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씨가 언론학자로서 줄곧 강하게 호남의 지역차별 문제를 거론하면서 호남을 떠나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중하위직(?) 인력들이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경우 암묵적 유대고리를 형성하여 저항하는 풍경을 소재로 글을 몇 편 썼는데 그 글의 내용에는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구행위'에 가깝다고 봐야 할 여지가 충분하니까. 현대 법률 체계에서 금하고 있는 사적 구제와도 어느 정도 맥이 닿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피노키오 님이 줄곧 그려낸 이면의 또다른 풍경들, 부당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인맥을 고리로 하여 동향에 속하는 사람들의 비리를 묵인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 다시 말해 남이 하면 스캔들, 자신이 하면 로맨스 풍으로 흐르는 그 모습들 역시 눈여겨 보아야 한다. 쉽게 말해 무리 지어 생존을 도모하는 동물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는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 귀가 엷어지지 않는 것, 유체를 이용하는 어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존재, 대리전에 뛰어들지 않는 존재로 서는 것이다. 뛰어난 이들이야 이런저런 이론을 전개하지만 내가 보는 세상은 저 봉건과의 싸움이다. 학계, 의료계, 재계 할 것 없이 저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딱히 어느 지역의 문제라고 보기도 힘든 수준. 차라리 개인차로 접근하는 게 낫다 싶기도 하다. 개개인들의 작은 변화와 실천이 모여 조금씩 그러한 문화 자체가 변모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호남의 직장 문화 역시 다른 곳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사회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국가 차원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게 맞겠다 싶지만 그 지원만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문제는 그 지원책들이 낙수효과를 낳는가 하는 점인데 별반 그리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쓰이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효용이 무척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계급 타파가 된다고 여성차별이나 지역차별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달리 말해 그건 어찌 보면 개인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위험한 말일 수도 있다. 개인의 결정이 핵이 되고 계급 타파라는 문화나 사회적 지원책 등등은 보조자 역할.

혹 직장에 다니는 분들이라면 이 쉬운 명제에 자신을 함 대입해보자.

"상사의 지시가 고객에게 해를 끼치는 불법행위일 경우 이를 거부할 경우 자신에게 분명한 명시적/묵시적 불이익이 돌아올 게 자명한데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가?"

내가 세상 살며 접한 사람이래야 얼마나 되겠는가는 저런 사람들 손에 꼽을 것 같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아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무리에서 배척받는 걸 무릅쓰고 저런 태도를 보일 사람은 정말 얼마 없다. 그리고 저항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상사의 위치에 올랐을 때 능히 그러할 수학적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항하지 않는 것, 그것은 자신의 미래다. 걱정들 마시라 곧 그 달콤함에 빠져들고 헤어나기란 난망한 노릇이다.

첨: 아직까지는 자식을 키운다면 그게 말 그대로 양아치류라도 나는 존경한다(존중이 아니다). 깜냥도 되질 않는 것들이 뭐하러 새끼를 까서 그 고생을 하며 허덕이는가 그냥 결혼해서 둘이 편하게 살 다 갈 일이지. 앞으로 세상이 또다른 우생학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개인들의 자유의지로 DNA 전승을 금하는 것. 어떤 집단적 무의식 같은  거. 물론 사희의 강제라면 큰일 날 소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 교류에서 아름다움도 비열함도 추함도 생겨난다. 그때그때 다른 것이다.

아직까지 사람을 거르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는 좀 버티기가 힘들다. 사람을 걸러 사귀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자기 깜냥을 알아야 하는 법인데 내가 좀... ... . 음, 그럼 행복해지는 것이다 클클.

Sympathy, Rarebird



 

Just Don't think of those,out in the cold and dark,
'cause there's not enough love to go 'round.

저 노래 소절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