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 임시 방편 가설의 전형
 

임시 방편 가설(ad hoc hypothesis)이란 땜빵 가설이다(표준어는 ‘땜질’이다). 냄비에 금이 가면 땜빵을 하듯이 임시로 새로운 가설을 만들어내서 기존의 자신의 이론에 잘 들어맞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진짜 설명이 아니라 사이비 설명이다.

 

이런 식으로 땜빵 가설들을 양산하다 보면 가설이 현상을 예측하는 일은 별로 없다. 반대로 새로운 현상이 발견될 때마다 가설이 새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옷이 해어질 때마다 기운 옷처럼 이론은 누더기가 된다.

 

어떤 창조론자 C가 있다고 하자. 그는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을 창조했다고 믿는다. 진화론자 E는 그에게 인간의 눈에는 맹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이 보아도 맹점이 있는 눈은 참으로 바보 같아 보인다. 인간보다 훨씬 더 지적인 신이 어떻게 인간의 눈을 그렇게 바보 같이 만들었느냐고 C에게 묻는다.

 

C는 잠시 당황한다. 하지만 곧 평정을 찾는다. C에 따르면 신이 인간의 눈에 맹점을 만든 이유는 인간이 너무 오만하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치기 위해 일부러 맹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눈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즉 자신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설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E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E는 왜 개코원숭이에게 맹점이 있느냐고 묻는다. 개코원숭이도 인간처럼 오만한가? C는 또 다시 잠시 당황한다. 하지만 또 곧 평정을 찾는다. C에 따르면 신이 개코원숭이 눈에도 맹점을 만든 이유는 신이 인간을 가장 사랑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 맹점이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덜 사랑한 개코원숭이에게도 맹점을 만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E는 C의 마음의 평화에는 관심이 없다. E는 이번에는 왜 오징어의 눈에는 맹점이 없느냐고 묻는다. 신이 인간보다 오징어를 더 사랑했단 말인가? C는 역시 이번에도 잠시 당황하다가 곧 평정을 되찾는다. C에 따르면 사랑이 클수록 미움도 크다. 애증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말을 뒤집어 이야기하면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신은 오징어를 거의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미워하지도 않으며 따라서 맹점으로 오징어를 망신 줄 이유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자 E는 마침내 항복한다. 자신은 결코 창조론자 C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끝도 없이 땜빵 가설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이론은 결코 반증할 수 없다.

 

심심하면 창조론자와 이런 대화를 해 보라. 아마 C와는 다른 식이겠지만 끝없이 땜빵 가설을 만들어낼 것이다. 물론 “신성 모독”이라며 답변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으며 신의 뜻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많은 진화 심리학 가설은 상식의 복권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진화의 논리가 발견법(heuristics)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뽐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Martin Daly와 Margo Wilson은 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을 바탕으로 의붓자식에 대한 사랑이 친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 놓았으며 그것을 강력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증했다. 의붓자식의 경우 부모에 의해 학대당할 확률과 살해당할 확률이 친자식의 경우보다 수십 배나 높았다.

 

하지만 진화론을 전혀 모르던 보통 사람들도 예전부터 계모와 계부가 그리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즉 계부모의 사랑이 친부모의 사랑보다 덜하다는 현상은 이미 진화 심리학자들이 가설을 제시하기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대중은 그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친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인간 본성이라고 본 대중의 상식을 경멸하고 그것이 모두 문화적 구성물일 뿐이라고 본 지식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학계에서 그런 것들이 주목 받지 못했을 뿐이다.

 

남자가 보통 여자에 비해 더 성교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Robert Trivers의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 이론과도 잘 부합하지만 대중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늑대다”라는 말이 그런 통찰의 대중적인 표현이다.

 

여자는 자신의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지만 남자는 아내의 배 속에서 나온 자식이 자신의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없다(따옴표로 묶은 이유는 그런 확신이 의식적인 과정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자의 질투가 상대적으로 성교 여부에 집중된다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대중의 상식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교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남자가 불 같은 질투에 사로잡힌다는 점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으며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이 이외에도 진화 심리학자들이 뽐내는 예들 중 당상수가 상식적으로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진화 심리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례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진화 심리학의 발견법이 이전에는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현상들을 발굴했다고 보기 힘들다. 환경 결정론에 사로잡혀서 대중들의 상식을 무시했던 학자들과는 달리 진화 심리학자들은 대중들의 상식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뿐이다. 그들은 상식이 진화론의 논리와 부합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상식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고 애썼다.

 

 

 

 

 

몰랐던 현상을 예측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훌륭한 가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제시한 사례들의 경우 땜빵 가설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땜빵 가설에 가까울수록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경향일 뿐이다.

