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지난 몇년간 있었던 논쟁의 도돌이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비슷한 주제로 저도 몇번 글을 썼었지만, 사람들이 새로 들어오고, 잊혀지고 하다 보니 같은 글을 몇번씩 다시 써야 하나 봅니다.



1. 몇몇 분들이 지적해 주셨듯, 개인 노무현에 관한 평가나 호불호는 사실 크게 논의의 대상이 될 이유도, 가치도 없습니다. 자연인 노무현은 이미 사망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진정성'을 가지고 일을 했던지, 이제와서 알 수 있는 도리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그걸 가지고 아무리 왈가왈부 해봤자 무의미 합니다.

단순히 당사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워딩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도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입에서 나오는 논리만 따지면 전두환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린 애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참여정부나 그 직계 후신인 소위 '친노세력'에 관한 평가는 노무현 개인의 '의도'/'진성성'/'선의' 같은 것과는 별도로, 그냥 세간에 드러나있는 행적, 그리고 그 행적을 이었을 때 나오는 정치적 '궤적'을 통해서 이루어 져야 합니다. 



2.  먼저 이걸 인정해야 이야기가 풀려나갑니다. (단순한 '야권 지지자'가 아닌 '친노 세력 지지자'의 경우에는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참여정부는 (거의 모든 면에서) 실패한 정부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정치적으로는 100% 실패했습니다. ㅈ to the 망으로 실패했습니다. 이걸 부정하면 안됩니다. 재보선, 지방선거 내내 야라레메카 수준으로 (로봇 만화에서 폭죽처럼 펑펑 터져나가는 엑스트라 적군)  백전백패했습니다. 정권 재창출도 그냥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저쪽에서는 이회창, 이명박이 함께 나오는 여유를 보여준 가운데에서도 최다 득표차로 패했습니다. 

간혹가다가 대선 패배는 '정동영 잘못, 호남 잘못'이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결국 당시 여당 후보가 누가되었건 어려운 싸움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구도를 만들었던 참여정부의 잘못을 인정 안하는건 너무나 뻔뻔한 책임 회피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염증을 내고 있었고, 그게 그대로 대선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아니 본질적으로 어떤 당이 정권을 잡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당과는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니 때문에 자신들이 바라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정책의 영속성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정권을 재창출 해야 합니다. 이 기본이 되는 원리도 무시하고, "우리가 정권을 재창출할 의무가 있느냐?"라고 말한건 심각한 직무 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출범할 때의 높은 기대치와 탄핵 사태이후 조성된 유리한 국회 환경 (원내 제 1당 해본게 이때가 유일합니다), 거기에 당시 여권(현야권)내 경쟁 세력들마저 실질적으로 전부 거세시킨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태로 시작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정치적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정치 지형에서의 지역구도는 더욱 심화된 상태로 고착시켜버렸고, 지역 균형 문제나 민주적 사회 발전같은 주제는 말만 많았지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습니다.  

참여정부때도 이랜드 노동자들은 머리채를 잡혀서 질질질 끌려갔습니다. 강정 해군기지나 한미 FTA등이 결정된 것도 참여정부 때의 일입니다. 조현오는 이때부터 부산에서 컨테이너 박스로 산성을 쌓았습니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시작부터 냉온탕을 오갔던 남북 관계도 북한의 핵실험을 허용하였고,  깜짝쇼 처럼 진행되었던 남북 정상회담도 아무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삼성만 신났던 정권이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삼성의 위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만 했습니다. 내각에 삼성 임원이 들어가있었고, 국가 어젠다는 삼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갔습니다. (한겨례 21기사 '참여정부와 삼성의 끈적끈적한 5년'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6000/2007/11/021106000200711290687041.html,  시사인기사 '참여정부와 세리 달콤쌉사름한 관계' http://m.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727) 삼성가의 중앙일보 홍석현씨를 주미대사로 임명하였기도 했습니다. ('사장님 힘내세요'로 낙마하지 않았다면 홍씨를 UN 사무총장으로 밀었으리라는게 정설입니다. 본인도 그렇게 말하고 다녔지요. )

삼성 X 파일 사건, 김용철씨의 폭로 어떻게 끝났습니까? "도청이 본질"이라고 적극적으로 실드쳐주시고 수사 방향을 제시해 주신게 삼성 비서실이었습니까, 중앙일보 사설이었습니까, 한나라당 대변인이었습니까? 

