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의 과제: 정치 선진화 혹은 87년 구도의 종식

1. 

제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정치권에 놓여져 있는 중요 과제는 정치 선진화, 다른 말로 하면 87년 구도의 종식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87년 당시와 비교해서 30년 즉 1세대가 지나갔고, 인구 구성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과학 기술도, 문화적으로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여의도와 청와대의 정치 시계는 여전히 87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와 국민들이 발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87년 구도의 종식이라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A) 첫째는 영남 (경북 - 경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으로 대표되는 지역 분할 구도로 이루어져 있는 정치 풍토의 종식입니다. 

인구분할로 봤을 때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1/2입니다. 나머지를 봤을때 대충 경북 1/10 경남 3/20, 호남 1/10, 충청 1/10, (강원+제주)가 1/20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이 구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합니다.  수도권은 정치적으로 주체가 아닌 객체일 뿐입니다. 반면 경북과 경남지역은 과도할 정도의 정치적 파워를 지니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정치적 갈등도 왜곡되고 있습니다. 영남 대 호남이 대등하게 '패권'을 놓고 다투는 듯한 가상적인 지역 '대결' 구도를 상정하고 문제를 그쪽으로 몰아갑니다. 덕분에 수도권 과포화와 지방의 낙후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합니다. 

이 가상적인 지역 구도는 정치적으로 쉽게 악용됩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은 호남지역을 타겟으로 하여 비하와 멸시를 일삼는 비열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이 가짜 대결 구도는 결과적으로 영남권 출신 인물들이 손쉽게 정치적 파워를 얻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야권에 대해서도 '호남 사람이나 지지하는 정당.' 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리면서 핸디캡으로 만들어버리고 야권을 가두어 버립니다. (어디가서 야당지지한다고 하면 "너도 전라도냐?" 이런 소리들을까봐 전전긍긍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소립니다.)

그렇다고 정작 이렇게 지역 구도로 이득을 본 정치인들이 균형잡힌 지방 발전을 위해 애를 쓰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정작 자기들이 생활하는 집은 서울에 있고 자녀들도 서울에서 학교보냅니다. 선거를 위해 주민등록만 지역구에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87년 이후 30년이 지난 이후, 실제로 유효하지 않는 가짜 지역 대결 구도는 이제 폐지될 때가 되었습니다. 



(B) 둘째는 민주 대 반민주, 종북 몰이 같은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대립구도의 종식입니다. 

87년을 기점으로 군사 독재는 무너졌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헌법으로 확립되었고, 30년도 넘게 유지되어 왔습니다.

아무리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다곤 하지만, 이 인간도 앞으로 4년 있으면 임기 마치고 퇴임해야 하는 인간입니다. 반인반신의 후예로 국민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특히, 지금 하는 꼬락서니 대로라면, 아마 3년차 지나면 레임덕에 시달리면서 시름시름 늙어가다가 쫒겨나듯 나오겠죠.

그러니 모씨의 '박근혜와 잘 싸울 수 있는 인간을 지지하겠다.' 라는 말이 얼마나 웃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년 후에도 계속 박근혜랑 싸울 사람을 지지 할건가요? 

물론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정치적 선진화가 완성된 게 아닙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사실 외려 (제가 제일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통한 서민 계층의 구조적인 착취및 계급의 고착화는 단단해져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구조는 이런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특정 정치세력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억압에 대해서는 30년전에 독재와 싸우던 것과는 다른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야권의 가장큰 헤게모니를 쥔 세력 -- 특히 친노 및 486--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참여정부때 삼성에 정권 가져다 바쳤던걸 보면 아예 생각이 그럴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는 보다는 30년전 스타일로 '반독재 투쟁' 우려먹기로 쉽게 정권을 따먹을 궁리나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국정원 문제에 대한 접근이 그렇습니다. 국가 기관 특히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얼마나 조직적으로 국가 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는가에 진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어느 윗 선까지 조직되어 있었는가. 당시 국정원장인가.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인가. 당시 새누리당 인물들은 얼마나 개입이 되어 있었는가. 박근혜 캠프도 가담이 되어 있었는가 안되어 있었는가. 이런 사실들을 밝혀내고, 관계자들을 색출 하는 것입니다. (철저수사) 법에 따라 처벌을 받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공정재판)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재발방지입니다. 권력이 이런식으로 개입하는 것을 어떻게 차단하고, 견제할수 있는가 하는 시스템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재발방지)

그런데 다짜고차 "부정선거년 하야해라, 투쟁"부터 시작하니까 문제가 꼬이는 겁니다. 