 

어떤 가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현상의 발견을 이끈다면 커다란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 자체만 보고 그 가설이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새로운 현상의 발견을 이끈 가설도 반증될 수 있다. 또한 아직까지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훌륭한 이론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기존에 알려진 현상들을 체계적이고, 간결하고,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과학적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자칭 과학 공동체에서 새로운 것을 어떤 것도 예측하지 못한다면 사이비 과학인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의 기준으로 인정 받는 것들에는 “새로운 현상 예측”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눈은 자연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적응이며 그 기능은 보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자. 이미 눈이 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가 과학적 가설이며 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진화 생물학자는 없어 보인다. 설계의 논거(argument from design)가 눈의 사례만큼 강력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사실상 모든 진화 생물학자들이 오직 설계의 논거만 들이대도 “눈은 자연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적응이며 그 기능은 보는 것이다”가 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진화 심리학으로 현상을 발굴한 사례 – 공간 지각력의 성차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미 널리 알려진 현상에 대한 설명임에도 불구하고 현상을 새로 발굴하기라도 한 것처럼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미 알려진 현상을 사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진화 심리학의 방법론 때문에 아주 많은 현상들이 새로 발굴되었다. 여기에서는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많은 인지 심리학자들이 공간 지각력의 경우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다. 어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 명제에 도전했다. 그들은 인간의 진화역사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웠다. 남자들은 예전에 주로 사냥을 했고 여자들은 주로 채집을 했다. 따라서 남자는 사냥을 잘 하도록 진화했고, 여자는 채집을 잘 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사냥감은 움직인다. 사냥을 잘 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물체와 관련된 공간 지각력이 발달해야 한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먹을 만한 것들을 잘 채집하기 위해서는 식물들의 위치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식물이 꽃피는 것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열매가 열릴 때쯤에 그곳에 가면 잘 익은 열매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가설을 만들었다. 연구 결과 실제로 남자들은 움직이는 물체와 관련된 공간 지각력에서 여자보다 나았으며, 여자들은 여러 위치를 기억하는 것과 관련된 공간 지각력에서 남자보다 나았다. 내가 알기로는 이런 생각은 상식에도 없었으며 기존 심리학에서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화 심리학으로 현상을 발굴한 사례 – 조부모의 사랑
 

친족 선택 이론은 여러 가지를 예측한다. 근친도(degree of relatedness)가 높을수록 사랑은 대체로 더 커질 것이다. 따라서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은 사촌 간의 사랑보다 클 것이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조카에 대한 사랑보다 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인상적인 예측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미 이런 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이든 사람은 앞으로 번식 기회가 별로 없다. 즉 번식의 측면에서 희생할 것이 별로 없다. 해밀턴의 규칙(Hamilton’s rule)에 따르면 손해 볼 것이 별로 없는 동물은 친족을 더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늙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가 자식이 늙은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리 인상적인 예측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별로 없다는 현상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자식이 유전적 자식임을 ‘확신’할 수 있는 반면 남자는 그렇지 않다. 또한 남자는 바람을 피움으로써 많은 여자를 임신시킬 가능성이 있는 반면 여자는 아무리 많은 남자와 성교해도 임신할 수 있는 자식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남자가 상대적으로 자식 돌보기보다는 짝짓기를 위해 더 노력을 쏟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그리 인상적인 예측은 아니다. 엄마의 사랑이 아빠의 사랑보다 더 지극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중에 누가 제일 손자를 사랑할까? 외할머니의 경우 손자가 자신의 유전적 손자임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배 속에서 태어난 딸의 배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친할아버지의 경우에는 두 단계의 불확실성이 개입된다. 자신의 아들이 과연 유전적 아들인지 ‘확신’할 수 없으며, 과연 자신의 손자가 자신의 아들의 유전적 아들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경우 한 단계의 불확실성이 개입된다.

 

따라서 외할머니가 가장 손자를 사랑하고, 친할아버지가 가장 덜 사랑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인간은 대체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외할머니가 자신의 손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경우와 친할아버지가 혼자서 손자를 키운 경우를 비교한다면 친할아버지의 사랑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실제로 다른 조건을 통계학적으로 통제한 다음에 비교해 보면 진화 심리학자들의 예측에 부합한다. 내가 알기로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나서기 이전에는 아무도 이런 비교를 해 볼 생각도 못한 것 같다.

 

 

 

 

 

진화 심리학으로 현상을 발굴한 사례 – 인간의 배란기와 행동
 

배란기와 관련된 여러 가설들도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배란기에는 임신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배란기에 강간을 당하면 피해가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배란기에 강간을 당할 상황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자들은 실제로 배란기에는 강간당할 만한 상황을 더 많이 피한다.

 

배란기에는 임신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여자가 배란기에 잘생긴 남자와 바람을 피움으로써 좋은 유전자(good gene, 번식에 유리한 유전자)를 얻으려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연구가 이런 예측에 부합하는 결과를 산출했다.

 

이 외에도 배란기와 관련된 온갖 연구들이 이루어졌고 진화론의 논리와 부합하는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나서기 이전에는 이런 현상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2010-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