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촛불시위에 대한 저의 최초의 예측인 '누적된 사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시민들의 폭발이며 그 것을 문재인 일당이 네다바이한 것'이라는 그 예측에 동조하고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촛불시위를 한번 다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우리나라에는 '네번의 쿠테타가 있었다'라고 정의를 했었고 그 네번의 쿠테타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전문은 여기를 클릭 : 대한민국은 네번의 쿠테타가 있었다)


첫번째 쿠테타는 박정희의 5.16 쿠테타

두번째 쿠테타는 전두환의 12.12 쿠테타

세번째는 2002년 노무현의 인터넷 쿠테타

네번쨰는 조선일보의 폭로전으로 야기된 쿠테타



여기서 쿠테타의 정의를 다시 한번 정의해 보겠습니다. 우선, 소개할 것은 autumnsky님께서 소개하신 최장집의 발언인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 우리사회는 질적으로 더 나빠졌다'.


이 최장집의 발언을 새뮤얼 헌팅턴의 '쿠테타의 정의'와 연결해보면 '박근혜 탄핵은 쿠테타'라는 것입니다.


새뮤얼 헌팅톤은 쿠테타를 여러 종류로 분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회 구성원의 동원율과 정치적 참여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나 정치적 조직력과 제도화의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입니다. 촛불시위는 바로 새뮤얼 헌팅톤이 정의한 쿠테타의 종류 중 하나와 일치합니다.


저는 박근혜의 탄핵의 정당성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탄핵 받아 마땅한 짓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탄핵이 되게된 것은 세월호 참사. 헌재판결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탄핵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실제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여론에 밀려 탄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즉, 탄핵받아야 마땅하지만 탄핵을 받게된 이유가 '조직력과 제도화는 다른' 여론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박근혜는 쿠테타로 탄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시진핑의 시각과 같고 시진핑이 문재인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왕따를 시키거나 푸대접을 받게 된 근본 이유입니다.



2. 시진핑은 오랜 세월동안, 등소평이 그랬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던 시절, 시진핑이 방한을 했을 때 국내 정치인들은 그를 홀대했습니다. 모 국회의원은 시진핑의 면회 요구를 알뜰하게 거부하는 등 푸대접도 그런 푸대접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일하게 시진핑을 대접한 것이 바로 박근혜. 박근혜는 시진핑을 환대했고 푸대접을 받았던 시진핑에게 박근혜는 각별한 사람으로 각인되었겠죠. 그런데 중국과 비지니스 관계 등으로 자주 접촉하는 분들은 중국인들의 특질을 아실겁니다. 중국인은 친구로 만들기에는 참으로 힘듭니다만 일단 친구가 된 후에는 '열과 성을 다해서' 친구 대접(?)을 해줍니다. 뭐, 민족성을 특정 몇몇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오류일수도 있지만 오래 전에 제가 실리콘 밸리에서 조우했던 중국인들.


그 중국인들은 각 회사의 'international sales manger'였고 실적이 없어서 고전하고 있었는데 제가 실적의 물꼬를 터주었었습니다. 그리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저에게 메일로 연락하면서 '뭐, 도와줄거 없냐?'라고 물어보기도 할 정도로 친밀감을 보입니다. 그러니 천대받던 시절에 박근혜의 환대는 시진핑에게는 각별한 것으로 각인이 되었을 것이고 '진짜 친구'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박근혜가 그 특유의 머리 나쁨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또는 박근혜 참모 중 똑똑한 참모가 있었다면, 시진핑을 이용하여 통일을 이룰수도 있었을 것이라는게 재 판단입니다.


3. 시진핑은 우여곡절 끝에 국가주석에 올랐지만 여전히 권력의 기반은 약했습니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장기집권의 틀을 구축했습니다. 이제 시진핑에게 거칠 것은 없습니다. 그 권력이 흔들릴 기반만 제거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얼척없이 중국을 방문해서 촛불시위를 거론합니다. 박근혜의 탄핵의 부당성을 생각하는 시진핑이게 문재인은 '나쁜 놈'인데다가 아직고 중국에서는 거론하는 것이 금기인 천안문 사태를 연상시키는 촛불 시위를 거론하는 문재인을 어떻게 인식했겠습니까?


중국 당국은 아직도 천안문 사태를 '일부 지식인이 주도하는 경거망동 및 선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5.18 학살이 공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외교 용어로 protocol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의전 행사이고 공식적인 명칭은 'diplomatic protocol and etiquette'이라고 하는데 옳던 그르던 그 나라의 정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옳지 못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외교 단절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천안문 사태를 부인하는 중국에 가서 촛불시위를 거론하다니요? 미국의 오바마조차도 홍콩의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 천안문 사태를 언급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천안문 사태 당시의 미국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조차 이런 행동을 취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1989년 6월 4일 천안문 시위를 유혈진압하자 미국은 이에 항의해 유럽 등 서방국가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중국에 외교 제재를 가한 것으로 그동안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미국의 조지 H.W. 부시(Bush) 대통령이 특사를 파견하는 등 미 정부가 중국 정부와 ‘내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폭로됐다.
(기사 전문은 여기를 클릭)


그런데 시진핑에게는 쿠테타로 인식되는, 그래서 자기 친구인 박근혜를 내몬 촛불시위를 주창하는 문재인을 보고 시진핑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문재인이 중국을 방문하고 귀국하자마자 중국이 한국 경계선을 침범하고 한 중국 민박 선박들이 해상경비정을 둘러싸고 몇시간 농성한 것은 우연일까요? 한마디로 '문재인을 인정하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한심함도 이런 한심함이 없습니다. 욕도 아까운 문재인.


4. 만일, 박근혜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그래서 그 결과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한심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시진핑의 적극적인 협조로 햇볕정책은 더욱 더 탄력을 받았을겁니다. 그리고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핵무기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박근혜가 슬기로움을 발휘했다면 남북은 통일이 되었거나 통일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로, 물론 북핵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이 '조중 자동참전'에 대한 해석에서 '참전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해석을 내리는 것이 주류로 바뀌었을 정도로 시진핑에게 북한은 자신의 장기집권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어서 버리는 말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의 핵무장은 중국의 여론을 동요시키고 그로 인한 시진핑의 권력 기반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일본만 해도 핵무장이 가능하도록 개헌을 할 수 있는 의회 의석을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즉,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데 가장 큰 요인은 북한의 핵무장으로서 중국의 시진핑은 비핵을 요구하는 남한이 통일을 하는게, 그리고 통일 후엑도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받아낸다면 그런 통일한국을 알리바이로 일본을 압박하고 그런 일본에의 압박에 미국도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어 시진핑으로서는 골치 썩이는 북한보다 얌전한 통일한국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런 선택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겁니다.



물론, 저의 이런 예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박근혜의 '머리 나쁨'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나저나 문재인은 도대체 무슨 개구리 똥배짱으로 천안문 시위를 금기시 하는 중국에 가서, 미국조차 언급을 회피하는 천안문 사태를 자극하는 촛불시위를 거론한 것일까요?



protocol도 모르는 무식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재인. 참, 대한민국의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