철저수사를 보장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하도록 유도하면, 만약 박근혜 캠프가 개입되어 있고 박근혜 씨가 이 일을 주도 혹은 묵과했음이 밝혀지면, 법에 의해 대통령 직을 그만 두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야당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하게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유도하고 보장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수사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면, 특검등의 수순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 억압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비추어지면, 그건 그대로 현 여당/청와대에 대한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다음 선거에 적용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국정원 문제는 이런 정상적인 수순에서 한참 벗어나게 진행되어 왔으며, 국가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재발 방지는 아예 논의도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

낡은 구도를 고집하고, 거기에서 이득을 보려고 하고 있는 것은 현 청와대, 정부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북 몰이로 반대파 입을 아예 닫아버리 70년대에서나 보았을 법한 일들이 다시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NL 주사돌이들 병신들인거 인정합니다. 그런 인간들 국회로 들여보낸 거래를 만들어낸 당시 친노 민주당 지도부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근데 그렇다고, 입만 열면 종북종북 거리면서 아예 반대의 목소리를 싸잡아 매도하고 입을 전부 닫아버리려고 하는 현 여권 일부 및 그 지지자들의 형태도 퇴행적이긴 마찬가지 입니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이미 옛날에 끝났습니다. 북한이 막장인건 전 세계가 압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세상이 오면 어쩌냐?"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걱정도 팔자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병진이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걸 듣고 '아 나도 북한을 찬양해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제 정신 박힌 대한민국 국민은 없습니다. 그런걸 핑계로 벌벌떠는척 하면서,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전부 막아 버리려는 의도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네게 합니다. 

인터넷에서 야당을 비방하는 활동을 가지고 종북세력-북한에 대한 선전전이라고 진지하게 설득하는 국정원도 마찬가지 이유로 한심하고 퇴행적인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통령 하야 발언 했다고, 히스테리 부리면서 신부들 사냥하는 꼴이나 의원들 제명하려는 꼬락서니가 있습니다. 이건 뭐 최고존엄에 대해 무엄한 발언 했다고 아니 박수 안쳤다고 사형시킨다는 북쪽 나라의 마이너 버전으로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하야니 독재니 하는 소리를 받아 넘기지 못하고, 제명이니 종북이니 하면서 독재-반독재 구도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모습은 87년 구도를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어하던 국민의 뜻을 또 한번 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식의 구도는 소모적인 논쟁만이 반복되고, 정작 국민들을 위해 필요한 이슈들이 국회 혹은 정치의 장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아예 막아버립니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그럴 수록 일부 정치 모리배들이 자신들의 뜻을 마음대로 관철시키기는 더욱 쉬워집니다. 

2.

87년 구도는 당시 당사자들이었던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김종필)이 정권을 한번씩 잡으면서 실질적으로 그 필요성을 다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 무의식은 (만약 그런게 있다면) 이 과제의 실현을 이룰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항상 청와대로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과제의 수행을 거부하고, 되려 구도상에서의 과실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정권으로 끝났습니다.

(A) 고노무현 대통령의 시작은 지역 대결 구도를 종식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온 일종의 제스처였습니다. 영남 출신이라도 야당색의 인물이라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그런 그림 말입니다. 일반 국민들도 이 시도를 대선을 통해 추인해 주었습니다. 근데 이 시도는 아주 파멸적인 방법으로 멸망해 버렸습니다. 바로 지금의 친노 정치인 및 그 지지자들의 탄생한 방식으로 말입니다.

