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그래비티 Gravity》 에는 라이언 스톤으로 분한 샌드라 불럭(Sandra Bullock, 산드라 불록, 산드라 블록)이 우주 공간에 조난 당해 죽음의 공포와 사투하며 비명을 지르고 “신음 소리”를 내는 장면이 ‘롱 테이크’로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 이 영화의 제작진과 감독은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에 상당히 조예가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미국 영화만큼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을 영화 제작에 철저히 응용 · 적용 · 활용하는 영화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미국 영화에는 일종의 “공식”이나 연출 기법 같은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즉 《그래비티 Gravity》를 비롯한 많은 미국 영화가 지극히 상투적이고 인위적인 장면을 남발한다는 것이다.
아주 뛰어난 역대급 과학영화(SF)라 할 수 있는 《에일리언 Alien》(1979, 1986, 1992, 1997) 시리즈의 한 편에서 1편 막판에서 시거니 위버(Sigourney Weaver,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역사상 가장 괴기/잔혹/무자비한 외계 괴물 에일리언의 공격을 피해 동면(?) 캡슐 안으로 다급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숨어들어가는 집요한 추격과 공격에 맞서 필사적인 도피 끝에 마지막으로 결정적 반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시거니 위버(엘런 리플리 Ellen Ripley)는 공포와 위급함으로 신음 소리를 거칠게 토해내며 헉헉헉 숨을 몰아쉰다. 바로 이 장면을 《그래비티 Gravity》에서 샌드라 불럭 혹은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이 그대로 따라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대사의 유무 혹은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지만, 그 연기와 연출의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 기반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공포 기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급박한 긴장감 기제, 성적 오르가즘 기제, 쾌감 기제는 어느 정도 서로 중첩되거나 아주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본다. 또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질러대는 비명, 극도의 두려움에 떨며 거칠게 뱉어내는 신음 소리, 성적 오르가즘 혹은 쾌감의 극치에 달해 무아지경에서 내지르는 신음 소리 등등은 그 어떤 근원적 주파수를 공유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관련된 신경과학적 연구를 어디서 본 듯도 하다...) 따라서 내 생각에 《에일리언》에서의 시거니 위버 신음 소리와 《그래비티》에서의 샌드라 불럭 신음 소리는 성적 쾌감의 신음 소리와 완전히 상호치환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시거니 위버가 에일리언에게 쫓기며 거칠게 토해냈던 신음 소리, 즉 공포와 다급함과 삶에의 본능적 욕구가 뒤섞인 거친 신음 소리 혹은 비명 소리는 한 성애영화 혹은 포르노의 격렬한 성행위 장면에서 출연 여배우가 내지른 오르가즘적 쾌감의 거친 신음 소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전에 아무것도 몰랐던 영화 관객들은 ‘스릴’ 넘치는 추격과 도피의 장면에 나오는 시거니 위버의 그 연기를 보면서 손에 땀을 쥐고 극도의 공포와 다급함을 함께 느꼈던 것이다. 즉 오르가즘적 쾌감에 겨운 신음 소리를 공포에 질려 거칠게 내뱉는 신음 소리와 비명 소리로 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후담이 없었다면 두 가지 신음 소리, 즉 공포로서의 신음 소리와 쾌감으로서의 신음 소리 사이의 차이점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두 신음 소리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 견지에서 볼 때, 동일한/유사한 기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주파수나 파형도 서로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같은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인식에서 보면, 《그래비티》의 그 롱 테이크 장면은 너무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객들의 공포 기제, 스릴감 기제, 오르가즘 기제, 쾌감 기제를 너무 계획적/계산적으로 자극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 기법적 계획/계산을 간파하고 비평적 시각에서 보면 공포/스릴감/오르가즘/쾌감 따위를 거의 느낄 수 없게 된다. 오히려 일부러 느끼지 않으려는 반감정이입적 역기제가 발동한다. 즉 일종의 냉소적 기제가 발동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주 공간의 조난 상황에서 샌드라 블럭이 다급하게 토해내는 신음 소리는 사실상 성적 코드를 심은 (의도적) 신음 소리라 할 수 있다. 즉 영화 제작진/연출진은 관객들의 스릴감을 성적 오르가즘의 주파수로 극대화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술보다는 흥행 수입, 돈을 위해 이런 수법을 너무 남발한다.)
