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법의 사례로 유명한 것이 있다.

 

전제: 모든 인간은 결국 죽는다.

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결론: 따라서 소크라테스도 결국 죽는다.

 

이번에는 같은 연역법을 수학의 사례에 적용해 보겠다.

 

전제: 모든 자연수는 -1보다 크다.

전제: 666은 자연수다.

결론: 따라서 666–1보다 크다.

 

얼핏 보면 둘 다 아무 문제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례는 666의 사례만큼이나 완벽한 논증 같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소크라테스의 사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연수” 개념과 달리 “인간” 개념에는 애매함이 있다. 자연수 개념은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쓰이는 반면 인간 개념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과학에서는 인간 개념처럼 애매한 개념을 쓸 때가 많다.

 

위의 소크라테스 논증에 대해 처음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보기에는 인간 개념이 전혀 애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신과 인간이 섹스를 해서 분류하기 애매한 존재를 낳았다는 신화를 전혀 믿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인간 개념이 애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인간의 자식도 인간이고 인간의 부모도 인간이다. 따라서 이런 부모-자식 관계를 적용하면 누가 인간인지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진화 생물학의 발달은 인간 개념이 애매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어머니는 인간이다”라는 명제가 항상 성립한다면 1억 년 전의 우리의 직계 조상도 인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당시의 우리 직계 조상을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인간인가? 이것은 인간 개념을 정의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애매함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약 20만 년 전부터 인간이라고 본다 하더라도 정확한 시점을 정할 수는 없다. 즉 “약 20만 년 전의 어떤 사람 A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그 사람의 자식 B는 인간이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소크라테스 논증은 모범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때에는 “여기서 인간 개념이 수학적으로 엄밀하다고 가정하자”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가정이다. 논의의 편의상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볼 때에는 늘 “논의의 편의상” 그런 가정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과학 연구를 할 때에는 “논의의 편의상”이 안 통할 수도 있다. 예컨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인간 개념이 애매하다는 점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물학이나 심리학에서 쓰이는 온갖 개념들이 애매하다. 이럴 때 연역법을 함부로 적용하면 큰 탈이 날 수도 있다. 연역법은 수학적으로 엄밀한 개념에 적용해야 수학적으로 엄밀한 결과로 이어진다. 연역법 자체가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애매한 개념에 적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자식은 인간이다”라는 뻔해 보이는 명제조차도 애매함이 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 엄밀한 진리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과학에서는 수학적 엄밀성을 추구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과학을 제대로 배우고자 한다면 애매성을 인정하고 그것과 친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애매한 것을 엄밀한 것으로 착각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되도록 개념을 애매하지 않게 써야겠지만 애매성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고 착각해서도 안 된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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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