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에서 가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다큐프로를 방송하는데, 재미난 실험이 한 적이 있었다. 10만원의 사례비를 주겠다며 사람들을 모집한 다음, 끝났을 때 슬쩍 15만원을 건네주는 것이다. 정직실험이라는 건데, 결과는 90% 쯤 돼는 대다수가 5만원의 부당이득을 군말없이 받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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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정직하게 5만원을 반환하는 것이 규범적으로 올바르다. 반면 90% 이상의 사람들이 단돈 5만원에 양심을 속이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올바름과 자연스러움은 때로 상반되는 다른 범주이고, 상당수의 정치적인 갈등은 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규범적 당위성을 내세우며 공격하는 사람이 있고, 자연스럽고 어쩔 수 없는 현상임을 내세우며 방어하는 사람도 있다. 

몇년 전 이명박에게 몰표가 쏠릴 때, 탄식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아파트값 땅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며 양심불량한 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지도자를 부동산값을 기준으로 뽑아서는 안된다는 것은 규범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가격이 오르기를 희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전자는 후자들을 탐욕스럽다 비난하고, 후자는 전자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한다.

지역간 격차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격차 해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효율적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복지 노동 통일 환경등은 어떤가?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바름과 자연스러움이 현격한 괴리를 드러내며 격돌한다.  

때로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투표를 한다. 국가권력기관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며 국기를 흔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도 태연자약하게 집권당후보를 당선시켜주기도 하고, 자신들을 표셔틀쯤으로 여기는 친노정치인들을 호남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규범적 당위성만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이 모두 비난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당위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못 본체 넘어가야만 하는가? 

아마도 올바른 정치적 태도는 양쪽의 극단이 아니라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거 같다. 자연스러움을 무시하고 규범적 당위성만을 내세우는 것은 원리주의 이상주의로 흐르기 쉽고 대부분 실패할 것이다. 반면 당위에 대한 가치 판단마저 사라진 사회는 우리를 지옥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래서 김대중이 갈파한 <서생의 문제의식으로,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라는 지론은 탁월하다. 

국개론이라는게 있다. 국민들이 개새끼라서 나라가 이 모양 이꼴이라는 거다. 그러나 서두의 실험에서처럼, 우리는 대부분 푼돈 5만원에 양심을 속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국개론이 어리석은 것은 그 때문이다. 모두가 천사가 되어야 가능한 사회는 만화속 세상일 뿐이다. 아파트값 오르기를 기대하며 이명박을 찍는 사람들을 탐욕스럽다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욕망을 긍정하며 진보적 당위로 이끄는 것은 어렵다.

모두가 현실과 타협하며 Yes를 외칠 때, 혼자서라도 No를 외치는 용기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며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당위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것, 그게 진보다. 진보가 망한 것은 딴게 아니다. No라고 외치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고, 그것만 해서 망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