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쓰고 싶은 글들이 많은 와중에 이번에는 강박증에 대해서 씁니다. 이전에 썼던 글들, 정신병자로서의 라캉과 성이란 무엇인가?에 이어지는 글들로 그 주제들을 마무리해야 되는데, 그 글들을 끝맺기 보다는 강박증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펼쳐놓게 되네요.

강박증, 혹은 강박 신경증(obsessional neurosis)은 말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에 사로잡혀(obsessed) 있다는 의미, 강박적으로(obsessively) 또는 충동적으로(compulsively) 매달린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강박적으로 혹은 충동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뒤따르겠죠.

그렇다면, 과연 강박증자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는가?가 문제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보통 어떤 생각에 매달리게 됩니까? 지극히 자명하게도, 풀리지 않는 문제 혹은 해결될 수 없는 숙제에 매달리겠죠. 왜? 그 어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겠죠.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혹은 풀릴 수 없는 인생의 어떤 문제처럼...

무엇보다, 강박증자는 "나는 살아있는 자인가? 아니면 죽은 자인가?" 혹은 "나는 무슨 이유로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마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했던 햄릿처럼 말이죠.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라는 질문은 자신의 아버지인 왕을 죽음으로 몰고간 삼촌과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부터 나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 체하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복수를 하고 죽을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죠. 이를 다시 강박증자로서의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부채의식"에 사로잡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부채의식", 즉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어서, 그 빚을 갚을 때까지는, 그 빚으로부터 한 발짝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식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도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운동권 내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소설이 유행했지 싶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어떤 부채의식 혹은 어떤 강박증이 그 시대에 유령처럼 떠돌았던 것이죠. 그리하여, 그 정서에, 그 부채의식에, 그 강박증에 시달리던 주체들은 "식민지 조국에서, 과연 나는 살아 있는 자인가? 아니면 죽은 자인가?"라는 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죠.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식민지 조국 해방이라는 풀릴 수 없는 숙제를 가슴에 떠안고 산화해갔죠. 불구덩이 속으로, 죽음 속으로 걸어들어간 이들과 더불어서, 죽은 자들에게 빚진 산 자들 모두가 그렇게 그 시대를 불살랐습니다. 노동해방을 외쳤던 이들도 풀릴 수 없는 숙제를 이고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와 같은 노랫말이 불가능한 신화인 것처럼 말이죠.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이란 허구에 불과합니다. 마치 자본가가 역사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그저 역사와 사건 속에, 어떤 도도한 흐름 속에 위치해 있을 뿐이지,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이란 없기 때문이죠.

조국 해방이니, 노동 해방이니 하는 불가능한 꿈에 사로잡혀, 시대에 대한,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나는 죽은 자인가? 산 자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지금 이곳에서 꿈틀대고 있는 현재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겪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죽은 자인가? 산 자인가?"라는 질문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죽은 자인가? 산 자인가?"라는 질문은 살아남은 자의 시대를 향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를 향해, 당신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이니, 산 자로서 살아가라고 답하겠습니다. 단, 풀릴 수 없는 숙제에 대한 부채의식 없이 살아가라고, 혹은 그 부채의식을 승화시키면서 살아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부채의식의 승화의 한 예로 이런 것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긴 부채의식 말입니다. 이 부채의식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 부채의식에 사로잡혀, 노무현이 남긴 빚에 짓눌려, 평생 그 빚을 갚다가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의 죽음과 더불어서 노무현 자신의 부채는 모두 탕감된 양,  그를 고이 떠나보내겠습니까? 산 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현재를, 그리고 닥쳐올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기에...

마치 햄릿의 아버지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령으로 돌아와 햄릿을 질책했던 것처럼, 어느날 문득, 죽은 노무현이 "나는 죽은 자인가? 산 자인가?"라고 질문해오면, 우리는 "당신은 이미 죽은 자입니다. 그러니, 편히 잠드소서"라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으니, 우리가 할 일은 우리에게 맡겨두어도 됩니다"라고 그를 위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나는 산 자로서 나의 시대를 살아가야하는 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