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간 현상을 아담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통찰했으며 기독교도인 나에게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느껴진다. 신의 섭리든 보이지 않는 손이든 인류 문명의 기반에는 남들보다 특별하게 불평등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이 자리잡고 있다.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또한 무의식이 발현되는 언어생활에서 타인들의 불평등을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타인들이 나에게 특별히 잘 대해준다는 것은 타인들이 또 다른 타인들과 나를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성이 나를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대하는 좌절을 겪었던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험생들은 남들과 불평등한 높은 평가를 받아 불평등한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부모의 잔소리는 불평등해지라는 주문이다. 식당주인은 우리가게에 옆집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불평등 심화를 고대하면서 손님들을 기다린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우리제품을 타사의 것들과 불평등하게 많이 사주길 원한다.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항상 그렇게 노력한다. 내가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정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동등하게 평가받을 경우 우리는 왜 나를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대우하냐고 저항한다.

타인들의 불평등한 대우를 바라는 우리들은 악한사람이 아닌 보통사람들일뿐이다. 맡은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은 건전한 인생관이 잘 발현된 결과도 불평등이다. 무명의 연예인이 우여곡절 끝에 인기를 얻게된 성공드라마를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보통사람들은 그들이 노력한 것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이 불평등하게 유명해진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당연시하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룰때는다른사람으로 돌변하여 갑자기 불평등이 악으로 변한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고학력의 직원들중 많은 수가 평등주의적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기업의 제품을 다른 기업의 제품보타 많이 사주는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행동을 하면서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머리속에는 불평등은 악한것이라는 주문을 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불평등한 사람이 되라고 자식들에게 주문하면서 신문과 TV의 빈부격차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분노한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가 일상화 되었을까?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우리나라는 너무 불평등한 것 같아"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널리 확산된 것은 2000년대 이후라고 보여진다. 특히 소위 우파정권의 재집권 이후 세계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를 엮어서 반정부 투쟁의 과정에서 불평등 확산의 주범이 신자유주의가 되어버렸다.

이후 대다수의 미디어가 불평등을 공격하고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참견할때면 불평등은 당연스레 사악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제 드디어 불평등 장사로 재미를 좀 본 집단이 정권을 잡았다. 불평등이 악이라는 태도는 이전 정권도 별차이가 없었지만 청와대 정책실장의 책 제목이 "왜 분노해야 하는가"일 정도면 정권의 성향차이는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이제 정부, 정치권, 미디어, 지식인들이 불평등과의 한판 전쟁을 펼치기 위한 대열을 정비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형마트와 골목상권간에 벌어지는 전쟁터 옆에 이정부는 평등교육이라는 전쟁터를 추가했고 다주택자와 무주택자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자영업자와 이들이 고용하는 직원들간에도 투쟁의 깃발이 올랐다. 

누가 승자가 될지 결과는 분명하다. 인간의 본성에 부합하는 쪽이 승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보다 자연스럽고 인류가 진화해온 방향과 맞는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했음에도 아직도 평등과 불평등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걱정스러운것은 불평등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이 최종적으로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우리를 이만큼 잘살게 만들어준 발전의 동력이 사라지고 타인에게 의존하는 무책임한 시민들이 창궐하며, 문명이 퇴보함에 따라 전체적인 삶의 수준이 낮아지게 되면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사회의 취약한 계층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불평등은 악한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해야한다. 불평등은 인류와 개인들이 진보하기 위한 원동력이고 긍정적인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잘 활용되어야 할 요소이지 무턱대고 배격되고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야 한다. 

빈부의 격차가 늘었다고? 그것이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고 게으른 사람이 더 게을러져서 발생된 결과라면 무슨 문제가 있나? 오히려 우리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는 반증이 될 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기계적인 평등주의적 주장이다. 

당신은 남들과 평등하게 대우받으면서 살고 싶은가? 질문에 답해보라. 당신의 대답이 No 라면 우리는 동지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할 적은 불평등이 아니라 평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