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점수를 매길 때 절대 평가 방식과 상대 평가 방식이 있다. 한 반의 학생수가 50명이며 100점 만점인 시험을 보았다고 하자.

 

상대 평가 방식은 이런 식이다:

 

: 1~ 10

: 11~ 20

: 21~ 30

: 31~ 40

: 41~ 50

 

절대 평가 방식은 이런 식이다:

 

: 91~ 100

: 81~ 90

: 71~ 80

: 61~ 70

: 0~ 60

 

상대 평가에서는 반에서 몇 등을 했느냐가 중요한 반면 절대 평가에서는 얼마나 수업 내용을 잘 이해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전체 학생이 공부를 아주 잘해서 모두 91점 이상을 받았다면 절대 평가의 경우 모두 “수”를 받을 것이다. 만약 전체 학생이 공부를 아주 못해서 모두 60점 이하를 받았다면 절대 평가의 경우 모두 “가”를 받을 것이다.

 

상대 평가의 문제점은 모두 아주 잘한 경우에도 10 명은 “가”라는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모두 아주 못한 경우에도 10 명은 “수”라는 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 “도토리 키 재기”라는 속담이 있다. 모두가 10점 이하를 받은 경우 상대 평가를 통해 “수, , , , 가”로 나누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절대 평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수학과 물리학 시험을 보았다고 하자. 그런데 수학 시험은 엄청나게 어려운 반면 물리학 시험은 엄청나게 쉬웠다고 하자. 이런 경우 학생들이 수학과 물리학을 비슷한 수준으로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평가를 하면 수학에서는 모두가 “가”를 받고 물리학에서는 모두가 “수”를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절대 평가가 잘 이루어지려면 시험의 난이도가 과목마다 비슷해야 한다.

 

 

 

과학 이론(또는 가설이나 명제)의 평가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즉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로 나눌 수 있다. 상대 평가의 경우 같은 현상(또는 비슷한 현상)을 설명하는 경쟁 이론 AB를 비교한다. 절대 평가의 경우 어떤 이론을 다른 이론과 비교하지 않고 그냥 이론 자체의 장점이 어느 정도인지 평가한다. “뉴턴 역학에 비해 상대성 이론이 더 낫다”는 상대 평가다. “뉴턴 역학은 훌륭한 물리학 이론이다”나 “점성술은 한심한 이론이다”는 절대 평가다.

 

이 때 “과학 이론의 절대 평가는 가능한가?” 또는 “과학 이론의 상대 평가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 경우의 수는 4가지다.

 

1.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 모두 가능하다.

2. 절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상대 평가는 불가능하다.

3. 상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절대 평가는 불가능하다.

4.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 모두 불가능하다.

 

이 중에 2번인 “절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상대 평가는 불가능하다”라는 명제를 지지하는 과학자나 과학 철학자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없는 이유가 있다. 절대 평가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상대 평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에 A 대한 절대 평가를 해서 “수” 등급을 주었으며, 그 이론과 경쟁하는 다른 이론 B에 대한 절대 평가를 해서 “우” 등급을 주었다면 당연히 상대 평가를 할 때 “A B보다 더 나은 이론이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3번을 지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경쟁 이론 간 상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이론 사이의 비교는 불가능하다. “뉴턴 역학에 비해 상대성 이론이 낫다”라는 식의 평가는 가능하지만 “뉴턴 역학이 진화 심리학의 질투 이론에 비해 낫다”라는 식의 평가는 불가능한 것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3번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대 평가를 통해 서로 다른 분야의 이론들을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논의의 편의상 역학의 경우 뉴턴 역학과 상대성 이론만 있으며 상대성 이론이 더 낫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질투 이론의 경우 정신분석 이론과 진화 심리학 이론만 있으며 진화 심리학 이론이 더 낫다고 가정하자. 상대 평가를 통해 상대성 이론은 “수”를 받고, 뉴턴 역학은 “우”를 받았으며, 진화 심리학의 질투 이론은 “수”를 받고, 정신분석의 질투 이론은 “우”를 받은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수”를 받은 진화 심리학의 질투 이론이 “우”를 받은 뉴턴 역학에 비해 등급이 높긴 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극단적 상대론자들은 상대 평가도 절대 평가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과학 철학자 중에는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가 이런 입장으로 보인다.

 

라우든(Larry Laudan)을 비롯하여 여러 과학 철학자들이 상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절대 평가는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쿤의 경우 정상 과학의 경우 즉 한 패러다임 내에서 작은 이론들이 경쟁하는 경우에는 상대 평가가 가능하다고 본 것 같다. 하지만 패러다임 간의 경쟁의 경우 상대 평가조차도 불가능하거나 아주 어렵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패러다임 간의 경쟁에서 승자가 가려질 때에는 온갖 역사적, 심리적, 전기적(biographic, 傳記) 영향이 변덕스럽게 작동했다고 본 것 같다.

 

나는 절대 평가도 상대 평가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만약 상대 평가조차도 불가능하다면 사이비과학(또는 미신)과 제대로 된 과학을 나누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인간의 성격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도 그냥 믿음일 뿐이며,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도 그냥 믿음일 뿐이며, “인간의 성격은 사주의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도 그냥 믿음일 뿐이다. 모든 믿음은 평등하다. 어떤 믿음이 더 잘 입증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상대 평가는 가능하지만 절대 평가가 불가능하다면 “뉴턴 역학이 점성술보다 낫다”라는 식의 평가는 불가능하다. 점성술의 성격 이론은 정신분석의 성격 이론이나 진화 심리학의 성격 이론과 비교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점성술의 성격 이론이 진화 심리학의 성격 이론에 비해 현저히 열등하다면 점성술의 성격 이론은 한심한 이론이라고 또는 미신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세상에 점성술의 성격 이론과 그것보다 더 열등한 성격 이론들만 있다면 점성술의 성격 이론은 훌륭한 이론이라고 상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미신 취급을 받고 있는 점성술 등이 대안 이론이 없던 과거에는 과학 이론이었다고 주장했던 과학 철학자도 있었다.

 

Paul Thagard(1978), Why astrology is a pseudoscience

http://cogsci.uwaterloo.ca/Articles/astrology.pdf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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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