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디보스톡에서 온 청년 박강수는 거실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가브리노 가는 길을 찾느라고 여념이 없다. 그는 주인

이진에게 그 길은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한 바가 있다.  나는 그가 길을 찾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국도를 한참 달리다 보면

좌우 편에 숲 속으로 진입하는 샛길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샛길 형태는 서로 비슷해서 초행자가 가브리노로 통하는 길을 찾

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걱정 마세요. 곧 떠날거에요."

박강수를 굳게 믿는 이진은 나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버릇처럼 말했다. 이진의 그 마음이 고맙지만 나는 가브리노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작가촌 페레델키노에서 나올 때 마음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자, 그렇다면 툴스카야 방문도 끝난 지금 러시아에 내가 하루라도 더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당장 서울로 돌아가도

급하게 기다리는 일정 같은 건 없다. 당도 이미 해체되어 그런 점은 자유로운 편이다. 그렇지만 달라 몇푼을 들고 하릴 없이 모

스크바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박강수를 내 방으로 불렀다.

" 티켙 일정을 일주일 정도 당기고 싶은데 나를 도와줄 수 있겠소?"

"물론이죠. 잘 생각하셨어요. 여기 민박집도 호텔과 경비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근처 에어로폴로트에 당장 전화해볼게요.

가브리노는 물론 다녀오실거죠? 날자 당겨도 거기 다녀올 시간은 충분해요. "

나는 겉치레로 고개만 끄덕였다.

우라디보스톡에서 대학을 나온 박강수는 러시아 말도 능통하고 어떤 일도 해낼듯 자신감에 차있었다. 첫 취업을 위해 모스크

바로 온 그는 이미 한 작은 회사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며칠 지나면 셀러리맨 생활이 시작되는 신분이었다. 박강수는 여기저

기 전화를 걸어보고 한시간 쯤 지나 내게 와서 말했다.

"여기 에어로폴로트에서 한국여행사로 연락해보라고 해서 서울과 어렵게 통화 했습니다. 좌석은 있고 티켙 날자 변경에 이백

달라 추가요금을 당장 자기네 쪽에 보내달랍니다."

"서울로 어떻게 보내죠?"

"제 계좌에서 보내면 됩니다. 송금 이후엔 변경이 어려우니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보십시요."

"생각할 것 없소. 그대로 송금해주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이백 달라를 꺼내 박강수에게 건넸다.

 

 이제 밤이 세번 지나면 나는 이 도시를 떠난다. 다시 일정을 바꿀 일은 없었다.

니나에게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지금은 그 길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니나를 찾는 것은 내게 사치일까? 전혀 예상치도

못하던 난관이 두번씩이나 앞을 가로막는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실패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나는 니나를

찾기 위해 러시아행을 준비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짐을 다시 풀었다.

 러시아는 7월과 8월이 여행의 성수기이다. 지난해에는 모든 여건이 더욱 좋았다. 당의 관련 당직자들도 하나같이 '그동안

수고가 많았으니 잘 다녀오시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백화점에 가서 신상품 여행가방과 여행길에 편히 입을 수 있는 바

지도 구입했다. B 교수가 이번에도 현지에서 나를 도와줄 안내자를 소개해주었는데 그는 모스크바 연극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마침 서울에 와 있던 그 학생은 내게 전화를 해서 내가 모스크바에 오면 자기네 학교에서 교내행사

로 준비한 체홉의 연극공연에 나를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연극공연이 끝나면 연극에 참여한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도 내

게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러시아 학생들과 갖게 되는 그 시간이 마음에 들었고 기대감을 가졌다. 체홉이라면

나도 얼마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숙소는 그 학생의 제안으로 교통이 좋은 중심가의 트베르스카야로 정하고 예

약도 마쳤다. 그곳에서 일주일 정도 머문 뒤 A를 만나서 가브리노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트베르스카야 거리 이름을 내가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이다. <의사 지바고>에는 이 거리에서 라라의 어머니가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고 난봉꾼 꼬마로프스키가 이런저런 구실로 그 가게를 자주 드나든다는 얘기가 나온다. 라라와 꼬마로프스

키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곳도 바로 그 가게였다. 실제와 얼마나 맞는지 모르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개방 초기

에는 트베르스카야 거리는 낡은 건물들만 즐비해서 우중충한 풍경이었는데 근래 건물을 개조하고 채색을 새로 해서 과

거와는 전혀 다른, 아주 화사한 거리로 면목을 바꾸었다. 큰 길에서 살짝 뒤로 돌아가면 파라솔이 즐비한 노천카페 골목

이 나온다. 차량통행금지라 이곳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차값은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싼듯하지만 이곳 파라솔 아래 앉

아 있을 때는 무슨 큰 호사를 누리는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 거기 머무는 동안 나는 시간이 나면 그 노천카페를 찾을 것

이다.

