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저는 제 주변에서 발견되는 문화들이 발생한 유래들을 꽤 흥미진진하게 느끼는 편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제사에 죽고 못사는 문화가 저 멀리 3,000년전 은나라 풍속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같은거요. 보편화된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문화가 유태인들의 안식일에서 유래한다던가, 여성들의 흡연이 금기시되는 문화라던가.
그 중에서도 음식들이 발생한 유래가 특히 더 재밌습니다. 그런 쪽의 지식은 한번 들으면 절대 안까먹는다는... 유명한 설렁탕의 유래라던가, 흔히 보는 순대가 부산의 당면공장에서 일하던 어떤 함경도 피난민의 아이디어였다든가, 마포 최대포집 주인장이 개발했다는 돼지갈비의 유래라던가, 비빔밥의 동학혁명 유래설 같은게 그렇구요. 얼마전 TV에서 방영한 일본음식 스시(초밥)의 유래에 대한 다큐프로도 넋을 잃고 봤다는...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엄청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음식이더라구요.
그저께 순대국을 먹는데, 점심시간등에 즐겨먹거나 별미삼아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과거 가난한 빈민들이 값싼 재료를 이용해 만들어먹던 음식들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순대국 감자탕 부대찌개 김치된장찌개 곱창 닭발 족발 칼국수 수제비 보리밥 등등...
곱창이나 족발 닭발 같은건 비싼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등의 대체품이었는데, 이제는 오리지날보다 더 비싸다는게 함정. 주꾸미는 과거 낙지가 비싸던 시절 서민들이 낙지 대신 먹던 값싼 대체품이었는데, 지금은 낙지보다 훨씬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것도 그렇구요. 전어도 정말 값싼 생선이었는데 지금은 고급생선요리축에 듭니다. 그러고보니 서민들의 생선이었던 이면수 고등어 꽁치등은 이제 서민들이 좀처럼 먹기 힘든 놈들이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중국산이나 그렇지 국내산은 뭐 금값이 된지 오래입니다.
혹시 남들은 잘 모르는 재미난 음식의 유래같은거 없으신가요?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
지금 우리가 먹는 음식도 사실 굉장히 변화가 많(았)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지금 우리나라 대표적인 주전부리처럼 알려진 것들이 사실 저 어렸을 때는 없었던 음식인 것으로 압니다.
떡볶이, 통닭 등이 그렇구요
사실 삼겹살도 70년대 후반쯤에 본격화된 것으로 압니다.
물론 고기 자체야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저렇게 불판에 구워서 야채와 함께 쌈싸먹는 방식은 그때 처음 나온 것 아닌가 싶어요
저 어렸을 때 돼지고기를 먹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흔히 보쌈이라고 부르는 수육이거나 김치찌개에 넣는 것이었죠. 고추장 양념을 해서 구워먹는 돼지고기 불고기는 좀 나중에 본격화된 것 같구요
김밥이야 집에서 소풍갈 때나 해주는 음식이었지, 이렇게 흔하게 파는 음식이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새로 등장한 음식이 있는 반면 없어진 음식도 있는 것 같아요.
가령 불고기의 경우 저 어렸을 때는 외국인들이 와서 먹어보고 뿅 간다는 식으로, 우리 음식의 장점을 대표하는 음식이었는데
요즘은 별로 찾는 사람도 없고, 고깃집 메뉴에서도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고기브라더스인가 하는 체인점이 등장했을 때 신기하다는 느낌조차 들더군요.
김치도 사실 많이 변했어요.
물론 제가 전라도 음식을 먹다가 서울 와서 식생활 패턴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암튼 꽤 바뀐 것 같아요.
전라도에서는 깍두기도 매우 얇게 썰어서 거기에 굴을 넣어서 시원하게 만든 게 있었는데, 그 음식 못 먹어본지가...ㅎㅎㅎㅎ
또 잊혀지지 않는 김치가 열무김치입니다. 요즘은 총각김치도 많고 열무김치도 있는데... 모두 굉장히 올망졸망한 크기에요.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해주었던 열무김치는 요즘 무에 달린 무청만한 크기였습니다. 그만한 크기의 열무줄기로 김치를 담그면 열무 뿌리보다 그게 더 메인이었거든요.
제가 입이 좀 짧아서 원래 밥을 많이 못 먹었는데,
어느날 여름 무렵인가 집에서 그 김치로만 밥을 먹는데
찬물에 밥을 말아서 세번인가 먹었어요.
하필이면 그때 누님 친구가 오셔서 저 밥 먹는 걸 보시고
"야 정말 잘 먹는다"
이러시는데 왜 그리 창피한지... 더 먹고 싶은데 더 먹지를 못하겠더라구요 ㅎㅎㅎㅎ
그때 맘껏 먹지 못한 게 왜 몇십년 지난 지금까지도 이리도 아쉬운지... 정말 이해가 어렵긴 합니다만 사실입니다.
