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엔가 일단의 문인들이 백두산 구경을 갔는데 천지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만포라는 압록강 기슭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마침 압록강 철교가 있고 아주 가끔 화물차가
철교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초가을인가, 날씨가 화창한 한낮으로 기억된다. 일행은 서른명
정도 되는데 문득 살펴보니 자주 보이던 얼굴 몇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할 일 없던 나는
이리저리 그들을 찾아다녔다. 만포에서는 강 건너 저 멀리 북한 땅과 마을이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바라다 보인다.
잠시 이곳저곳 살피던 나는 세사람이 낮은 언덕 저편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이문열과 <만다라를 쓴 김성동과 ,<겨울의 환을 쓴 여성작가 김채원
이었다. 소주병 몇개가 마개가 열린채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나는 세사람 얼굴
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두 얼굴이 발갛게 취해 있으며 세사람 모두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모든 걸 이해하고 재빨리 그들 곁에서 떠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장면이 가끔 뇌리에 떠오른다.
이문열은 아버지가 월북 케이스, 아마 당시엔 그의 부친이 강 건너에 생존해 있을 때일 것이다. 김채원
은 아버지가 납북된 상태,-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이 시
를 쓴 파인 김동환이 그의 부친이다. 김성동은 아마 부친이 육이오 전후에 사상관계로 생을 마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그들은 어쩌면 육친이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강건너 땅을 바라보며 소주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60~70년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은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이 분단상황과 그들 문학의 뿌리가 연
결되어 있다.
현실은 어떤가? 남쪽에서 일어나는 큰 사단 치고 분단과 관련 없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박창신 신부 발언 건, 국정원 댓글 문제, 이석기 껀, 머 하나하나 예들 것도 없이 남쪽 사회 모든 문제들
이 분단과 관련되어 있다. 미. 중. 일 등 주ㅛ요 외교사안들도 우리 입장에서는 모두 분단과 관계되어 있
다. 분단관리가 그만큼 내외치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두해 전 모 정당 아카데미 운영하며 일부 수강생 중 <닥치고 통일>회원들이 몰려와서 설치는 통에
골머리 앓은 적이 있는데 지나친 통일지상주의에도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어떤 식이건 이 분단관리를
현명하게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무조건 종북타령으로 일관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암담하다 할 것이다.

요즘 기고 관계로 선데이 중앙을 자주 보는데 거기에 캐나다와 미국 교수 두사람이 한국의 현재 위상에
관해 발언한 것이 있다. 스스로 약소국이란 자의식에 시민들도 정책당국도 너무 위축되어 있어 참고로
몇자 소개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 교수 존 커튼-
중략-미안하지만 한국은 중견국 외교를 할 단계를 지났다. 물적 토대를 생각할 때 한국은 중견국이 아니다.
이미 주요국가 위치에 올라서 있다. 캐나다도 한때 미국 위세에 눌려 독자외교를 행하지 못하고 80년대 초까지
중견국 사고에 머물러 있었으나 지금은ㄴ 아니다. 한국이 G20에서 중요역할을 하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 일본 미국 사이에서 중재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주요국가이다.

미국 프린스턴 대 아이켄베리 교수-
한국은 현재 가강 각광받는 나라다. 브릭스 국가 보다 훨씬 작지만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다.여기
에 첨단기술과 독특한 문화까지 갗췄다. 한국은 중국과 깊은 관계이면서 미국과는 최우방이다. 이런 독특한
위상 덕에 한국은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다 옮겨쓰기 힘들어 몇줄만 소개한데 그쳤는데 전문을 보면 이들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두사람 모두 해당 국가에서 베테란에 속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런 글을 소개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특히 정책당국자들이 분단관리 문제에 관해 과감하고 그야말로 창의적인 발상으로 접근
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관변 주요학자들은 하나 같이
-만약 통일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만 있다면
한국 주도의 통일에 중국은 결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들도 나는 인상깊게 읽었다.
통일의 방법론에 관해 말이 많은데 사실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세밀한 디테일과 로드맵을 가지고 쉬지 않고 그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내가 유라시아 철도얘길
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바둑에 도남의재북이란 말이 있다. 바둑 고수급이 아니면 통일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진반농반으로 하고 싶다.
격이 맞지 않아 5년만에 남북장관이 마주앉을 자리를 팽개쳐버린 사람들에게
 뭘 기대하는 게 우스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자조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현재 외국 주요 학자들은
"한국이 자주적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와 있고 충분한 역량도 갗추고 있다"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 정치계와 당국자들만 밤낮으로 "종북타령"으로 한세월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지나쳐 관심을 아예 꺼버리는 게 자구책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