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노 친노 사이의 논쟁에서는 '누가 먼저 선빵 쳤느냐' 라는 주제가 반드시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 때 친노쪽이 즐겨 들고 오는 무기가 2002년의 후단협이다. 반비노쪽이 먼저 선빵쳤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후단협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출한 후보를 흔드는 반민주적인 폭거이고,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리고 2010년 유시민의 경기지사 출마때부터 갑자기 돌변해  '닥치고 후보단일화' 를 외쳐대는게 특기인 친노들은 후단협을 비난할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도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누가 먼저 선빵쳤는가를 따지는건 경우에 따라 부질없는 짓이지만,  이왕 따질거면 정확히 해야 한다. 선빵은 후단협 훨씬 전에 노무현을 필두로 하는 영남민주화세력이 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악랄한 방식으로.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호남 토호' 라는 표현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이다.

87년 대선 당시 김대중 김영삼 이하 대부분의 야당인사들은 정치활동 금지에 묶여 있었고, 따라서 정책능력보다는  "군사독재시절 누가 더 탄압받고 고초를 겪으며 싸웠는가"라는 선명성이 판단의 제1순위였다. 당연히 그쪽으로는 오랜 옥중생활과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이 김영삼을 압도했고, 독재에 반감을 가진 야당성향 국민들이 김영삼보다 김대중을 더 선호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특정지역에서 95% 이든 아니든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를 95%가 하면 잘못이고 50%가 하면 정상이라는 논리는 참으로 해괴하고 이상한 것이 맞다. 

(물론 필자는 부산경남의 국민들이 김영삼을 더 지지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인정한다. 적어도 그 당시의 김영삼은 군사독재에 맞서 가장 용감하게 싸운 정치인이었고, 그들의 선택이 아쉽기는 하지만  비난까지 받아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런데 당시 민정당과 조선일보가 김대중에 대한 호남의 지지율을 문제삼았다. 민주화 지도자에 대한 당연한 지지가 아니라 몽매한 지역감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온갓 마타도어와 비난을 일삼으며 반호남주의를 유표했다. 어차피 적대적인 정치세력이고 좋은 핑계거리를 잡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부의 배신자들이 있었다. 바로 영남의 민주화세력과 재야운동권 명망가들이었다. 그들은 김대중과 호남에 대한 마타도어를 지지했고 적극 유포하는데 앞장서기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불러주는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김대중을 권력욕의 화신, 그에 대한 호남 국민들의 지지를 무지몽매한 지역감정의 결과로 매도했다. 이것이 바로 야권내부의 주도권 다툼을 위해 수구세력의 반호남주의에 동조하며 연대했던 최초의 사례이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원하시는 분은 박상훈의 책 '만들어진 현실'을 일독하실 것을 권한다. PDF 링크)
http://www.humanitasbook.co.kr/bbs/view.php?id=editor&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name&desc=desc&no=251 

야권 내부의 반호남주의 진영은 김대중을 무너뜨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으며 부침을 거듭하다 대부분 한나라당에 투항했고 (이부영 홍성우 제정구 김홍신 김부겸 이우재 박계동 김원웅 등), 일부는 민주노동당을 만들었으며 (노회찬 등), 노무현만이 유일하게 정권교체가 우선이라며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그리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고, 이후 그들 대부분은 열린우리당을 통해 야권으로 복귀했다. 열린우리당은 그들의 성공적인 야권 복귀를 위해 설계된 정당이었다. 

후단협은 이렇게 야권 내부 반호남주의 배신자들과의 오랜 갈등 과정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후보가 되자마자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를 '호남색'이라 비하 하고, 그것을 지우겠다며 자신의 옛 동지들과 영남민주화세력을 끌어들이려 총력을 기울였다. 김영삼 시계 사건은 그런 과정에서 돌출된 헤프닝이었다. 노무현은 이렇게 호남의 정치세력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행보를 거침없이 밟았고, 그 대응물이 바로 후단협이었던 것이다.

비극의 씨앗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야권 내부의 반호남주의이지 결코 후단협이 아니다. 호남출신이라는 이유로 김희철을 숙청시키는데 앞장섰던 배신자들이 정리되지 않는 이상 결코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참고로, 2004년 분당 당시 후단협에 대한 기사 하나를 링크한다. 과연 친노들이 뻔뻔하게 후단협을 들이댈 자격이나 있는건지 한번 확인해보자. 노빠들은 펙트를 왜곡하는 것을 넘어 아예 상상속에서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마치 후단협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이 분당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고.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5469&section=sc1

비록 (열린우리당의) 후단협 출신 의원들이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에 올랐지만, 당내에서도 공천에서 배제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열린우리당 공직후보자 심사위원회의 대변인 격인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지난 17일 “과거 민주당 시절 후단협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민주당의 정권재창출에 대한 의지와 후보단일화 이후 복당한 점 등을 고려해 경선을 통해 유권자의 심판에 따르기로 했다"고 밝힌 것을 볼 때도 김 의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중략)

후단협 출신의 어려운 처지는 열린우리당만이 아니다. 민주당 추미애 중앙상임위원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통모임과 후단협 출신들은 공천이 결정됐어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민주당에 남아있는 후단협 출신은 유용태 원대대표를 비롯해 최명헌 이윤수 박종우 장성원 최선영 유재규 의원 등이다.



사족 - 그랬던 조기숙이 걸핏하면 후단협 어쩌고 하면서 개소리해대는 것은 애교. http://www.todaily.co.kr/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