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룸에서 몇 달 같이 지내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근처 편의점에 담배와 막거리를 사러 갔다.
거스름돈을 받고 보니 계산이 좀 맞지 않는 것 같아 영수증을 들여다 보았더니 사지도 않은 다른 담배 5000원어치가 적혀 있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앞서 사간 사람에게 판 물품을 잘못 올려놓은 것이랜다. 그리고 5천원을 거슬러 주더란다. 미안한 낯빛 하나 없이. 그때 마침 담배를 사갔던 사람이 계산도 잘못 되었고 담배도 없다며 들어왔다. 사과 한 마디 없길래 뭐라 따졌더니 갑자기 전화기를 들고서 112에 영업 방해로 신고를 혔다. 동료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뒤에 그 사람에게 자신이 잘못했냐구 물어보았고 그 사람은 직원이 잘못했다고 답을 하더란다.
그래 동료는 실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 직원은 왜 동료를 붙잡지 않았을까? 영업 방해로 경찰 출동까지 시킨 상태였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또 갔더니 그 직원(20대 중반 남자애)이 이번에는 미안한 낯빛을 하며 공손하게 비닐봉투에 물건을 싸주더란다. 역시나 사과는 하질 않고. 그래도 미안한 눈빛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는 동료의 말.

얼개는 그렇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혼자 밤길을 다니거나 어떤 거래를 하면 덤터기를 쓰거나 시비에 휘말려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그래 요즘 세상엔 절대 혼자서 술을 먹으면 안 된단다 :)

저 어린 직원은 자신이 빵구내어 물어야 할 5천원을 스을쩍 술취한 동료 앞으로 달아버린 것이다. 그걸 숨기려 외려 경찶을 부르기까지하고. 이거 어디서 많이 보는 패턴 아닌가? 적반하장. 나는 번역 일이 있으면 근처 피시방에서 일을 하는 터라 담배를 사러 새벽에 자주 들르기 때문에 그 직원을 한 달여 보아왔다. 내겐 그런 적도 없고 친절하고 순진한 청년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알고 있고.

저 어린 모습 속에는 짐승(이공 님은 이럴 땐 동물이라 해야 한다고 할까?)의 모습도 들어 있다. 내가 보아온 세상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동물성이 강하다. 뻑하면 경찰을 부르는 사람들, 게중엔 어린 사람들이 많다. 물론 '어린'은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는 수식어이다. 공포가 많다고 해야 할까. 공포를 못 이긴 나머지 자치(당사자들 사이의 합의)라는 시스템을 버리고 외부의 권력에 의지한다. 그리고 그 권력에 당한다.

나는 스스로 여성차별주의자라고 인정을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자타가 공인한다고 봐야지. 심하게 보자면 여염집 여자 중 8할 정도를 준창녀로 보는 수준. '준창녀' 개념은 쉽게 보면 '노예' 뭐 그런 것이다. 결코 자기 생의 주인이 되지 못할 사람들. 동화 속에 들어가 생을 영위할 수 있을 사람들. 약자들, 어린 것들. 구제역 파동에 인간에게 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울먹이며 서로 몸을 맞대고 포크레인이 파놓은 구덩이 가장자리에 몰려 있는 가녀리고 예쁜 분홍빛 돼지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그 풍경에 결코 일조하지 않았다. 그 소극적 저항이 내 유일한 자부심이다. 아 물론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다. 저건 우물안 개구리가 접한 세상의 모습일 뿐.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될지 아니면 누군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른지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해 보시라. 내 삶을 처음부터 들려주자는 마음에 (내 전해 들어 믿고 있는 그대로) 내가 금요일 자정에 태어났다고 적는다. 자정을 알리는 괘종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 내가 울음을 터트렸다고들 했다.

-데이비드 카퍼필드 2세의 인생역정, 찰스 디킨스-


저 어린 친구가 내 동료에게 사과를 하게 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돈이 좀 들 것 같다. 개입(?)하지 않으면 저 친구 비슷한 상황에서 또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다. 이 개입에서 게임의 법칙은 그에게서 사과할 마음이 우러나게 하는 것. 사과해야 한다고 내가 선언하지 않는 것.

인간에겐 어느 동물도 따라오지 못할 대단한 능력이 있다. 사소한 일도 공동체 자체를 위협할 수준의 일로 증폭시켜버리는 신적인 능력. 약자일수록 그 능력은 뛰어나다. 비열한 자들일수록 상대들의 그 능력을 잘 활용한다. 그리고 약자들은 비열한 자들을 숭배한다. 여성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원래 그렇게 궁합이 잘 맞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하여 능력이 부족한 나는 저 시스템에서 도태되어 상처받은 잉여들에게서 눈을 뗄 나이가 되었다. 그들은 원래 잉여로 설계된 것이다. 그것은 자연, 자연이라는 시냇물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단지 그 시냇물에 담갔던 발을 떼야 할 시공에 있다.

나이 들어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내 친구들은 나를 힘들어한다.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내 잘못은 아니다. 그들이 굽신굽신하는 대상들에게 '이 쌍것이'이라는 표현을 하고도 별 일 없는 내가 용한 모양이다. 현실의 나는 유약하다. 하지만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나는 평범한 이의 삶을 살아간다. 평범한 삶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품위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저 어린 짐승들을 다룬 시 한편

성탄제(聖誕祭)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