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두어 사람이 나더러 넌 고종석 씨 비슷한 내음으로 말한다고 하길래 뭔 소린가 했다. 나는 고종석 씨를 지금도 잘 모르고 꽤 인정받는 여수 출신 언론인에 학자풍 소설가 정도로 알고 있고 그가 쓴 저서 한 권 읽어본 적이 없다. 객관적인 세간의 평가에 관계 없이 내가 그에게 듣보잡이듯 그도 나에게 듣보잡이다. 듣보잡 = 개인적으로 인연이 없는 사이  별 볼일 없는 놈.  
그의 블로그 글들을 읽어본 것도 오늘이 첨이다. 한국일보나 한겨레 등등에 쓴 기사나 글들을 어쩌면 몇 차례 접해봤을지는 모르겠다.

알아봤더니 어쩌다 내가 예전에 블로그에 질렀던 단상들이 그 사람이 가끔 기사나 블로그에 그린 풍경과 조금 비슷하다는 소리였다.그 사람이야 언론인에 문필가이이니 내가 그 사람 댓거리는 못 되고 그저 내가 조악한 필치로 그려낸 소재, 그리고 소재를 쳐다보는 시각에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어 보인다는 그런 소리.

대륙시대 님을 나는 잘 모리고 차칸노르 님 대 몇 사람의 갈등이 일었을 때 읽은 글 두어편과 댓글 조금이 내가 접한 전부. 그런데 어제 늦은 밤 대륙시대 님과 바이올로기 님의 논쟁을 보면서 뜬끔없이 두 사람(이거 두 분이라고 써야 할까? 이 사전검열이란!) 모두 고종석 블로그의 글들을 좀 읽어봤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연대 순으로 정리되어 있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고종석 씨의 발달사랄까 그런 걸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기 때문. 친노며 반노며 비노며 지역주의며 등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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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 아주 일부
http://kohjongsok.egloos.com/111358

개인주의

내가 20세기 말 파리에서 발견한 것 가운데 마음에 가장 들었던 것은 집단으로부터 놓여난 개인일 것이다. 물론 모든 공동체에는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도덕이 있다. 그러나 그 최소한의 도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가 문신을 하든, 동성애를 하든, 마약을 하든 사회는 그것을 용인해야 한다는 원리는 견결히 지지돼야 한다. 나는 이런 개인주의 선언을 10년 전에 다소 선동적 톤으로 쓴 바 있다.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부분을 패러디한 그 글 끝머리는 이렇다. “만국의 개인들이여, 흩어져라! 흩어져서 싸우라! 민족주의의 심장에, 모든 집단주의의 급소에 개인주의의 바이러스를 뿌려라!”
  
불순 또는 비순수

결국 내가 20세기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모든 순수한 것에 대한 열정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순수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은 말을 바꾸면 근본주의, 원리주의다. 그것이 종교의 탈을 쓰든, 학문이나 도덕의 탈을 쓰든, 인종이나 계급의 탈을 쓰든 마찬가지다. 순수에 대한 열정은 좋게 말하면 진리에 대한 열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광신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 진리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이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소수파나 이물질을 배제하는 전체주의의 문을 연다. 그 문을 닫아놓는 길은 모든 사람들이 진리의 전유권專有權을 스스로 포기하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진리를 전유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사랑을 줄이는 것,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이다. 흩어져 싸우는 개인들이란 결국 세계시민주의자들이고, 세계시민주의의 실천 전략은 불순함의 옹호다. 결론을 내리자. 섞인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20세기의 교훈이다. 아직 우리는 그 교훈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듯하지만.

『젊은 날의 깨달음』, 2005년,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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