요컨대 현대 미국 영화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심리학적으로 철저한 기획하에 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획의 철저성이 오히려 미국 영화의 상투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영화의 이런 상투성에는 이중적 측면(혹은 다중적 측면)이 있다. 상투성이지만 말 그대로의 단순한 상투성에만 머물지 않는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계산적 상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미국 영화적 상투성이 세계의 대중 관객들에게 압도적으로 먹혀들어간다는 얘기다. 미국 영화의 부정적 측면인 동시에 긍정적 측면이다. 즉 상투성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약점인 동시에 압도적인 강점이랄 수 있는 것이다.
아하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영화평 잘하시네요
그런데 산드라 블럭 너무 늙었고 게다가 우주복으로 칭칭감아서 성적코드는 아닌듯하고
결정적인 문제는 숨소리는 긴박하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데 쓰잘데 없는 말을 많이해서 산소가 부족하면 말을 많이 하면 더 빨리 고갈될 것이라는 상식과 충돌이 되어 각성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산드라 블럭 너무 늙었고 게다가 우주복으로 칭칭감아서 성적코드는 아닌듯하고
→ 흐강 님 지적대로 샌드라 불럭은 탱탱한 청춘을 넘어섰고, 그 몸/육체마저 완전히 밀봉해버리는 우주복 때문에 시각에 의존하는 육체적인 성적 코드를 심을 수는 없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리/음향으로서의 청각적인 성적 코드를 강하게 심었다는 것입니다. 청각은 샌드라 불럭의 나이와 우주복의 밀봉과 같은 제약을 거의 받지 않죠. 또한 시각적 몰입감과 청각적 몰입감 (더불어서 촉각적, 진동감각적, 운동감각적 경험까지) 따위를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아이맥스(IMAX) 영화에서 음향의 과장과 암시적 코드화는 필수입니다. 무중력 우주 공간에서 샌드라 불럭이 토해내는 비명 소리, 신음 소리, 거친 숨소리는 관객들의 감각적 성감대를 최대한 자극하도록 (기획적으로) 과장되고 코드화됐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 님:
결정적인 문제는 숨소리는 긴박하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데 쓰잘데 없는 말을 많이해서 산소가 부족하면 말을 많이 하면 더 빨리 고갈될 것이라는 상식과 충돌이 되어 각성이 된다는 겁니다
→ 위 흐강 님의 지적은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거두절미의 방법론/미학”은 필수이자 기본입니다. 영화 제작진/출연진/감독도 자신들의 영화가 “과학적 리얼리티”에서 상당 부분 벗어난다는 사실을 압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과학적 리얼리티를 그것 그대로 고려하고 세세히 살리려다간 영화 만들지 못하는 것이죠. 영화 하지 말고 과학을 해야 될 겁니다. 그러나 영화는 드라마고, 환상이고, 4차원이고, 허구라 할 수 있죠. 드라마의 감동을 위해, 환상을 만들고, 4차원의 초과학을 끌어들이고, 현실보다 더 그럴듯한 허구를 지어내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현실의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거두절미되겠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알면서도 영화에 빠져듭니다. 즉 산소가 모자라는데도 쓰잘데 없는 말을 많이 한 것은 과학을 거두절미하고 감동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방법이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관객의 시각을 떠난 비평가의 시각은 각성 · 냉소 · 까탈스러움 따위가 필수일 것입니다.
말하느라 산소를 더 쓸텐데 말 많이한다 싶었으나 그렇지 않으면 둔중하고 곧 위험해지는 우주복 안에서 두려움과 고립감을 더 느끼게 되서
그러겟다 싶엇는데... 도무지 산소부족으로 인한 호흡이 성적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앗는데 퀄리아님은 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느꼇는지.. 걍 들리는 소리가 비슷햇다고 여기는지..
