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로 만들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아무튼 더 생각나는 게 없으면 아무 예고 없이 그만둘 테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 여행기... 별로 재미도 없을 텐데 꼭 올려야 되나? (그냥 네이버 카페 들어가서 유랑 사이트 보면 훨씬 자세히 나와 있다) 아무튼 내용정리는 하고 있으니까 금명간 올리던가 '미생지신을 지키는 것보다 국가대계를 위해 약속을 어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발표를 하던가 하겠음. ^^

암튼 이번 이야기는 그다지 흥이 안 나는 게 지금까지는 현실 정치와 약간의 연관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진짜로 그런 게 없다. 하지만 지난 번 글(http://theacro.com/zbxe/?mid=Visitor&document_srl=98024)에서 다음에 박찬종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조금 썰을 풀겠다.

박찬종 하면 일반인들이 생각나는 건 아마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선전일 게다. 파스퇴르 우유가 처음 나올 때 다소 공격적인 선전을 하며 '무균질 우유'라는 컨셉을 들고 나와 이슈를 일으켰는데 이때 박찬종이 광고모델로 나와 우유를 들고서 미소를 지으며 "이 박찬종, 무균질 정치인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엉뚱하게 그 우유는 파스퇴르가 아니라 다른 회사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알고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설명하자면 여기서 무균질이라는 것은 균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보통 우유를 고온살균하면 그 안의 지방 등의 성분이 잘게 부수어져 골고루 흩어지는데 이걸 균질화 과정이라고 한다. 그 처리를 했으면 균질화된 우유인데 저온살균해서 그렇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이 원래대로 뭉쳐 있어 무균질 우유라고 부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째서 좋다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오히려 소화엔 장애가 있다고 들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건 너무나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균질하지 않다는 의미라면 불균질이라는 말이 분명히 사전에 있다. 비균질도 아니고 무균질이라? 이 때문에 소비자위원회의 고발이 있었고 결국 이 광고는 방송금지 되고 우유회사엔 경고가 주어진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생각엔 이건 경고 정도가 아니라 회사 문을 닫을 정도의 엄청난 벌금을 때려야 할 사안이다. 세균(특정 정치인 이름과는 상관없음 -_-)이 없는 깨끗한 우유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라고 사용했다는 건 어린애도 알만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어찌됐건 이 광고로 더 덕을 본 건 모델인 박찬종 자신이었다. (모델료는 얼마나 받았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그를 정말로 깨끗한 정치인으로 알았으니까... 

그의 인기를 설명하자면 일단 아래의 꼬마 민주당에 대한 이야기(http://theacro.com/zbxe/?document_srl=97026&mid=Visitor)로 돌아가야 한다. 이 당의 인기가 상당히 높았다는데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하며 내 생각으로는 그 인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대중의 평민당과 이 당이 통합하고 나서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를 따라갔는데 박찬종만은 탈당해서 독자적 행보를 시작했다. (꼬마민주당 내의 세력관계는 그때도 말했듯이 8인 8색이었지만 이기택이 1위여서 대표를 했고 박찬종이 그 다음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꼬마민주당의 인기는 평민당과의 통합과 동시에 사그라들었고 통합당의 지지도는 평민당 수준에서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그럼 그 인기가 다 어디로 갔나? 그대로 박찬종에게 몰려가는 기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바라는 국민들 요구에 마침 딱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잘생겼고 똑똑하다고 하고 (고시 3관왕임을 여러번 울궈먹은 바 있다. 유감스럽게도 스타 배출장이었던 청문회에선 별 활약을 못했지만...) 무서운 3공화국 시절에도 정부에 개긴 적이 있다는 걸로 자신의 용기를 내세우기도 했다 (박통이 죽은 다음에 공화당 개혁을 주장한게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는 모르겠다).

어찌 됐건... 당시 이사람의 인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우선 그의 1차 목표는 지자체 선거의 서울시장이었는데 당시 그의 당선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때까지는 아직 서울이 야당성향이었으므로 민자당의 당선 가능성은 없었고 여론조사에서는 김대중의 민주당보다 박찬종의 인기가 두 배 이상 높았다. 물론... 무소속 의원의 지지도는 그다지 탄탄하지 않으며 공략하기에 따라 주저앉힐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것이다. 그의 지지도는 공략해서 내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었으며 당시의 유명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그의 당선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아니라 이렇게 확언까지 한 경우는 내가 알기로 유래가 없다)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전에 본 TV에서 웬 '명문'고등학교를 소개하면서 이 학교를 졸업한 '자랑스러운 선배들'을 불러내는 프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웬 학력차별 조장하는 시대착오적인 방송이냐 하겠지만...) 물론 평준화 되기 전의 명문고에서는 서울대 법대 등의 입학은 거의 도맡아서 했겠지. 따라서 정치인들을 포함, 많은 출세한 사람들이 소개되었다. 그때,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등 열 명 가까운 쟁쟁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소개된 인물이 바로 박찬종이었다. 그때 그는 지방선거를 준비하느라 의원자리도 내놨기 때문에 완전 무직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오자 그 환호성이며 소개시간, 기타 스포트라이트 장면 등이 이 자리는 오직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이며 앞에 나온 인물들은 그야말로 배경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의상도 다른 사람들은 우중충한 정장인데 비해 그만 파란색 반짝이는 양복이었다. (잘 어울리긴 하더라. ^^) 그때 이사람은 이미 대통령급의 위상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무소속의 지지에는 거품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김대중은 지자체 선거에서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거의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전국적으로 여러 중요한 지역도 많았지만 그는 오로지 서울에 집중했다. 경제학자 조순을 후보로 삼아 (이때 제자였던 정운찬이 왜 김대중하고 같이 노냐고 짜증을 냈다고 하더군...) 보수층의 환심을 사게 하고 선거는 거의 직접 진두지휘하며 매일같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솔직히 박찬종 입장에서 보면 이자가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는 당선이 될 경우 여당을 견제하며 야당의 원로를 대우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선 자신의 당선이 김대중에게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은 자당 사람이 서울 및 수도권에서 당선되는 것이 그의 입장에서 훨씬 유리하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때 그의 노력은 뭔가 다르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김대중이 나이를 먹으면서 3김 청산에 대한 요구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즉 김대중, 김영삼(김종필이야 그냥 곁다리로 끼워넣은 거고) 만 정치한다는 소리 듣기 지긋지긋하니 좀 새로운 정치인을 키우자는 움직임이 (물론 주로 여당 및 조중동에서) 있어왔고 이 억지는 의외로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는 먹혀들어갔다. 그로 보면 기가 막힐 일일 테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냥 나이가 많아서 안된다니)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이 이슈에 대해선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보다 젊은 정치인들이 인기를 끄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거세시키거나 제어하려는 움직임을 많이 보여왔다. 전에 그 굴욕과 양보를 감수하며 꼬마민주당과의 합당을 완수한 것도 그들의 인기가 탐이 나서라기보다는 이들이 너무 커져서 자신의 세력을 넘보게 되기 전에 그 싹을 자르자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박찬종이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그의 인기와 세력은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며 결국 김대중의 대권가도에는 중대한 장애가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어쨌건... 결국 박찬종은 낙선했고 거기까지는 김대중의 뜻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그 후...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기존 지역당의 벽을 뚫을 수는 없다'는 것이 어길 수 없는 진리가 되어 버린 것이고 이것은 매우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당선이 된 조순이 그 후 어떤 식으로 김대중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게 되었는지는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