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할머니를 당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가! 무심한 번역 표현 속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조금씩 양보하다가는 언젠가 모조리 잃고 만다. (26)

 

Happy Birthday to you, Grandma! …… From your grandson할머니,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당신의 손자로부터로 번역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나 같아도 그런 식으로 번역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 생신 카드를 쓴 사람이 30대라면 할머님, 생신 축하 드립니다! …… 손자 올림이라는 식으로 번역할 것이고, 다섯 살짜리 꼬마라면 할머니, 생일 축하해! …… 할머니 손자라는 식으로 번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예문에 나오는 your당신의라고 번역하지 않는 이유는 할머니에게 반말을 하는 꼬마도 당신의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인 엄격한 존비법을 모조리 잃고 마는 것은 하나도 안 아쉽다. 우리말을 바로 쓰자는 운동과 제대로 번역하자는 운동이 민족우월주의, 국수주의, 복고주의 등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은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영희 씨는 <또한 hispanic은 남미, 특히 멕시코에서 이주해와 미국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다. 좀더 정확한 표현 사냥을 위해 뛰자.>라고 썼다. 그리고 Hispanic남미계로 번역했다.

 

나라면 히스패닉계로 옮기겠다. 엄밀히 말하면 멕시코는 남미가 아니라 중미에 있으며 남미 대륙이 아니라 북미 대륙에 속한다. 또한 중남미도 상당히 다양한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다. Hispanic은 에스파냐어(스페인어) 사용을 함의하기도 하는데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 히스패닉계도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더 나은 번역어를 못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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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ummer day after school, my father and I were riding down an old dirt road. I had just received a new third-grade reader and was studying a story when I came to a word I didnt know. I held the book up so Father could see the page.

Whats this say? I asked. Father mumbled something about not being able to read and drive at the same time, so very slowly I spelled out, A-u-t-u-m-n. When he didnt answer, I held my finger on the puzzling word and looked over at him. He had a strange, pained expression on his face. I spelled the word again, louder this time, but Father drove on, silent. Why wouldnt he answer me? Frustrated, I snapped, Cant you read?

The car veered to the side of the road and rolled to a stop. My father turned off the ignition and stared out at the dusty road ahead.

No, Cathy, he finally whispered, I cant read. He gently took the reader out of my hand and looked at me, his eyes sad. I cant read anything in this book.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교 길에, 아버지는 나를 곁에 태우고 흙먼지가 풀풀 나는 길을 운전해 내려가고 있었다. 3학년 독본(讀本)을 새로 받아 책에 실린 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그래서 아버지가 그 페이지를 잘 볼 수 있도록 책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이거 어떻게 읽어요? 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느라 글자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 무엇인가를 중얼중얼 말하셨다. 나는 아주 천천히 에이-----이라고 철자를 읽어드렸다. 그래도 아버지가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으시자 나는 손가락으로 모르는 단어를 가리키며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아버지는 어색하면서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번엔 더 큰 소리로 다시 그 단어의 철자를 말해드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차만 운전했다. 도대체 왜 대답을 해주시지 않을까? 나는 볼멘 목소리로 아버지는 이것도 못 읽어요?하며 다그쳤다.

아버지는 방향을 바꿔 갓길 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가서 세우고 시동(始動)을 끄시고는 먼지 낀 도로 전방을 망연히 응시했다.

마침내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캐시야.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단다. 아버지는 조용히 내 손에서 독본을 가져가더니 슬픔 어린 눈으로 내게 말했다. 이 책에 있는 글자를 단 한자도 읽을 수 없단다.

 

 

 

영희 씨는 번역을 할 때 되도록 무생물이 주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주제는 무생물 위치 혼란증이다. 우리 한국어 어법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생물이 아니라, 사람이 문장의 주어가 되는 것이 더 좋다. 영문 The car veered to the side of the road and rolled to a stop를 직역하면 차가 길가 쪽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회전하며 멈춰 섰다이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차를 주어로 번역한다면, 여러분은 바로 무생물 주어 위치 혼란증에 걸린 것이다. 차가 스스로 움직여 방향도 바꾸고 회전도 한다는 표현이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분명히 My father turned off the ignition, 즉 아버지가 시동을 끈 장본인이며, 차를 운전한 사람이다. 아버지를 주어로 다시 번역해보자. 아버지는 방향을 바꿔 갓길 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가 세웠다.

 

원문의 무생물 주어를 인간 주어로 바꾸어 번역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일반론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기에 소개된 사례의 경우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무생물이 주어로 된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원작자는 My father를 주어로 해서 해당 문장을 만들 수 있었는데도 The car를 주어로 삼았다. 여기에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자식에게 들키게 되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원문을 볼 때 아버지가 당황해서 갑자기 차를 세운 것 같다. 당황 또는 충격이 아버지를 엄습한 것이다. 이럴 때 아버지는 주체라기보다는 객체의 입장으로 전락한다.

 

원문의 The car veered to the side of the road and rolled to a stop.원영희 씨의 번역문 아버지는 방향을 바꿔 갓길 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고 가서 세우고를 비교해 보자. 원문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당황하는 아버지가 번역문에서는 읽을 수 없다. rolled to a stop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흔들거리며 또는 덜컹거리며 멈춰 섰다는 뜻인 듯하다. 그런 뜻이 맞다면 당황한 아버지가 갑자기 차를 세워서 차가 덜컹거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원문에는 천천히라는 뜻의 단어가 없다.

 

 

 

old dirt road흙먼지가 풀풀 나는 길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dirt road는 그냥 비포장도로를 뜻하는 것 같다.

 

 

 

Father mumbled something about not being able to read and drive at the same time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느라 글자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인지 무엇인가를 중얼중얼 말하셨다라고 번역했다. 원문은 아버지가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읽을 수는 없다는 취지의 말을 무어라고 중얼거렸다는 뜻인 것 같다.

 

 

 

<Frustrated, I snapped, Cant you read?><나는 볼멘 목소리로 아버지는 이것도 못 읽어요?하며 다그쳤다.>로 번역했다. Frustrated는 심리 상태를 말하는데 볼멘 목소리로는 목소리의 톤을 뜻한다. 짜증이 나서가 더 적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