어쩌면 영화속 상황에 이입하지 못하고 이리 딴생각을 할수가 잇을까 싶고 그렇네요
사실이냐 물엇던 건 네번째 단락 첫문장이구요
쥔공이 소유즈에서 태아처럼 보엿던 건 동감하는데 무중력에서 유영하는 게 무척 편해보이는 건
그게 생명탄생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비록 중력은 없지만 저 아래 지구와 같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에 잇어서..
불편한 우주복을 벗을 수 잇어서.. 그리고 위험천만한 우주공간에서 벗어날 수 잇어서 어쨋건 임무를 성공해서라고 봣는데 말입니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위대한 고향처럼 보이던데요
도무지 산소부족으로 인한 호흡이 성적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앗는데 퀄리아님은 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느꼇는지.. 걍 들리는 소리가 비슷햇다고 여기는지..
어쩌면 영화속 상황에 이입하지 못하고 이리 딴생각을 할수가 잇을까 싶고 그렇네요
→ 문제의 장면에서 샌드라 불럭(라이언)이 내는 소리는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숨소리 따위가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산소 부족이라는 설정은 “과학적 고증”의 설정으로서, 문제의 장면을 촬영할 때 과학적 리얼리티를 어느 정도로 살릴 것인가 하고 고려는 할 수 있지만, 드라마를 위해 (즉 “영화적/허구적 리얼리티”를 위해) 무시하거나 일부 왜곡도 할 수 있는 수준의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문제의 장면은 말 그대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는 조난 장면인데요. 무중력 우주 공간이라는 특수 배경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우리가 익히 봐왔던 산악 조난 영화, 해양 조난 영화, 고층 빌딩 재난 영화 따위 등등에 나오는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의 미장센(mise en scène)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형적 미장센에서는 위기 상황에 대한 극적인 연출을 위해, 즉 관객들의 몰입과 반응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의 두 가지 근본적인 무기인 “시각”과 “청각”을 과장하고 조작하는 것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은 무중력 우주 공간이라는 특수 배경에 (그 특수 상황을 기본적으로 고려는 했지만) 거의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다양하고 화려한 “시각”과 “청각”의 향연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반사체나 매질이 없으면 절대 암흑과 절대 침묵의 세계인 무중력 우주 공간을 역으로 이용해서 시각과 청각의 본질과 위력을 과시했다는 얘기입니다. 예컨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산소 부족으로 인한 호흡 곤란과 질식감을 오히려 역으로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로 더욱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즉 문제의 장면에서 샌드라 불럭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숨소리를 지상에서의 그것들보다 더 생생하고 자극적이고 감각적으로 들리도록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러한 유형들의 미장센에서 비명 소리, 신음 소리, 숨소리, 더 나아가서 기쁨의 환호 소리 따위 등등에 성적 요소를 심는 것은 (가미하는 것은) 의식적/무의식인 차원을 떠나서 아주 일반화된 “장난질”입니다(좀 냉소적으로 말해서). 위급한 상황이든, 숭고한 상황이든, 절박한 상황이든, 성스러운 상황이든, 우스꽝스러운/코믹한 상황이든 모든 상황에 성적 요소를 심는 것과, 또 그것을 성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이젠 일상화/상투화됐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노골적이거나 천박하거나 역겨울 때는 미학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일 뿐입니다. 바로 이런 비평적 시각으로 봤을 때,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이 롱 테이크로 찍은 문제의 장면은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략 위와 같은 얘기가 윌마 님이 지적한 저의 반감정이입적인 “딴생각”입니다.
윌마 님:
사실이냐 물엇던 건 네번째 단락 첫문장이구요
→ 네, 그건 (거의) 사실입니다. 2000년대 중반쯤에 《에일리언 Alien》 시리즈 ‘광팬’이라고 밝힌 국내의 한 여성 저자의 책에서 봤던 듯도 하고요. 또 《에일리언 Alien》 제작진/연출진/출연진 가운데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하는 인터뷰를 봤던 듯도 합니다. 아무튼 책인지 영상인지의 기억은 불확실하지만, 그 사실에 관한 내용을 보거나 들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혹시 이에 관한 자료가 있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요. 딱 하나의 자료밖에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글자색은 인용자]
리플리가 에일리언과 최후의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는 검열 삭제 중인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어가 있다.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유도하기 위해 넣었다고 한다. 배경음악, 배우의 숨소리, 효과음과 섞여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들린다.어디서? 안들리는데.