갖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난 7년간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하면 고통스럽다. 그러나 고통스

런 생각이라 해서 반드시 어둡고 칙칙한 장소에서 그 시간을 되씹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음악도 한 귀절의 시도 고통

스런 것들을 즐거운 방식으로  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그 노천카페의 시간이 내게 작은 축제처럼 기대감

을 갖게 해줬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축제>와 그 곡을 피아노 곡으로 바꾼 쇼팽의 <파

가니니의 추억>을 자주 찾아 들었다. 특히 쇼팽 피아노곡이 마음에 물처럼 스며들었다. 그 곡의 다소 선정적인 선율

이 트베르스카야 뒷골목의 이국풍경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나는 아마 열 차례도 더 그 곡들을 되풀이해서 들었을 것이

다.

 

 

 출발을 이틀 앞두었을 때 당 정책연구소장이 나를 찾아왔다. 테헤란로의 작은 찻집에서 그와 만났다. 표정이 아주 어

두웠다. 정책연구소는 내 여행에 여러가지 도움을 주던 곳이다.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셔야겠는데요. 당이 뒤집히겠어요."

"누가 당을 뒤집나요?"

"누군 누구겠어요. 의원나리님이죠. 의장님 자리 비운 사이 중앙위를 열어서 당을 넘길 계획을 꾸미고 있답니다."

"에이, 누가 또 헛 소문 퍼뜨렸나보군. 당이 그리 쉽게 넘어가나요? 난 우리 중앙위원들 믿어요. 어떻게 유지해온

당인데..."

 거대 야당에서 꼬마당을 흡수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당 대표의 의원직 상실 이후 그런 징

후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그러나 당은 흔들리지 않고 용케 버티어왔다. 반대파의 선두에 당을 넘겨주고 반대급

부를 얻고자 하는 의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중앙위의 대부분 위원들은 당을 지킨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은 있다. 사람들은 도덕이 아니라 작은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현실적으로 정당

과 당원의 생리가 그렇다는 걸 나도 지난 몇년 사이에 배웠다. 지금 그가 선량한 표정으로 웃고 있어도 그때그때

달라지는 그 마음의 흐름은 아마 자신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연구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의 뜻을 바

꾸지 않았다. 이미 내 마음이 너무 깊이 가브리노의 니나에게, 그리고 트베르스카야 거리 생각에 젖어 있었다.

연구소장이 전화기를 꺼내 들고 잠시 밖에 나갔다가 곧 돌아왔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뒤에 당 대표이던 M이 찻집

에 불쑥 나타났다. 연구소장이 응원을 요청한 것이다. M의 자택이 마침 부근에 있었다.

"선생님. 다음에 가셔야겠어요. 많이 기대하신줄로 아는데 어쩔 수가 없네요."

M의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가슴속에서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권력에 의해 의원직을 빼

앗기고 당 대표직마져 내어놓고도 밝은 표정으로 버티는 M 앞에서 그래도 기어코 니나에게 가겠다는 말은 나오

지 않았다. M이 정치인으로 다소 유약한 결함은 있지만 뭔가 사회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동키호테 같은 열정은

내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 트베르스카야라고 했던가요? 거기 커피가 그렇게 맛 있던가요? 값이 비싸다고 하셔서."

"값이야 머 조금 비싼 편이지만 맛이야 어디나 비슷하죠. 조용해서 앉아 있기 편하지요."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했던 우스게 소리를 M이 기억해냈다. 그는 니나도 알고 있었다.

"여행은 마음이 편할 때 다녀오셔야죠. 지금 상태로 떠나도 맘이 편하시겠어요?"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 늦은 시간에 파가니니의 <베니스의 축제>와 쇼팽의 <파가니니의 추억>을

다시 들었다.

여행길을 막아버린 그 정보는 불과 며칠 뒤에 누구의 착각으로 꾸며진 잘봇된 정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사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오후 잠시 해가 비치는 시간에 나는 노브이체르무쉬끼 역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 길을 걷다 보면 길 옆에 있는

낮은 숲에서 비둘기와 참새들이 모여 놀고 있는 걸 자주 볼 수가 있다. 가끔 도보로 튀어나와 행인과 보조를 맟춰

껑충껑충 뜀뛰기를 하는 새들도 있다.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방의 새들이 참 신기했다. 나는 짧은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주방여인이 달려나와 내게 말했다.

"A선생이 전화했어요. 오시는대로 연락 해달랍니다."

"A가 ... 무슨 일이지?

 그 전화는 뜻밖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