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lia: 조폭놈들, 인간파충류나 마찬가진데, 우리 한국인들은 파충류 조폭놈들하고 참 친화적인 것 같습니다. 허나 분석해보면, 유구한 노예근성의 다른 측면일 뿐입니다.

글을 쓸 때 나는 어떨 때는 입니다 체로, 어떨 때는 했다 체로 글을 쓴다('나는'이라는 주어가 저기에 놓이는 게 맞는가? 이건 이질적인 서구 언어를 내가 접한 탓에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다. 그 서구 언어는 도그마 혹은 문법, 혹은 금기이기도 하다). 당연히 오래 전부터 그런 나를 들여다본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맥락이다. 맥락은 이즈음 서구에서 혹은 서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지식층들이 입에 올리는 생태계, 삼성 생태계, 어느 기업의 생태계와도 비슷한 말이나 토종 한국 사람들 눈으로 보기엔 방향이 다른 용어이다 둘은. 나는 안철수 씨가 저 생태계라는 표현을 쓴 점에 꽤 주목한다.

오래 전 어느 블로그에서 한 여자가 '칭기스 칸은 싸움에 져서 끌려간 자기(우하하) 여자를 되찾았을 때 애를 밴 그 여자를 끌어안으며 여자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여자는 아마 전문직 여성이었을 것이다. 한겨레(?) 어느 단상에서 또 어느 전문직 여성(아마 의사 아니면 생물 계열 전공자)이 먹고 살만 하지만 마음 한 편(한 켠이라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랜다. 하지만 생명력 있다. 어쩌면 '편' 보다는 자연의 부분집합인 인간이 쓰기에 더 어울리는 표현)에 강한 남자가 항상 자기 옆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내일 돈이 나오는데 사흘 전부터 돈이 떨어져서 담배 살 돈이 없었다. 빌려 피고 한 값 사달라고 하고 꽁초 피고 그러다가 오늘은 마트에 가서 외상을 하고 돈을 빌렸다. 수더분한 아제인데 장사가 생각보다 되지는 않는다. 수산물 코너를 잡아 들어왔는데 일본 방사능 덕(?)에 '치' 자 들어간 생선이 잘 팔리질 않거든. 그래도 그 아제는 친절하다. 물건이 아주 상품은 아니제만 그래도 하품도 아니다(나는 갯마을 사람이라 어지간히 볼 줄 안다). 나는 거기 가서 유일하게 그곳에서만 외상을 한다. 1-2만원도 빌리고. 오늘은 그 아제가 밥을 먹고 있지 않았다. 평소엔 내가 갈 때면 하필 밥을 먹고 있었는데. 담에는 가서 그 자리에서 밥도 함 얻어먹어 봐야겠다. 한 순(열흘)에 한 번 정도 그 아제 신세를 진다. 담배값 만원.

나는 '필요' 때문에 그 아제를 찾는다. 그 욕구, 담배 갈증을 해소하는데 그 사람은, 적어도 내게는 전문가이다. 둘 사이에 상하나 군림은 없다. 서로 이해하는 것이다(바로 이 문장을 다룬 소설들은 넘친다. 요즘은 별로 없지만. 세상이 또 변했거든). 그는 상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사치도 아니다. 그는 '장사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가 상인이 되길 원치 않는다. 장사치 역시. 규모가 커져도 장사하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란다. 아, 상인은 상도에 나올 법한 그런 사람이다. 그건 괴물이고 그런 괴물이 주변에 있다면 모두들 반성해야 한다. 그가 그런 성인과도 같은 괴물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들이 싸구려라는 소리니까. 다들 밸이 뒤틀려 그건 못 견디겠지? 그 밸이 qualia 님이 말한 노예 근성과 대척점에 있다.

접때 의학도이면서 아크로 정치 게시판에 글을 올릴까하다 스을쩍 지워버렸고 노가다를 뛴다는 사람이 있었다. qualia 님 인연하고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이러저러한 댓글에 '나는 땀을 흘리고 고통을 느끼고 싶었는데 왜들 아댠이냐... ... .'는 풍의 댓글을 올렸다. 나는 이해한다. 이러저러한 댓글도, 그 사람의 반응도. 그 사람은 돌아온다. 회자정리, 이자정회. 그는 조흔(강인한 시인은 항상 '조흔'으로 발음하라고 가르쳤다. 'ㅎ'은 약하게. 내 고등학교 은사다) '이웃'이니까.

어느 땡초(그 새끼 전라도일 거다 아마)가 썼다는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아조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다. 좋다드라. 나는 그 책 읽지 않았다. 우리 집에도 있었다. 불교풍이거든 집안이. 그래도 나는 날 키웠던 이들이 김정한의 '수라도'에 나오는 그 여인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복받은 놈이다. 읽은 이들은 소리내어 말하고 공감한다. 하지만 실천하지는 않드라. 그 책은 '방편'이거늘 그걸 도그마로 삼드라.

나는 지금까지 풀어놓은 썰의 얼개를 다른 이들을 볼 때 습자지처럼 위에 올려놓고 본다. 습자지. 얼추 내가 그려낸 세상 풍경과 맞는가 하고. 따라서 우유부단하다. 하지만 피하지는 않는다. 싸구려들이 제일 원하는 건 (내면을 들여다볼 때 무서워하는 건) 피하는 거다. 직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 괴로운 과정을 상대가 직시하지 않는 거. 그리고 싸구려들에게 그 습성을 심어준 평범한 이들을 나는 괴롭히고 싶다. 어쩌면 아랫도리도 즐겨버리고 싶다. 방향을 튼다면, 내려놓는다면 현실이다 그건. 이 정도는 되어야 욕망지인이 말한 '망상'이 된다.

나는 1.5반이다. 일반도 아니고 이반도 아니다<= 이거 보따리 풀어 설명할 생각 없다. 인연이 닿으면 이해하게 되는 거다. 난 잠자리 빼곤 사람 위에도 아래에도 있지 않는다. 상하를 거론하는 게 인간계, 상하가 없는 게 자연계. 인간계는 자연계를 넘지 못한다.

하여 나는 장사하는 사람에게서 담배값을 얻었고 생명체로서 욕구를 풀었고(성욕은 쨉도 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을 엮었고 그래서 다시 불안해질 것이다. 담배값을 구하기 전까지의 나, 그런 나를 들여다보는 나, 그게 제대로된 나다. 욕구란 싸구려가 된다. 충족하는 순간. 따라서 결과는 싸구려다. 과정이 참이지. 그 과정 속의 나는 노가다하는 의학도 그 사람이다. 과정 속의 나는 맑다. 맑다라는 형용사는 투명하다는 형용사가 명함 내밀 수준이 아니다. 나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 충실하다 :)

'하수'라는 표현 함부로 쓸 게 아니다. 서로 읽지 않고 같이 읽었으면 족할 노릇.

qualia 님에게 전할 말은 얼추 전한 샘이다.

이제 쥭움울 어렵지 않게 접하는 나이에 드니 노파심이 생긴다. qualia 님의 첫 소절은 액면 그대로 맞는 말이다.


밑바닥으로 내려와서 이제 열흘 정도면 500 채우겠다. 이번엔 잘 쓸 것이다. 그래도 담배값은 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