출처: http://mirror.enha.kr/wiki/에일리언%201
그런데요, 윌마 님이 지적한 제 글의 넷째 단락말고 둘째 단락 첫 문장에 사실 관계를 약간은 틀리게 기술한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저 또한 《에일리언 Alien》 시리즈를 아주 오래 전에 봤기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구절을 쓸 때 긴가민가 하는 느낌에 물음표(?)를 집어넣었던 것인데요. 아무래도 정확한 기술은 아닌 듯합니다. 해당 영화를 다시 보고 정확히 기술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문제의 구절을 일단 아래와 같이 수정하고자 합니다.
수정 전:
아주 뛰어난 역대급 과학영화(SF)라 할 수 있는 《에일리언 Alien》(1979, 1986, 1992, 1997) 시리즈의 한 편에서 시거니 위버(Sigourney Weaver,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역사상 가장 괴기/잔혹/무자비한 외계 괴물 에일리언의 공격을 피해 동면(?) 캡슐 안으로 다급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숨어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수정 뒤:
아주 뛰어난 역대급 과학영화(SF)라 할 수 있는 《에일리언 Alien》(1979, 1986, 1992, 1997) 시리즈의 한 편에서 1편 막판에서 시거니 위버(Sigourney Weaver, 시고니 위버)가 영화 역사상 가장 괴기/잔혹/무자비한 외계 괴물 에일리언의 공격을 피해 동면(?) 캡슐 안으로 다급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숨어들어가는 집요한 추격과 공격에 맞서 필사적인 도피 끝에 마지막으로 결정적 반격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반에 좀 졸긴 했지만,
오 그럴싸한데~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우주인들에게 고증을 잘 받은듯 합니다
특히 qualia님 말씀 하신 그 소리 부분에서 리얼리티가 아주 탁월했습니다
영화속 성적코드로 읽히는 부분은 딱히 없었습니다
굳이 꼽자면 산드라 블록이 혼자서 소유즈에 도착후 우주복을 벗고 유영하는 장면이 그런 의도나 느낌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전 그래비티가 원래 은유한 것은 생명의 탄생이라고 봤습니다
그렇게 의심되는 단서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장면에서 우주인들이 모두 탯줄(생명줄)을 달고 있습니다
산드라블록이 혼자 우주미아가 될 처지에서 조지클루니와 조우하는장면(남녀의 결합,정자와 난자의 결합)
소유즈로의 우여곡절 끝의 도착(착상)
산드라블록의 소유즈에서의 유영장면은 누가 봐도 태아의 모습입니다
산드라블록이 과거에 자신의 아이를 잃어 삶의 의욕이 약하는 점
지구로 오게 만들어준 중국 우주정거장의 이름이 10을 의미하는 텐(10)궁
캡슐이 붉게 불타며 대기권을 집입하는 것은 출혈과 출산의 상징
호수에 떨어진 캡슐이 자동 부유 장치가 없이 가라 앉아 산드라 블록이 물(양수)속에서 헤엄쳐 나온다는 설정
새로운 생명을 받아 출생한 신생아 처럼 새생명을 받은 산드라블록 역시 흠벅 젖은채 아무도 없는 들판을 향해 업드려 흐느끼는 마지막 장면
제가 좀 오버 한듯하지만 전 이걸 생명탄생의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덧붙여 한가지 더 그래비티의 미덕이라면 그 촬영기법과 편집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이 군더더기 없는 롱테이크들입니다
그런 느린 편집을 통해서 이런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만든다는것 역시 소흘히 넘길 점은 아닌듯합니다
러셀 님, 《그래비티 Gravity》의 은유에 대한 러셀 님의 해석은 상당히 그럴듯합니다.
