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과학”은 “normal science”의 번역어다. “통상 과학”이 더 나은 번역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쿤의 생각을 속속들이 아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많이 쓰이고 있는 번역어인 “정상 과학”이라고 쓰겠다.

 

여기서 말하는 개방성(openness)은 “내가 지지하는 이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는 열려 있는 태도를 말한다. 포퍼가 매우 중시하는 태도다. 포퍼가 그리는 이상적인 과학자는 늘 의심에 가득 차서 기존 이론을 어떻게 해서든 반증하려고 덤비는 과학자 같다.

 

반면 쿤이 그리는 정상 과학 시기의 과학자는 패러다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시기의 과학자는 패러다임 또는 거대 이론을 당연시하면서 그것을 적용해 작은 이론 또는 작은 모형(model)을 만들어내는 데 몰두한다. 뭔가 모순이 생기는 듯하면 패러다임을 의심하기보다는 작은 이론을 뜯어고쳐서 해결하려고 한다.

 

 

 

포퍼가 그리는 열려 있는 과학자와 쿤이 그리는 정상 과학 시기의 닫혀 있는 과학자(적어도 패러다임 문제에 대해서는)는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포퍼가 이 문제로 쿤을 비판했다고 한다.

 

Karl Popper(1970), Normal Science and Its Danger

 

패러다임을 의심하지 않는 태도는 맹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포퍼가 우려할 만하다. 귀납법의 문제 때문에 과학 이론은 결코 100% 확실하게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언제든 반증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포퍼가 말하는 개방성이 과학자의 기본 덕목 중 하나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과학자가 의심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된 거대 이론에 대한 의심을 잠시 접어두고 그 이론을 적용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즉 정상 과학도 과학자로서 추구할 만한 일이다.

 

거대 이론 A를 적용한 작은 이론 a를 비판하면서 그것을 더 나아 보이는 작은 이론 b로 대체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때 포퍼가 말하는 개방성은 a에 대한 의심으로는 이어지지만 A에 대해서는 적어도 잠깐 동안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과학자가 A를 맹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a의 문제점에 집중할 뿐이다.

 

과학자가 거대 이론 A를 적용한 새로운 작은 이론 z를 만들어내서 지금까지 아무로 설명하지 못했던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이 때 기존 거대 이론에 대한 의심은 개입되지 않는다. 물론 이 때에도 A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고 싶을 뿐이다.

 

 

 

심지어 위기의 시기 또는 혁명의 시기에도, 즉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듯한 시기에도 과학자 개인은 거대 이론 간 투쟁에 어느 정도 무관심할 수 있다. 이럴 때에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그냥 전제하고 작은 이론들 사이의 투쟁 또는 새로운 작은 이론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과학자가 이런 행태를 보인다고 해서 개방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일종의 분업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거대 이론 간의 투쟁에 집중하고, 어떤 과학자는 작은 이론 간의 투쟁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과학자가 거대 이론 A와 거대 이론 B 사이의 투쟁에 집중할 때, 다른 과학자는 거대 이론 A를 전제한 상태에서 작은 이론 a와 작은 이론 b 사이의 투쟁에 집중할 것이며, 또 다른 과학자는 거대 이론 A를 전제한 상태에서 작은 이론 c와 작은 이론 d 사이의 투쟁에 집중할 것이며, 또 다른 과학자는 거대 이론 A를 전제한 상태에서 새로운 작은 이론 z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또 다른 과학자는 거대 이론 B를 전제한 상태에서 새로운 작은 이론 y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개방성은 “패러다임에 대한 의심을 잠시 제쳐 두기”와 모순되지 않는다. 그리고 쿤이 잘 파악했듯이 거대 이론을 전제하고 작은 이론에 집중하는 과학자가 없다면, 즉 모든 과학자가 거대 이론 깨기에만 몰두한다면 과학의 발달이 지체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이론에 대한 집중이 거대 이론을 깰 만한 씨앗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이론에 대한 집중을 통해 거대 이론과 모순되는 듯한 현상을 발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현상과 거대 이론 사이에 존재하는 듯한 모순을 작은 이론을 교체함으로써 제거하려는 노력이 계속 실패한다면 거대 이론 자체에 대해 의심할 구체적인 근거가 생긴다.

 

“연구의 진전을 위해 기성 패러다임에 대한 의심을 잠시 제쳐 두는 것”과 “기성 패러다임에 대한 맹신”은 분명히 다르다. 기성 패러다임이 100% 진리라고 확신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전제한 후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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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