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쟁이는 바로 좋은 풍자가' 라는 취지의 코블렌쯔님의 댓글을 읽고 나서, 좋은 글쟁이, 좋은 이야기꾼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이 매력적인 화두에 대해서, 조금 더 같이 생각을 해보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네요. 일전에 미투라고라님도 비슷한 취지의 글을 써주셨고, 그래서 제가 사회자팀 명의로 약간의 편집을 가하여 올린 글도 있는데, 생각의 범위를 조금 더 확대하여 좋은 이야기꾼이란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글 한 조각을 소개할까 합니다. 발터 벤야민이란 20세기 전반기에 살았던 독일의 문예 비평가가 쓴 글입니다. 

                                                                              이야기의 기술

 매일 아침 우리는 지구상에서 벌어진 새로운 일들을 전해 듣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진기한 얘기들은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설명들이 첨부되지 않은 사건은 하나도 전해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일어나는 사건들은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거의 모든 것이 정보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재현할 때 그 이야기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면 그로써 이야기하기의 기술을 반쯤은 이미 이룬 거나 다름이 없다. 이 점에서 고대인들은 달인들이었다. 헤로도토스가 그  중 정상에 있다. 

(사메니투스 이야기)

그의 저서 '역사' 제 3권 14장에는 사메니투스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집트 왕 사메니투스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하여 붙잡혔을 때 캄비세스는 포로로 잡힌 그 왕을 능욕하려고 벌렸다. 왕은 사메니투스를 페르시아 개선 행렬이 지나갈 거리에 세워두도록 명령했다. 그리고서 왕은 사메니투스가 자신의 딸이 하녀가 되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가는 모습을 보게 시켰다. 모든 이집트인들이 이 장면을 보고 탄식하고 절망해는데, 사메니투스만은 아무 말도 없이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땅에 고정시킨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자기 아들이 처형되기 위해 개선행렬 속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때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 사메니투스가 그의 하인들 가운데 하나인 늙고 초췌한 남자를 포로들의 행렬 속에서 알아보자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온갖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이야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보는 그것이 새로웠던 순간이 지나면 가치가 사라진다. 정보는 오로지 그런 순간에만 살아 있다. 정보는 전적으로 그 순간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안되며, 시간을 놓치지 말고 그 순간에 자신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야기는 그와 다르다. 이야기는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내부에 자신을 그러모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펼쳐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몽테뉴는 그 이집트 왕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왜 그는 하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 탄식했고 그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을까? 몽테뉴는 이렇게 답했다. "왕은 슬픔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미량의 증가만 있었어도 슬픔의 댐이 무너질 판이었다." 그렇게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다르게 설명될 수도 있다. 몽테뉴가 던진 질문을 주변 친구들에게 한번 던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런 여러 가지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주변 사람들 중 하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왕에게는 왕가의 운명은 감정을 북돋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자신의 운명과 같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삶 속에서 우리를 감동시키지 않는 많은 일이 무대 위에서는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하인은 그 왕에게 그런 배우 중 하나였을 뿐이다." 세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슬픔은 쌓였다가 긴장이 풀리는 순간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하인을 본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네 번째 사람이 말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일어났다면 모든 신문에는 사메니투스가 그의 자식들보다 하인을 더 좋아한다고 쓰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각 리포터는 그 이야기를 즉석에서 설명할 것이라는 점이다. 헤로도토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의 보고는 가장 건조한 보고다. 그렇기 때문에 옛 이집트에서 전해오는 이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경탄과 숙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공기에 노출되지 않고 피라미드의 방 속에 밀폐된 채 있다가 오늘날까지 그 발아력을 보존해 온 곡식 알갱이들과 같다. 

                                                                                                                            - 벤야민 선집 1권, 241페이지 이하.  도서출판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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