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제는 여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었다"고 한다".
핏줄들은 내가 그 아제를 빼다 박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 아제가 어디 살았냐 하면 완도 소안도에 살았다. 내 기억이 틀리지(라고 쓰고서 '잘못 되지'라고 되뇌인다) 않았다면 그때는 여순 사건 전후이다.
아제를 아는 누군가가 아제는 그 즈음 총살 당했다고 이야기했다. 시체는 수습하지 못했고 어딘가 같이 무더기로 묻혔다고.

평일도 이야기를 쓴 임철우는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임철우를 일러 한국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으나 바로 그 뒤에 태어나 자연을 느낄 무렵 기르던 이들에게서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해들은 세대라고 하드라. 하지만 임철우는 518을 겪었다. 전남대 영문과 시절, 군대 가기 전에. 그는 비겁했으나 비열하지는 않았다. 괴로워했다. '봄날' 속 누군가는 임철우이다. 그리고 광주 사람들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한다. 왜냐면 그는 나와 같은 고향에서 자랐고 아마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무엇보다 내가 섬 놈인 탓이다. 중학교를 마치고 줄곧 광주에서 살긴 했으나.

그는 아마 나보다 한 띠 정도 나이가 많을 게다. 김동춘 씨 생각이 난다. 해방전후 스러져간 생명들을 위무 굿을 펼치고 있는 사람. 그 사람 완도에도 왔다드라. 거창이며 광주며, 화순이며, 경기 어느 곳이며 강원도 산골을 거쳐서. 자전거 타고 전라도를 누비던 시절 나는 평일도 뽀작 앞까지 갔더랬다. 조약도까지. 몇 차례를. 조약도 그 산기슭엔 애비 고향이 있다. 거기서 평일도 그쪽으로 가다보면 충도가 있다. 그리고 근처에 소안도가 있다. 소안도는 일제 시절 남녘 대토벌 작전의 핵이었던 곳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 그 이야기를 알았고 그래 그 이야기를 어떤 자리에서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 뿐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비웃을 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거든.

나는 지금껏 써내려간 세 문단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존재는 아니다. 기껏해야 장길산 속 '큰돌이' 정도. 나는 단지 기억하고 잊지 않을 뿐이다. 귄터의 소설 속(아니 영화로 먼저 보았지) 치마품에 숨는 남정네나, 바닷가 사지 잘려나간 몸통 속에서 기어나오는 장어를 잡는 아낙네들 풍경을. 나는 임철우보다 한 세대까지는 아니고 한 띠 정도 아래 세대이다. 이렇게 쓰자니 나도 나이가 참 들었다.


나이가 들었다. 내가 아는 동네 사람들 중 열에 한 두엇은 세상을 떠났드라. 추운 겨울 날 학고짝을 짜는 자리에서 내게 컵라면을 챙켜주던 임철우 씨 또래 동네 형은 세상을 떠났다. 형이 써내려간 일기장. "오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 ." 형은 중증 소아마비였다. 정확히는 슬관절 아래가 구부려져 허벅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형은 악기를 잘 다루었다. 나는 형에게 근사한 기타, 악보를 써내려갈 수 있는 맥킨토시를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내 또래 누구에게나 저런 사연은 있다. 어른은 저 '일반화' 프로시저를 호출할 줄 안다. 그래 어른이다.

치매 걸린 어미는 작은 아제 무덤을 다시 만들어줘야 한다며 내 손을 잡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네 역시 지금은 세상에 없다. 작은 아제를 챙기느라 집안에선 영혼 결혼식까지 시켜주었다. 그래도 아제는 애비며 어미 꿈에 나타나 혈족들을 괴롭혔다. 나는 그 아제 무덤터를 안다. 나는 조개를 캐다가 산에 올라가 무덤터에서 자다가 달님을 만나 내려오기도 했다. 세상을 떠나던 무렵 아제는 갓 스물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안에 빨갱이 빨간 줄은 없다. 외가가 고향서 잘 나가던 집안이었거든.

남녘 섬들엔 저런 사연들 널렸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자고? 미안하지만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술 퍼 마시고 싸운다. 니네 할배가 우리 애비 쏘아서, 찔러서 죽이지 않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