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에겐 소비할 수 있는 구매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듯 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물음처럼 개인의 평가척도는 철저히 자본의 소유력또는 그 소유가능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언제 부턴가 저는 삼성이란 브랜드를 생각할 때 일반의 생각과는 동 떨어지게 반골기질이 발휘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대략 참여정부시절 자본이 정치를 완전히 포섭해 버린 것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모욕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굴욕적인 체험은 김용철변호사의 양심증언에서 드러납니다. 포섭된 정관계는 그렇다치고 분명히 삼성의

전횡을 알고있는 일반대중들의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인간은 전두엽과 같은 상위체계라 불리우는 뇌를 통해 타 동물과 비교우위를 갖고 그들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선 삼성이라는 이미지는 이 숙고체계를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력화시키는듯 보였습니다.


사회적존재로서 개인은 무언가를 소비해야만 생존이 가능합니다.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간단한 매커니즘은

모든 인간이 소비를 멈출때 발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남양유업사태때 자본이 가장두려워한 것은

대리점주들의 파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매, 즉 자본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물론 우유와 같은 소비재는 대체제가 충분하고 비독점화와 정치,언론및 대중포섭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기에 

가능했었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삼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중성을 옅 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광고세례를 받고 세뇌가 된 것인지 아니면 양심이 삼성 앞에만 서면 즉시 작동을 멈추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삼성 제품이나 기타 보험 카드 서비스분야의 질을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피죤이나 남양불매에서 보였던 그 정의로운 대중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그 추악한 살인 범죄기업 앞에서는

파충류의 뇌만이 작동하냐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선택권이 별로 없다고 말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