즉, 생명줄 ↔ 탯줄, 샌드라 불럭과 조지 클루니의 조우 ↔ 난자와 정자의 결합, 우주선 안에서 유영하는 샌드라 불럭 ↔ 양수 속의 태아, 등등의 해석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이라고 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그래비티 Gravity》가 생명과 생명 탄생의 숭고함에 대한 헌사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러셀 님의 위와 같은 해석으로 《그래비티 Gravity》의 주제가 일목요연하게 한 줄로 꿰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일단 영화는 안 봤습니다 :)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이 영화에서 성적 코드를 보는 갈래가 qualia 님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려는 몸부림 같은 것으로서의 성으로, 러셀 님은 그 공포를 이겨낸 생명의 탄생(혹은 DNA 전달을 통한 부활)으로서의 성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둘은 샴쌍동이 아닌가요?
카메라 워킹은 훌륭한 편이죠. 그러나 그 나머지 모두는 너무 노골적입니다. 나를 이렇게 해석해 달라고
곳곳에서 웅변을 하고 있죠. 보통 이런 영화들을 어떤 사람들은 진부하고 상투적이며 언발란스하다고 평
하죠. 산소공급기에 장착된 팬 돌아가는 소리가 안나는 등등 리얼리티 체크 성적도 그리 좋지 않은데, 적
잖은 이들이 다큐멘터리 필이 난다고 코멘트할 정도로 리얼한 포즈를 취하는 듯한 영화가 내실은 그 포즈
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보아넘길만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죠. 어떤 이들
에게는 말입니다. 물론 대다수의 내러티브 영화 내지 대중 영화들이 이 수준을 넘어서지를 못하고 처음서
부터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도 않으니 그 정해진 한계 내에서라면 그래비티는 이럭저럭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다른 부분은 은 어떤지 모르겟지만 소리 부분은 무척 리얼하다고 느꼇습니다
그래비티는 카메라 시점에 따라 소리가 나기도 안나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주복 입은 산드라블록을 정면에서 비추다 점점 시점이 우주복안의 산드라블록의 시점으로 옮겨가는 장면의 경우
딱 그 우주복 관통하는 지점 부터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하자만 매질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소리가 들립니다
우주자체는 완벽한 침묵의 상태니까요
그러므로 인공위성이 폭발하는 장면도 시점이 어디냐에 따라 아무 소리도 안들리기도 하고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면에서 음향은 아주 세심한 고증을 거쳐 제작되었다고 느꼇습니다
칼도 님, 맞습니다. 《그래비티 Gravity》의 장치적 설정은 너무 많은 듯하고 너무 표가 나는 듯합니다. (뭐 다른 나라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국 영화 대부분은 상업성/흥행성을 최우선으로 가치로 두기 때문에 관객/대중의 감각을 최대한 자극하는 내용/형식/규모로 제작을 하죠. 그러면서도 작가적 미학과 평단의 비평을 동시에 “적당히” 고려하려고 하죠. 바로 이런 점들이 미국 영화의 상투성과 진부함을 전형화하는 것 같습니다.
러셀 님, 그렇죠. 많은 평자들이 《그래비티 Gravity》의 소리 처리와 음향 효과 기법을 높게 평가하더군요. 이런 청각적 탁월함을 제대로 즐기려면 최첨단 음향 시스템인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설비가 된 극장에서 봐야/들어야 한다고 추천하더군요.
진부하다하길래 내러티브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플롯에 대한 비판일까 싶었는데, 어떤 테이크에서 긴박함을 표현하려고 호흡을 조절한게 '진부'하다니...
저한테는 교향곡의 끝자락에서 주제가 낮은코드로 변주되는건 진부하다는 수준의 말같네요.
ItGetsBetter 님, 아, ItGetsBetter 님의 냉소가 마치 찬물을 끼얹는 것 같네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ItGetsBetter 님의 수준 높은 영화평이나 촌평을 “구체적으로” 얻어듣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대여섯 문장 정도로 압축된 촌평이라도 정말 들어보고 싶네요.
