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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에 대한 지식이 일천해서 상당히 계면쩍긴 한데, 논쟁을 하다보면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하나 있어서 한번 떡밥을 던져봅니다. 요약하면 <논증과정상의 오류 유무로 결론의 참과 거짓을 판정하면 안된다>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소는 다리가 2개이다. 따라서 소는 포유류이다>
명백히 소는 포유류라는 결론 부분은 참이죠. 그러나 소가 표유류임를 끌어내는 과정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소는 다리가 2개가 아니라 4개이며, 또한 어떤 동물의 다리 숫자만으로는 포유류임를 판정할 수도 없습니다. 양서류 파충류도 다리가 4개이니까요. 그러나 논증과정이야 어쨌든 결론 자체는 참입니다. 따라서 논증과정의 오류와 결론의 참과 거짓은 별도로 다루어야할 문제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종종 문제가 발생하곤 합니다.
1. 논증과정에 오류가 있으므로, 소는 포유류가 아니다 (X)
2. 논증과정에 오류가 있다니, 그럼 포유류가 아니라는 말이냐? (X)
3. 교과서에 소는 포유류라고 써있으니, 나의 논증과정에는 오류가 없을 것이다. (X)
4. 그럼 소가 포유류 아니라는걸 니가 확실하게 논증해봐라. 못하지? 따라서 소는 포유류이다. (X)
물론 이처럼 이미 결론의 참과 거짓이 명백한 경우에는 그런 실수를 잘 안할텐데, 그렇지 않는 경우에는 흔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 진화론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생물은 진화하지 않는다.
- 맑스의 이론에는 오류가 있으므로, 자본주의가 망하고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당신의 설명은 오류이므로, 친노가 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며 사실이 아니다.
- 내 설명이 오류라니, 그럼 친노가 없다는 말인거냐?
기타 등등.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께요.
1. "없다"는 논증
논리적으로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건,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피노키오님의 예 중 두 가지가 이에 해당합니다:
'진화란 없다'와 '친노는 없다', 이렇게 두 가지입니다.
아무리 진화론의 오류를 지적하고 진화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유를 대도, 진화 현상의 예 하나만 제시하면 진화는 있는 게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진화의 예가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아도 앞으로 언젠가는 그 진화의 예가 하나라도 알려질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따라서 논증을 통해 '없다'고 주장하는 건, '있다'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친노는 없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친노가 없다고 주장해도 누군가가 나타나서 '나는 친노인데'라고 말하면 친노는 있는 겁니다.
2. 나머지,
나머지는 오류의 대상이 무엇인지만 명확하게 밝히고, 그 부분에서 오류라고 말하면 됩니다.
피노키오님 예에서,
맑스의 이론이 오류라면, 그 오류인 지점이 무엇인지만 확실하면 그 부분만 반박하면 됩니다. 친노가 있다는 근거가 오류라면 그 사람이 말하는 바로 그런 친노가 없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확대해석해서, 맑스 이론 자체가 엉터리다 혹은 친노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건 잘못입니다.
또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건 주장에 근거가 없거나 약하다는 것 뿐입니다. 이를 또 확대해석해서, 어떤 사람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에 대한 지지로 삼으면 곤란합니다.
정리하자면,
1. 무엇이 없다는 건 논증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이 어려움이 '있다'는 걸 지지한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2. 누군가의 주장에 오류가 있다는 건, 그 오류가 있는 부분에서 근거가 없거나 약하다 정도의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써 놓고 보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네요. "오류를 확대해석하지 말자", 이 정도가 되네요. 지게님의 분모 숨기기와 같은 의미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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