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사전에 따르면 입증에는 “근거나 이유를 내세워 증명함이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입증(confirmation)과 증명(proof)을 구분해서 쓸 생각이다. 증명에서는 수학적 엄밀성을 추구하지만 입증에서는 그 정도의 엄밀성은 기대하지 않는다.

 

과학계나 과학 철학계에서 입증 개념을 여러 가지 의미로 쓴다. 여기에서는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다.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서 그냥 “무모순 입증”, “관련-무모순 입증”, “위험-감수 입증”이라는 어색한 이름을 붙였다.

 

 

 

“무모순 입증”에서는 어떤 가설과 모순되지 않는 관찰 사실을 제시한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이 있다고 하자. 논의의 편의상 까마귀 개념이나 검은색 개념이 애매하지 않다고 가정하자.

 

어떤 까마귀 A를 관찰해 보니 검은색이었다. 이 관찰 사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과 모순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관찰 사실은 무모순 입증의 사례다.

 

어떤 까마귀 B를 관찰해 보니 빨간색이었다고 하자. 이 관찰 사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과 모순된다. 따라서 이 관찰 사실은 무모순 입증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반증 사례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면 무모순 입증 개념이 상당히 쓸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무모순 입증 개념은 상당히 이상하다. 어떤 개 C를 관찰해 보니 흰색이었다. 이것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가설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모순 입증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이 관찰 사실 역시 입증의 사례다.

 

나는 무모순 입증 개념이 이런 문제 때문에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과학 철학자들이 나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과학 철학자 헴펠(Carl Gustav Hempel)은 흰색 개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의 입증 사례로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까마귀 문제(ravens problem, Hempel’s ravens)도 참조하라.

 

http://en.wikipedia.org/wiki/Raven_paradox

 

 

 

“관련-무모순 입증”에서는 가설과 관련된 관찰만 입증 사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개나 코끼리에 대한 관찰 사실은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명제의 입증 사례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까마귀 A를 관찰해 보니 눈이 두 개다”와 같은 것도 “모든 까마귀는 검다”의 입증 사례로 인정받지 못한다. 까마귀의 색깔에 대한 관찰만 그 가설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입증 사례로서 인정 받을 수 있다.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내 생각에는 아직 문제가 있다.

 

이덕하가 초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자. 이덕하의 주장에 따르면 주사위를 던져서 어느 숫자가 나올지 맞힐 수 있다. 그것도 100% 정확히 맞힐 수 있다.

 

만약 무모순 입증 개념을 적용한다면 “까마귀 A를 관찰해 보니 검은 색이다”나 “개 B는 꼬리를 흔든다”, “하늘을 보니 해가 떠 있다”와 같은 관찰 사실들을 100만 개를 모아 놓고 “이덕하가 항상 주사위의 숫자를 맞힐 수 있다”라는 가설을 입증하는 사례가 100만 개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말 이상하다.

 

그렇다면 관련-무모순 입증의 경우에는 어떨까? 이덕하가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예언을 한 후 실제로 주사위를 던졌더니 그 숫자가 나온 것을 비디오로 찍은 것이 100만 개나 있다고 하자. 논의의 편의상 이덕하가 아주 할 일이 없으며, 오래 오래 살 수 있으며, 주사위나 비디오 조작은 없다고 가정하자.

 

관련-무모순 입증 개념에 비추어 볼 때 100만 개나 되는 입증 사례를 모았기 때문에 이덕하에게 초능력이 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할까?

 

아니다. 초능력이 없는 사람도 주사위의 숫자를 우연히 맞힐 확률이 1/6( 17%)는 된다. 따라서 이덕하에게 초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약 600만 번 시도를 한다면 100만 번 정도는 성공을 할 수 있다.

 

 

 

단순이 어떤 관찰 사실이 어떤 가설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만 따져서는 가설을 제대로 검증하기 힘들다. 또한 무모순성만 고려한다면 그 가설과 관련된 관찰 사실만 따진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위험-감수 입증” 개념이 필요하다. 위험-감수 입증의 경우 반증될 위험을 감수한 관찰 또는 실험만 입증 사례로 인정한다.

 

“이덕하는 항상 주사위 숫자를 맞힐 수 있다”라는 가설을 검증하고 싶다면 연속으로 1000번 예언하게 한 후 모두 맞히는지 보는 식으로 실험을 해야 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그 가설은 반증된다. 이런 실험은 반증의 위험을 감수하는 실험이다. 만약 100만 번 연속으로 예언을 하게 한다면 위험을 더 많이 감수하게 된다. 위험-감수 입증에서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할수록 입증의 설득력이 더 커진다.

 

내가 여기서 위험-감수 입증이라고 부른 것이 포퍼의 반증론의 합리적 핵심인 것 같다. 입증 개념이야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포퍼가 주장했듯이 위험을 감수한 입증 사례만 제대로 된 입증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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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