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중시하지 않고 결과만 탐하는 이들을 일러 대개 물신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나 싸구려, 혹은 나쁜 놈이라고 한다.
어지간한 규모 갖춘 기업 중에 100%야 불가능한 노릇이겠으나 그래도 큰 틀에서 정석을 걷는 기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인다.
모두들 정치권이며 정관계며 재계며 상층부 사람들 보면서 도둑놈들, 짐승 같은 놈들이라 해대지만 내가 접하는 현실 풍경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서민들이나 중산층 하루 일상을 들여다보면 규모의 차이일 뿐 그 풍경을 확대 복사하면 고스란히 상층부(?) 사람들 풍경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제대로 지키지 않고 헐값에 사람 부리고 착한 사람들 덤태기 씌우는 많은 소사장들, 농장주들, 노가다 업자들, 소상인들. 우리가 늘상 접하는 우리네 이웃들 아닌가. 결코 소수의 의인들이 핵이 되고 장삼이사들이 뭉쳐 혁명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혁명이란 마치 결국엔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정의가 아니라 터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외부 조건이 형성되었을 때 억눌려 있던 생존 욕구가 제 갈길을 비로소 찾는 게 혁명. 혁명은 결코 정의라는 기치 아래 이루어지지 않는다. 혁명이나 급격한 변화를 꿈꾸며 그 길을 걷는 이들을 비웃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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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할 때 대개들 일부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접어두고. 내가 접해온, 지금도 접하고 있는 많은 이들의 갈등은 자기 잘못을 힘들게라도 드러내 화해를 청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서 시작되드라.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고 한 쪽이 나쁜 경우란 인간사에 별로 없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전적으로 옳은 한쪽마저 넉넉히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갈등 역시 마찬가지. 나는 대개 중간에 서 있다. 엄정한 중립이야 힘들지만 양쪽의 잘잘못을 알고 있는 편. 왜 양쪽 사정을 모두 아느냐 하면 대개 내가 혼자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게 별로 곁에 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들이 내게 시시콜콜 상대방의 잘못이나 사연을 털어놓는 이유이다. 내가 딴데 가서 자기 이야기하며 씹어대지 않을 부류, 혹은 그 정도로 똑똑해 보이지는 않는 부류라는 동물적 감각이 그들에게는 있으니까.
그들이 끔찍히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 양 진영이 모였을 때 내가 하필 그 자리에 있는 것 :)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몇 번 접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사람은 안다. 내가 짐승같은 부류들에게는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 내가 건드리는 건 어처구니 없게도 그 짐승들 밑바닥에 아직 가늘게 숨쉬고 있는 양심. 외부의 물리적 폭력이나 평판 역시 만만치 않은 한계 조건이지만 자기 속에 또아리 튼 양심이라는 놈처럼 엄청난 압박은 없는 법이니까. 민생고에 시달리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짐승이 된다. 그리고 정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면 짐승끼리 물어뜯는다.

짐승들은 그들과 내가 전혀 모르는 멀리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할 때는 내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 그들이 같이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할 때면 내 눈치를 본다. 클클 멍청한 내 눈치를. 그게 양심이다. 원래 진짜 바보는 상대의 양심을 곧잘 건드리는 법이니까. 나는 어떤 부류냐 하면 날 만났던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외로움을 잊고 흥겹게 지내다가 어느날 쓸쓸히 혼자 앉아 자신을 들여다볼 때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이다. 원래 바보의 역할이 그것이다.

그래도 상식 갖춘 주변 사람들이라면 공히 하는 말 한 마디. "누가 그렇게 해서 돈 벌려면 벌질 못해서 그러나. 사람 새끼가 그렇게 벌어 쳐먹으면 안 된다는 거 아니까 안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 그 말이 맞다. 그나저나 시어미에게 구박 당하던 착한 며느리가 나중에 그 시어머니 꼴 난다는 말 그거 새삼 진리 비슷한 것으로 와닿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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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해서 번역 밥벌이는 얼추 250만원. 이만하면 한달 벌이로 안성맞춤이다. 아하하. 그런데 항산에 항심이라. 어쩌면 다음 달에는 일이 많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남은 보름간 바싹 벌어 쟁여놓아야 할까? 내 마음 속에도 거꾸로 뒤집어놓은 화수분이 있는갑다.
그런데 어쩌면 250만원을 알차게 제대로 쓰는 게 더 중요하지는 않을까?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처럼 힘든 일도 없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