 '나는 민주당이 아니라 노무현을 지지한다' =>
 '우왕 난 영남 출신이네. 내가 민주당 지지 안해주면, 제네들은 도로 호남당 ㅋㅋㅋ. 그러므로 난 VVIP ㅋㅋㅋ. 고로 우리를 떠받들라 이 표노예들아.'  

친노 정치인 및 혹은 특정 지역 출시 지지자들이 입만 열면 민주당은 호남당, 영남을 공략해야 한다, 영남 1표는 호남 2표 등등 씨부려대는 것은 87년 식 지역 구도의 종식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그 구도를 더 악화시키고 곪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B) 그 다음으로 국민들에게 간택을 받은 것은 가카 즉 이명박 전대통령이었습니다. 한나라당 당 내를 제외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보았을때 이명박 당시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당시 의원보다 지지율이 높았다는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당시 가카의 이미지는 (임기 기간을 통해 사실임이 밝혀진 사기꾼 이미지 이전에) 기존 87년 식의 독재-반독재 프레임이 아닌 사업가출신의 현실주의자라는 면이 어필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프레임으로 싸우지 말고, 좀 현실주의/실용주의적인 새리더쉽을 발휘해 보라는 의지라는 것 입니다. 물론 우리 가카께서는 이런 의지를 수행하실 생각이 조금도 없으셨고, 현실적이다 못해 속물적으로 자기 이속만 챙기다가 나가셨습니다.

(C) 마지막으로 박근혜 현 대통령. 박근혜 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선택은, "니가 독재자의 딸 이라서"가 아니라 "니가 독재자의 딸 임에도" 대통령으로 선택해 주었다입니다. 즉 국민들은 이미 독재-반독재는 과거의 일이니 그걸 초월해서 개별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를 판단했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당시 상당히 진보적이고 건설적인 공약들을 내어 놓았으며, 과거사 문제에도 일정부분 사과 비스무레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선을 그을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근데 우리 박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자 마자, 당당하게 생까주시면서 유신 공주 아니면 여왕으로 회귀해 버리셨습니다.그리고 정치권은? 87년 혹은 그 이전의 TK식 정치가 부활했습니다. 유신의 딸이라는 트라우마를 긍정적으로 승화시켜서, 정치 선진화를 이루고자 했던 국민의 선택은 다시금 배신당했습니다.


3.

87년식 지역구도가 고착화 된 것은 사실 그로 인해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제적/사회적 풍요를 집중적으로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득권층, 그리고 그 세력을 보위해주는 정치적 실체가 되어주는 새누리당, 그리고 그 새누리당의 정치적 파워의 근간이 되는 영남 지역의 정치인들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짓된 지역 대결 구도를 만들고 유지함으로서, 자신들을 위협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을  '호남'이라는 한정된 지역으로 가두어 버리고, 그 우위를 유지하는 것 입니다. 구시대적인 종북 몰이로 반대의 목소리를 일절 압살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권의 일부 -- 특히 친노 세력 역시 이 87년 구도의 수혜자입니다. 일단 지역구도를 통해 자신들의 '희소성' (우리는 호남 아니다, 영남이다)을 어필하며 능력에 비해 과도한 위상을 부여받습니다. 또한 손쉬운 독재-반독재 구호를 앞세운 투쟁으로 야권내 헤게모니만 잡을뿐, 실제 정치가 국민을 위한 서비스로서 동작하는 일을 막아 버립니다.

국민들은 이전부터 우리 정치가 이 구세대적인 구도에서 벗어나서, 한단계 발전하기를 바래왔고 거기에 가장 가까와 보이는 사람들을 선택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서 차례로 계속 배신당해오고 있습니다.

이 오래되고 쓸모없는 구도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한국 정치의 발전은 요원합니다. 국민들은 무의식 적으로 이걸 인지하고 열망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철수 씨와 그 신당에게 몰리는 관심의 실체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의원 역시 이 열망을 배신하는 배신자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릴지 두고 볼 일이기는 합니다. 한가지 확실한건, 이러한 열망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안의원의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