결국 내세울건 주가 2000, 국민 소득 2만불을 비롯한 거시 경제지표 몇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시기 (2002-2007)에는 부동산을 비롯 전세계의 자산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기였던 시절 (버블)이었던 것을 고려해 보면, 주가 2000이 그렇게 평가가 높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절에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과는 다르게 돈이 잘돌아서 집집마다 풍족하고 인심이 풍족하던 사회였던가요? 아닙니다. 오히려 버블시절로 특히 아파트 값이 계속 올라가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된 정책처리는 미흡하여서 불만이 팽배해 가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3.  참여정부 몰락 이후 친노 정치인과 그 세력은 일단은 몰락했었습니다.  자칭타칭 친노 황태자였던 유시민조차 노전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반전을 이룰 수 있었던 계기는 노무현 전대통령 본인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생겨난 친노/참여정부에 대한 동정적 여론, 그리고 이명박 전대통령 및 그 주변사람의 뻔뻔스런 노골적인 행적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한 야권의 상승이었습니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선패배 이후 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암울하게 시작한 상황에서도, 딱히 친노 정치인들 없이도, 당시 야권이 야금야금 반격의 실마리를 쌓아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가격이 버블기 처럼 무지막지하게 상승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시점에서, 복지라는 이슈를 발견해서 이를 논쟁에 중심에 밀어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분당에서 재보선도 승리했고, 무상급식 이슈에 관한 투표를 통해 오세훈 시장이 자진 사임하게 만드는  데에까지 성공했습니다. 

우리 경제 수준에서 복지가 얼마만큼 가능한가? 복지를 위해서 수입이 있는 계층이 얼마만큼의 지출을 각오 할 수 있는가? 어느정도까지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는 수준의 복지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입장 /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고, 여러가지 생각과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빨갱이 논쟁이니, 귀태 논쟁이니 하는 것들에 비하자면, 훨씬더 발전적인 토론이고 건설적인 토론이 될 수 있을 만한 실타래 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위기에서 친노 정치인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고, 당시 선방하고 있던 민주당을 접수합니다. "혁신과 통합"이라는 가설 조직을 가지고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소수였고 정치적 지분도 크지 않았던 혁-통에게 과도할 정도의 어드밴티지를 주면서, 실질적으로 민주당은 다시 친노 정치인들의 헤게모니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재인, 문성근, 이해찬등 당밖에서 있던 사람들과 한명숙등 당내에 남아있던 친노 정치인들이 대선주자/당대표등의 타이틀을 차례로 가지게 됩니다. 이는 2012년 총선의 공천에서 혁통/참여정부 비서관 출신들이 대거 (쉬운 위치에) 공천을 받아 등원하게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와 함께 야권의 아젠다 또한 복지보다는 '선거 연대/단일화'에 포커스가 맞추어 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총선 전후에서 그 "단일화" 이슈는 절정에 달합니다. 수많은 잡음이 생겼고, 관악을에서 김희철-이정희-이상규로 이어진 코미디같은 종북좌파 현수막 사건이라던가, 선거 이후 통진당의 셀프 제명 사건등 도대체 제정신으로 관람하기 어려운 블랙 코미디 컬트 쇼의 향연을 마음껏 보여주었습니다. 



4. 문재인이 대선 후보의 자리를 차지하고 친노정치인들이 민주당의 당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손학규 대표의 호구짓, 친노 언론사및 외각세력의 지원도 물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문재인 후보와 친노 정치인 세력의 대선 승리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다음의 한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부산 출신인 문재인 후보가 인구수가 많은 부산, 울산, 경남에서 40%정도의 높은 득표율을 얻어 가지고 오겠다.."

