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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ejiweb.com/bbs/zboard.php?id=controvers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17
저는 아래 하루키의 신작 비평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을 구사하는, 이런 스타일의 비평이 무지 맘에 들어요. 그리고 정말이지 아래와
같은 김훈의 문장들 앞에서는 구역질이 나요. 적잖은 나이인데 죽을 때가 다되도 한국일보 기자 시절의 문학소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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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내가 가진 한 움큼이 조선의 전부였다. 나는 임금의 장난감을 바칠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력을 한탄했다.(ꡔ칼의 노래ꡕ 1권: 32면)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ꡔ칼의 노래ꡕ 1권: 71면)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주기를 나는 바랐다.(ꡔ칼의 노래ꡕ 1권: 74면)
2009.09.29 13:57:42
요즘 김훈 소설을 읽고 있는데, 이런 글을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드네요. 저는 김훈씨가 써내려가는 '풍경' 만으로도 읽을만 하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그건 김훈만의 마티에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평론에서는 김훈의 소설 속의 객체가 타자와 소통하지 않고, 비 현실적이라고 말하는데,저는 소설가가 굳이 객관현실을 소설속에 집어 넣어야 할 이유도 없고, 타자와 소통하고 안하고의 문제도 순전히 작가의 선택 범위에 있다고 봐요.
2009.09.29 19:30:19
<하지만 이순신의 거듭되는 이와 같은 고백을 통해 부각되고 있는 것은, 중세의 역사적 맥락이 철저히 무화된 근대적 개인으로서 이순신의 개별적 진실이 강조될 따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임금을 향한 이순신의 고백은 중세의 충이란 사적 맥락에서 좀더 치밀히 구사되어야 한다.>
링크하신 평론(?)중 글을 쓴 사람이 왜 소설을 쓰지 못하고 평론(?)을 쓰야만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여겨
발췌하였습니다. 이런 상상력의 소유자는 과대광고에 대한 평론은 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소설평론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칼의 노래'가 많은 독자들로 부터 찬사를 받은 것은 언문 유착(?)이나 과대선전, '누가누가 좋다카드라" 때문이 아니라
그 특유의 묵직한 문장으로, 이 순신이란 역사적 인물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재 구성해서 소설화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설속의 이순신은 역사책 속의 이순신은 아닌 것을 대부분의 (착각하는 분들이 일부있슴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독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김훈이 무슨 독심법이 있어 이순신의 속 마음을 묘사하겠습니까 ?
작가로서의 업적은 아직 일천한 그에대한 찬사가 지나치게 과장 되었다는 비판에는 동의합니다.
'칼의 노래'는 재미있게 읽었고, 나름의 독특함에도 매우 큰 호감을 가졌습니다만
그 정도의 재미와 호감은 구 효서의 중.단편 소설집을 읽고도 느꼈던 것입니다.
(구효서는 김훈 처럼, 제가 이전에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에 꼽은 것 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만 저는 김훈이 구효서보다 그렇게 띄어난 작가라고는(적어도 아직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황당 할 정도의 과대선전/평가를 퍼뜨리는 것은 비난해도 좋지만
그렇다고 범상하지 않은 작품자체를 마구잡이로 폄하하는 것 역시 황당합니다.
과대평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할까요 ?
끝으로, 저는 훌륭한 소설가들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을 자신이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위해 써먹어도
좋을뿐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의 시각과 작가의 시각은 대게 다르기 마련이며
작가는 상상력이라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우리의 고정 관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기도하기 때문이죠.
링크하신 평론(?)중 글을 쓴 사람이 왜 소설을 쓰지 못하고 평론(?)을 쓰야만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 여겨
발췌하였습니다. 이런 상상력의 소유자는 과대광고에 대한 평론은 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소설평론은 불가능 할 것입니다.
'칼의 노래'가 많은 독자들로 부터 찬사를 받은 것은 언문 유착(?)이나 과대선전, '누가누가 좋다카드라" 때문이 아니라
그 특유의 묵직한 문장으로, 이 순신이란 역사적 인물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재 구성해서 소설화하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소설속의 이순신은 역사책 속의 이순신은 아닌 것을 대부분의 (착각하는 분들이 일부있슴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독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김훈이 무슨 독심법이 있어 이순신의 속 마음을 묘사하겠습니까 ?
작가로서의 업적은 아직 일천한 그에대한 찬사가 지나치게 과장 되었다는 비판에는 동의합니다.
'칼의 노래'는 재미있게 읽었고, 나름의 독특함에도 매우 큰 호감을 가졌습니다만
그 정도의 재미와 호감은 구 효서의 중.단편 소설집을 읽고도 느꼈던 것입니다.
(구효서는 김훈 처럼, 제가 이전에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는 작가이기 때문에 꼽은 것 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만 저는 김훈이 구효서보다 그렇게 띄어난 작가라고는(적어도 아직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황당 할 정도의 과대선전/평가를 퍼뜨리는 것은 비난해도 좋지만
그렇다고 범상하지 않은 작품자체를 마구잡이로 폄하하는 것 역시 황당합니다.
과대평가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할까요 ?
끝으로, 저는 훌륭한 소설가들도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들을 자신이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위해 써먹어도
좋을뿐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의 시각과 작가의 시각은 대게 다르기 마련이며
작가는 상상력이라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를 활용하여 우리의 고정 관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기도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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