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불렀다.

 

박 대통령을 주어로 한 언급이 세 차례 나왔는데 한 번도대통령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정권 비판한다고 야당에 내란음모죄를 조작하고 정당해산까지 청구하면서 헌법 파괴하는 박근혜씨가 바로 독재자 아닙니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검찰총장까지 잘라내는 박근혜씨가 독재자 아닙니까?”라거나박근혜씨를 여왕으로 모시고 숨죽이는 바로 저 새누리당…”이라는 식이었다.

이정희, 이번엔 "박근혜씨 독재자" … 야당은 역풍 우려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1/11/12688989.html?cloc=olink|article|default

 

그러자 새누리당에서 발끈했다. 석고대죄해도 부족하다고 한다.

 

새누리당과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10일 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대중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로 호칭한 것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국가지도자에게 막말을 뱉어냈다. 이것이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줄 모르는 진보당의 현실"이라며 "이 대표는 석고대죄해도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정희 '박근혜씨' 논란…"석고대죄"vs"최대한예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1/10/0200000000AKR20131110051200001.HTML?input=1179m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민주당 사람도 예의를 지키라고 훈수를 두었다고 한다.

 

다만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정당해산 심판 청구 등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지만,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진보당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희 '박근혜씨' 논란…"석고대죄"vs"최대한예의"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11/10/0200000000AKR20131110051200001.HTML?input=1179m

 

 

 

한국도 이제 신분제 사회에서 많이 벗어났다. 이제 단지 노비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출세할 기회를 노골적으로 박탈당하는 사회가 아니다. 온갖 법률이 그런 차별을 막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분제 사회의 어법은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극존칭에 대한 집착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부르면 안 되고, 대통령이 죽으면 그냥 “사망했다” 또는 “죽었다”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각하”라는 표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은 반드시 “대통령”이라고 불러야 하며 “사망”해서는 안 되며 “서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씨”는 한국 사회의 공식적인 존칭이다. 방송인 유재석이 지나갈 때에 아이들이 “메뚜기다” 또는 “유재석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이 공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에는 “유재석씨”라고 부른다.

 

직업의 귀천이 없고 신분의 구분이 없는 사회라면 방송인 유재석과 대통령 박근혜의 호칭도 평등해야 한다. 그것이 봉건제에 반대하는 나의 입장이다.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이 석고대죄(席藁待罪)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도 참 거시기하다. 석고대죄란 “거적을 깔고 엎드려 윗사람의 처벌을 기다리다라는 뜻이다. 봉건적인 사고 방식이 담긴 표현인 것이다.

 

새누리당은 극존칭에 대한 이런 집착이 봉건적 신분제 사회의 잔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남몰래 신분제 사회를 꿈꾸는 것일까? 위에 등장하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라는 사람에게도 같은 것을 묻고 싶다. 당신이 꿈꾸는 사회는 봉건 사회인가? 아니면 적어도 호칭의 평등이라도 보장되는 사회인가?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사회책에만 나오면 끝인가? 방송인 유재석과 같은 일개 국민은 “유재석씨”라고 불러도 아무 문제가 없고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라고 부르면 석고대죄를 해야 하나?

 

그나마 어떤 나라처럼 앞에 “위대한”을 붙이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황송하옵지만 감히 미천한 저의 추측을 올립자면, 고귀하신 새누리당 홍지만 원내대변인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회가 좋으신가 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님께서는 다른 국민들보다 더 평등하시다. 따라서 감히 일개 정당의 대표인 이정희 따위가 “박근혜씨”라고 부른다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http://en.wikipedia.org/wiki/Animal_Farm

 

 

 

이전에 나는 호칭과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다.

 

노무현에 대한 수사와 그의 죽음을 바라보며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253

 

민자영(명성황후, 민비)의 호칭에 대한 어느 좌파의 생각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74

 

 

 

이덕하

201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