그리고 거기에 '소위 진보' 세력과 총선에서의 거래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와일드 카드였던 안철수 후보와도 어떻게든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무릎을 꿇려서) 낸다는 작전안이었습니다.  혁신과 통합의 전면 등장이래, 총선을 거쳐서 대선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야당 정치권의 흐름은 이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총선때도 "낙동강 벨트"가 집중 조명을 받았고, 문재인 후보 본인도 세번째 부산대통령 만들어 달라고 운동하고 다녔습니다. 대선때 문제인 후보 궤적을 찍은 지도를 보면, 부산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정희 후보는 NL의 원내 진출을 이루었으니, 대선토론회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 저격만 한다음 미련없이 사퇴했습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는 삐걱거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안철수의 백기를 받아냈고, 유세장에 끌고다니면서 노란 목도리도 하게 만들었고, 문재인 후보 지지 연설도 끌어 냈습니다. 


정말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도 패배했습니다.



부울경에서 득표율이 작았던 것도 아닙니다. 부산에서 39%, 울산에서도 39%, 경남에서 36%. 이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 지역에서 얻어냈던 수치를 아득히 넘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호남에서 지지율이 적었던 것도 아닙니다. 광주/전남/전북에서는 여전히 90%의  민주당 후보 문재인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새로 생긴 변수라던 재외국민 투표에서도 이겼지만... 그래도 대선에서는 졌습니다.



5. 역시 마찬가지로 친노 지지자들은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문재인 후보의 대선 패배로 인해, 친노 정치 세력이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는 유효기간은 실질적으로 끝났습니다. 지금은 관성적인 열성 지지자들로, 지난 총선의 결과로 원내에 진출해 있는 친노 성향 의원들로, 그리고 일부 우호적인 언론 덕분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력의 유효기간이 끝난 이유는 지난 대선의 결과로서 이 사람들을 가지고 이 방식으로 정권을 창출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 졌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했듯, 참여 정부가 정책적 성과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이 없는 이상 "참여정부의 주역"들이 전면에 나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습니다. 부산 지역의 득표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선거공학적) 강점은 지난 대선에서 결국 물거품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럼 남는 것은 비극적으로 죽은 자연인 노무현의 인간적인 면을 어필하는 건데, (달리 관장사라 표현하는게 아닙니다.) 이건 우려먹기에 한계가 있을 뿐더러 이미 너무 많은 소비가 이루어 졌습니다. 



6. 문제는 이걸 인정하지 못하는 친노 지지자/정치인들이 다시금 야권의 헤게모니의 장악을 노리고 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야권 전체에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통진당과의 지난 총/대선의 단일화 덕분에 종북으로 도맷금으로 매도되고 있는 일과 NLL 사초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책임자들 그리고 친노 정치인들이 책임지고 자숙하고 있다면 선긋고 꼬리자르기 모드로 들어간 다음, 국정원 대선 개입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야권은 친노 정치인들이 싸질러 놓은, 그래놓고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고 뒤에서 탱자탱자 하다가 잊을만 하면 한번씩 사고 쳐주고 게시는 분들의, 배설물을 치우느라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7. 소위 '친노'라고 불리는 참여정부 출신, 그리고 부산 비새누리 출신의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는 정치 세력은 참여정부 내내의 선거, 그리고 이어지는 2007/8년의 대선/총선, 그리고 이번에 치러진 2012년의 총선/대선을 결국 다 망쳐놓고, 야권 전체의 약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언제나 남탓 -- 언론탓, 호남탓, 안철수탓, 비노탓, 국민탓, 큐베탓, 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야권 지지자로서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들에 대해서 화를 대고 있는 건 결국 이런 정치적인 이유때문입니다. 무슨 개인 노무현에 대한 비이성적 미움에 삐뚫어진 열등감으로 없는 소리 지어내고 있는게 아니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