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그래비티 Gravity》 에는 라이언 스톤으로 분한 샌드라 불럭(Sandra Bullock, 산드라 불록, 산드라 블록)이 우주 공간에 조난 당해 죽음의 공포와 사투하며 비명을 지르고 “신음 소리”를 내는 장면이 ‘롱 테이크’로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이 영화의 제작진과 감독은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미국 영화만큼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을 영화 제작에 철저히 응용 · 적용 · 활용하는 영화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미국 영화에는 일종의 “공식”이나 연출 기법 같은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즉 《그래비티 Gravity》를 비롯한 많은 미국 영화가 지극히 상투적이고 인위적인 장면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아주 뛰어난 역대급 과학영화(SF)라 할 수 있는 《에일리언 Alien》(1979, 1986, 1992, 1997) 시리즈의 한 편에서 1편 막판에서 시거니 위버(Sigourney Weaver,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역사상 가장 괴기/잔혹/무자비한 외계 괴물 에일리언의 공격을 피해 동면(?) 캡슐 안으로 다급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숨어들어가는 집요한 추격과 공격에 맞서 필사적인 도피 끝에 마지막으로 결정적 반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시거니 위버(엘런 리플리 Ellen Ripley)는 공포와 위급함으로 신음 소리를 거칠게 토해내며 헉헉헉 숨을 몰아쉰다. 바로 이 장면을 《그래비티 Gravity》에서 샌드라 불럭 혹은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이 그대로 따라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대사의 유무 혹은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지만, 그 연기와 연출의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 기반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공포 기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급박한 긴장감 기제, 성적 오르가즘 기제, 쾌감 기제는 어느 정도 서로 중첩되거나 아주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본다.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질러대는 비명, 극도의 두려움에 떨며 거칠게 뱉어내는 신음 소리, 성적 오르가즘 혹은 쾌감의 극치에 달해 무아지경에서 내지르는 신음 소리 등등은 그 어떤 근원적 주파수를 공유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관련된 신경과학적 연구를 어디서 본 듯도 하다...) 따라서 내 생각에 《에일리언》에서의 시거니 위버 신음 소리와 《그래비티》에서의 샌드라 불럭 신음 소리는 성적 쾌감의 신음 소리와 완전히 상호치환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시거니 위버가 에일리언에게 쫓기며 거칠게 토해냈던 신음 소리, 즉 공포와 다급함과 삶에의 본능적 욕구가 뒤섞인 거친 신음 소리 혹은 비명 소리는 한 성애영화 혹은 포르노의 격렬한 성행위 장면에서 출연 여배우가 내지른 오르가즘적 쾌감의 거친 신음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전에 아무것도 몰랐던 영화 관객들은 ‘스릴’ 넘치는 추격과 도피의 장면에 나오는 시거니 위버의 그 연기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극도의 공포와 다급함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즉 오르가즘적 쾌감에 겨운 신음 소리를 공포에 질려 거칠게 내뱉는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로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후담이 없었다면 두 가지 신음 소리, 즉 공포로서의 신음 소리와 쾌감으로서의 신음 소리 사이의 차이점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두 신음 소리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 견지에서 볼 때, 동일한/유사한 기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주파수나 파형도 서로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같은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인식에서 보면, 《그래비티》의 그 롱 테이크 장면은 너무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객들의 공포 기제, 스릴감 기제, 오르가즘 기제, 쾌감 기제를 너무 계획적/계산적으로 자극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기법적 계획/계산을 간파하고 비평적 시각에서 보면 공포/스릴감/오르가즘/쾌감 따위를 거의 느낄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일부러 느끼지 않으려는 반감정이입적 역기제가 발동한다. 즉 일종의 냉소적 기제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 공간의 조난 상황에서 샌드라 블럭이 다급하게 토해내는 신음 소리는 사실상 성적 코드를 심은 (의도적) 신음 소리라 할 수 있다. 즉 영화 제작진/연출진은 관객들의 스릴감을 성적 오르가즘의 주파수로 극대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술보다는 흥행 수입, 돈을 위해 이런 수법을 너무 남발한다.)  

요컨대 현대 미국 영화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으로 철저한 기획하에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획의 철저성이 오히려 미국 영화의 상투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영화의 이런 상투성에는 이중적 측면(혹은 다중적 측면)이 있다. 상투성이지만 말 그대로의 단순한 상투성에만 머물지 않는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계산적 상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 영화적 상투성이 세계의 대중 관객들에게 압도적으로 먹혀들어간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의 부정적 측면인 동시에 긍정적 측면이다. 즉 상투성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약점인 동시에 압도적인 강점이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