그런데요. ItGetsBetter 님이 제 글을 《어떤 테이크에서 긴박함을 표현하려고 호흡을 조절한게 '진부'하다니...》라는 식으로 요약하고 황당하다는 취지의 비판을 하셨는데요. 그러나 제 글 어디에도 저런 (취지의) 얘기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ItGetsBetter 님은 제 글을 오독했거나, 지나치게 거두절미하고 왜곡한 것은 아닌지요? (물론 의도적 왜곡이 아닌 부정확한 독해 때문에 발생하는 왜곡을 말합니다.) 제 글이 그 무슨 수준 따위가 있는 글이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다만, 남의 글은 (수준 고하를 막론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파악하고, 그런 정확한 독해에 기반해서 날카롭게 비판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확 깨는 비판의 말씀, 고맙습니다.
ItGetsBetter 님:
님의 글에서 그래비티 이야기는 롱테이크 장면에서 그것도 '호흡'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 호흡말고 다른 얘기는 너무 ‘허접해서’ 아예 무시하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않다면, 제 윗글을 어떻게 저렇게 거두절미할 수 있는 것인지요? 제 글이 아무리 허접해도, 제 글에는 호흡 얘기말고 그보다 더 중점적인 얘기가 몇 가지 더 있다고 판단합니다.
ItGetsBetter 님:
그걸 뇌심리학을 이야기하면서 성적 오르가즘의 가제이니 이런 이야기를 하신거죠. 제가 오독한건가요?
→ 뇌심리학이라뇨? 그런 용어는 제 글에 없습니다. 물론 그건 ItGetsBetter 님이 뇌과학/인지과학/심리학 따위를 뭉뚱그려 얘기한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남의 글을 “비판할 때는” 남이 구사한 개념어는 정확하게 인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글은 문제의 롱테이크 장면에 나오는 샌드라 불럭의 호흡 그 자체를 문제 삼은 게 전혀 아닙니다. 게다가 제 표젯글 자체에는 “호흡”이라는 단어조차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호흡과 숨소리(숨소리에 성적 코드를 심어 청각적 자극을 극대화하는 연출과 연기)는 서로 다른 얘기입니다. 즉 사실을 요약하자면, 비명소리/신음소리/숨소리가 뒤섞인 청각적 자극의 기획적 연출과 과잉 연기에 대해서 얘기했고, 그런 기획적 연출과 과잉 연기가 현대의 많은 미국 영화가 전형적으로 노출하는 상투성이자 진부함의 하나라는 얘기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역설적 의미에서” 미국 영화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강점이다라고도 했죠. 다른 소소한 얘기도 더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어떻게 《어떤 테이크에서 긴박함을 표현하려고 호흡을 조절한게 '진부'하다니...》라는 식으로 곡해하고, 《'호흡'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는 식으로 거두절미식 오독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듭 지적합니다만, 제 글에 그 무슨 수준 높은 통찰과 인식이 있다는 취지에서 반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남의 글을 비판할 때는, 우선 상대방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독해/파악하는 성실함부터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글이 허접하다고 해서 마구잡이 식으로 왜곡하고 거두절미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호흡하고 뇌과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전그걸 호흡이라고 말해도 별 상관없다고 느꼈지만 님께서 그렇게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면 굳이 우기지는 않겠어요. 제가 보기에 님의 글에서 산드라블록의 숨소리를 가지고 읽어낸 그래비티의 상투성은 과대해석이란 소리입니다. 그래비티에서 숨소리를 보고 그걸 상투적이라 지적하는 것 만큼이나 님의 글에 대한 제 지적도 별로 왜곡은 없습니다. 님의 글은 롱테이크에서 본 숨소리에서 떠오른 걸 쫙 펼쳐놓은 것 뿐이고, 그건 그냥 숨소리에 대한 이야기일뿐입니다.
