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는 예전 러셀님이 제 글에 다셨던 댓글에 대한 제 응답(반박이 아님)을 겸한 글인데, 결론부터 말해 전

  1) 현재 동북아 정세가 한국에게 위기인지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기회'임은 거의 확실하며
  2) 박근혜의 대일외교 방식에 의문의 소지가 다분하다,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의 개선, 더 나아가 역사적 화해를 추구할만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예측가능한 미래에 가시적 성과를 이룰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동북아 공동 역사 교과서와 같은 구상을 일단 찬성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 이러나 저러나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생각이니까요.

 그리고 역사적 화해가 당장 어렵다면 외교적 수단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양보'라도 이끌어내는 게 차선책이겠죠.

 그런데 사실 지금이 일본으로부터 그런 정치적 양보를 이끌어 낼 적기로 보입니다. 일본 내의 좌파나 온건파가 아닌, 자민당 내에서도 우파색이 강한 아베같은 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 역사 및 영토 문제와 관련된 정치적 양보를 이끌어 낸다면 이건 상당한 개가죠. 그런데 아베는 지금 한국에게 그런 정치적 양보를  결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지하게 '고려' 정도는 해 볼만한 상당한 유인을 가지고 있어요.

 중국문제 때문이죠. 일본정부가 한국의 외교방침에 관해 가지는 불만 중 가장 비중이 큰 점을 꼽자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바뀌면서부터 한국의 대외관계순위가 '미일중'에서 '미중일'로 바뀌었다는데 있습니다. 한국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의문도 가지고 있구요. 일본 인문/사회 학술지 및 (한국의 시산 in이나 월간동아 류)의 시사지에서도 이런 의문을 피력하고 나름의 답을 내는 글들이 여럿 나왔을 정도에요.

 사실 며칠 전에도 황우여의 '아베총리각하'망언 소동이 벌어졌지만, 그게 어떤 자리에서 벌어진 사건인지 상기해봐야 합니다. 일본에서 열린 한일의원동맹에서 황우여가 그 자리에 참석한 '아베'에게 한 말입니다. 아베가 그런 자리까지 챙겨 참석할만큼 한국을 조금이나마 일본쪽으로 끌어당기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박근혜를 향해, 여러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낸 일도 잘 알려져 있는 바고.

 여기서 말이 약간 딴데로 새는 감이 있지만, 사실 일본 '우파'는요, (일본 '좌파'야 역사문제에 관해 우리와 입장이 대체로 비슷하지만), 이 골거리 우파들은요, 다 아시겠지만, 역사문제에 관한한 한국에 관해 사과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네들의 '사상'입니다. 이건 안 바뀝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그네들 '사상'이에요. 이해득실로 꼬셔서 '전향'시킬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비전향 장기수 보세요. 전향하면 내보내 주겠다는데도 전향 안 하잖아요. 그거랑 같아요. 사상이 그래서 무서운건데... 일본의 '우파'들도 이 점에 관한한 '사상'이 아주 강철같이 확고합니다. 일본은 과거 한국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 잘못한 것이 사실 전혀 없으며 오히려 한국의 근대화를 도운 것이었고 따지고 보면 식민지 지배라는 용어조차 언어도단이다, 일본은 한국을 일본의 일부로 병합한 것이고 일본의 영토로 통치한 것이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식민지배를 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네들 입장에선 오히려 한국으로부터 '감사의 예'를 받아도 모자를 판이죠...

 해서 박근혜가 3.1절 기념사에서 표명했던 한일관계해결의 방안, 즉

 """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양국 간에 굳건한 신뢰가 쌓일 수 있고, 진정한 화해와 협력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

 이런 <선전향 후화해>와 같은 입장은 일본의 '우파'에겐 씨알도 안 먹힙니다. 일본의 우파가 역사 직시할 날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인류문명이 초토화 된 이후에나 기대해 볼만한 일입니다. 사실 이런 말은 일본 사민당같은 좌파들한테나 할 말이죠. 사민당 사람들한테 이런 말하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베한테는 씨도 안 먹혀요.

 해서 일본의 우파를 상대로 할 경우, 이네들의 '사상'을 바꾸려는 기대는 깨끗하고 접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선 정치적 접점이 생겨날 날이 (우파가 집권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오지 않을 겁니다. 사태가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아베가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 이상은 둘 간의 정상회담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계속 강짜를 놓고 있죠.

 전 이게 잘못이라고 봐요. 그러지 말고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아베한테 역사가 어떻다느니,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떻다느니, 이런 말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한국의 국력과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 정치적 흥정을 이끌어내야 해요.

 지금 일본 우파가 중국과의 '국지전'까지 진지하게 고려할만큼 똥줄이 타는 상황은 이와같은 정치적 흥정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황금같은 기회에요. 물론 승산은 장담 못 합니다. 그런나 지금보다 더 나은 조건이 다시 또 오리라 기대하긴 어려워요.

 해서, 박근혜는 아베와 만나야 합니다. 그게 거북하다면 굳이 정상회담같은 형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일본과 창구를 열고, 일본의 한일병합의 원천적 무효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및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한 일본정부의 피해보상 및 사과문제에 관해 '일본의 우파'가 과연 어디까지 - 사상적 전향이 아니라 - <정치적 양보>를 할 의사가 있는지 진지하게 탐색을 해야 합니다.

 박근혜가 집권 이후 줄곧 일본 우파에 대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상대 안 해줘", 이런 식은 안 통해요.
 국내 정치가 아니잖아요. 국내에서도 잘 안통하는 방식인데, 아베한테 통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