즉 ItGetsBetter 님이 처음에 내놓은 《어떤 테이크에서 긴박함을 표현하려고 호흡을 조절한게 '진부'하다니...》라는 식의 오독에 기반한 비판과, 《'호흡'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는 식의 최소한의 분석 · 논증도 없는 섣부른 비판은, 상호간 논의/논쟁을 엉뚱한 데로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객관적 입장에서 제3자적 시각으로 지켜보는 다른 독자/논객/관람자/구경꾼들을 심각하게 오도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위와 같이 약간은 더 구체적으로 써주셨다면 불필요한(아니 불필요하지는 않았지요) 논쟁의 낭비는 없었을 것입니다.
즉 ItGetsBetter 님이 위와 같은 “취지”로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신다면, 얼마든지 존중합니다. 또한 저로서는 저런 취지의 비판이라면 그다지 반론을 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거듭 노파심에서 말씀 드리지만, ItGetsBetter 님의 주장이 무시할 만한 것이라서 추가 반론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qualia의 글에 대한 ItGetsBetter 님 식의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일부 받아들일 수도 있는 비판이기 때문입니다.
리뷰 잘봤습니다. 저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군요. 저는 특히 산드라 블록이 천공의 소유즈를 지구로 발사할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거의 20~30초정도로, 산드라블록이 소리를 지르면서 흔들리는 롱테이크말입니다. 산드라블록의 소리라던지, 위아래로 흔들리는 산드라 블록의 몸이라던지, 산드라 블록의 반쯤 정신을 잃은 표정이라던지, 성행위의 절정에 이르는 것을 연상시키게 되더군요. 화면에는 산드라블록의 상반신만 나오고 하반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반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교모하게 가려버림으로써 성적 상상력을 더 발휘하게 좋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왜 굳이 성적인 느낌이 나는 롱테이크를 찍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물론 다른 분들말처럼 다른 의도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팩트는 그 장면이 무의식적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죠.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성행위를 연상하게 된다면, 감동은 배가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의식적으로 성행위를 연상하게 된다면, 글쓴님의 의견처럼 '식상'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 되버리죠.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성행위를 연상시키게 해서 감동을 배가시켜려고 하는구나ㅋㅋ" 실제로 영화관으로 그런 생각이 나버렸으니, 남들은 감동에 차서 아이맥스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혼자 멀뚱멀뚱 해지더군요...
“남들은 감동에 차서 아이맥스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데 저혼자 멀뚱멀뚱 해지더군요...”
제가 느꼈던 느낌과 아주 흡사하네요. Melanchophilia 님 말씀마따나 저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군요. 그래서 더욱 반갑습니다.^^ 위에서 윌마 님의 간접적 비판을 듣고, 이상한 생각만 하는 “pervert”로 오인된 같아 좀 그랬는데요. 아무튼 같은/비슷한 시각을 지닌 분을 만나서 정말 반갑네요.
그런데 Melanchophilia 님, SF 영화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저는 여태까지 본 SF 영화 중에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의 1979년 작품 《Alien》이 가장 흥미진진했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뒤로는 그 어떤 SF 영화도 만족스럽지 못하더군요. 다만 《The Matrix》(The Wachowski Brothers, 1999)가 어느 정도 그에 근접한다고 생각합니다.

Alien (Theatrical release poster by Bill Gold)
Source: Wikipedia

The Matrix (Theatrical release poster)
Source: Wikipedia
답글을 남겨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확인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성적인 담론을 논하기 어려운 듯합니다... 솔직한 감상을 적어주신 qualia님이 용기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특별히 SF장르를 골라보는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편입니다. <에일리언>은 아직 본적이 없고, 다만 <프로메테우스>를 봤습니다. 제가 무서운걸 안좋아해서 왠지 보기 꺼려지더군요ㅎㅎ 그래도 요즘 약간 내성이 생겨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지네요. <메트릭스>는 정말 감명깊게 봤습니다.
제가 봤던 SF중에는 <12 몽키스>랑 <13구역>, <스타워즈>가 좋았습니다. 최근에 봤던 <클라우드 아틀라스>도 좋았구요.
qualia님은 안목이 높으신 듯 한데, 또 권해주시고 싶은 영화가 있으시다면 추천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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