겨울이면 밤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밤밥'이라는 걸 먹었어요. 말 그대로 밤에 먹는 밥인데요,
지금 생각하면 좀 엽기적인 모습인데, 누군가 자다가 일어나서 야 우리 밤밥 먹자... 이러면 다른 식구들까지 깨워서 함께 밥을 먹는 겁니다. 이 밤밥의 요체는 다른 반찬 하나도 없이 말 그대로 밥하고 김장김치로만 먹는 겁니다.
당시에는 보온밥통 그런 것 상상도 못하던 무렵이니 그냥 저녁 때 먹고남은 식은밥이죠. 거기에 김장독에서 꺼내온 포기김치 죽죽 찢어서 먹는 겁니다. 혀에 매운 기운이 얼얼하게 남아서 찬물로 헹구고도 입김 식식 불어대면서 열기를 식히죠. 그러면서 다시 잠이 드는 겁니다.
저 밤밥을 꼭 잠자다 깨어서 먹은 것만은 아닐 테고 아마 잠들기 전에 먹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제 기억에는 그냥 자다가 깨어서 먹었던 것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김치를 담그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요즘은 모든 김치를 고춧가루로 담는 것 같던데, 저 어렸을 때는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고춧가루는 김장할 때처럼 대규모로 담글 때나 사용했던 것 같아요. 그럼 무엇으로 김치를 담그느냐?
태양초를 물에 불리고 거기에 생강이나 마늘 등 양념을 섞어서 학독(아시려나? 돌 절구통이라고 해야 하려나요)에 넣고 역시 반질반질한 돌로 열라 갈아대는 겁니다. 그러면 말린 고추와 양념이 섞여서 마치 죽처럼 됩니다. 그걸로 김치를 담그는 거에요. 그런 김치와 고춧가루로 담근 김치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는 없습니다만... 암튼 그 김치가 훨씬 맛있었다는 기억이..
그리고 당시에는 요즘처럼 배추를 미리 썰어서 담그는 그런 방식 없었습니다. 무조건 포기김치였죠. 겉저리라면 모를까 배추를 미리 썰어서 담그는 경우는 못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역시 먹다 남은 찬밥을 가져다가 다들 김치 찢어서 입맛 다시며 먹던 기억.^^
아, 이러다 병나겠습니다. 잊고 있었던 옛날 음식의 추억이 사무치게 저를 흔듭니다.
집마당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4월쯤 감꽃이 피고 한두달 지나면 어린아이 주먹 반만한 땡감이 맺히죠. 마당에 떨어져도 그건 떫어서 못 먹습니다. 하지만 그 땡감도 주워다가 작은 항아리에 물과 함께 넣어둡니다. 그 항아리를 양지바른 곳에 며칠 두면 떫은 맛이 물로 빠져나가고 남은 땡감은 먹을 만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그것도 가끔씩 먹었습니다. 맛은 별로였습니다만.
김장 담글 때 배추뿌리도 따로 보관해두었다가 겨울밤에 입이 심심하면 칼로 껍질 싹싹 갉아내고 먹곤 했는데... 이 음식 역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일식집에서 쓰끼다시처럼 나오는 걸 보고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하지만 그 맵고 달콤하던 맛은 별로 없더군요.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비슷하니 더 감질만 나더라는 ㅎㅎㅎ
전어 얘기를 해주셨는데, 제가 전경으로 해안초소에 근무할 때 보니 근처 마을사람들이 전어를 거름으로 쓰더군요. 그분들이 하시는 얘기만 들었습니다만. 가을 전어야 제삿상에도 올리고 그랬지만 가시가 많고 뻗세서 평소에는 거의 먹지 않고, 잡히면 논밭에 거름으로 주는 생선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가물치 회를 드셔보셨나요? 군대에서 여름에 근처 농사 지원나갔는데 논물을 퍼내다가 가물치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물치는 산모에게 약으로나 주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걸로 회를 쳐 주더군요. 야, 정말 맛있더군요. 알고보니 가물치 회는 기생충이 위험하다고 해서 두번 다시 먹지는 않았습니다만, 맛 자체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굶주린 군발이 입에야 뭔들 맛이 없었겠습니까만 ㅎㅎㅎ
생각해보면 더 많을 텐데,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이러다 근처 음식점 찾아들어가 점심이랍시고 먹으면 너무나 쓸쓸할 것 같네요. 그냥 그렇다구요 ㅎㅎㅎ
물에 불린 땡감은 저랑 똑같군요^^ 저는 꽤 맛나게 먹었던 듯.
냇가에서 멱감다가 배고프면 메뚜기나 개구리잡아서 뒷다리 구워먹던 기억이 문득 나네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열살 미만의 사내 아이들은 여름 내내 홀딱 벗고 돌아다녔습니다. 그야말로 팬티도 안걸치고 검정고무신 하나로 버텼던^^ 여자아이들은 그래도 팬티는 걸쳤던 것 같은데;; 그냥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거죠.
이 이야기를 딸래미한테 해줫더니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안믿더라구요.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마을을 나서면 논으로 된 들판이 있고 들판을 건너면 뚝방과 냇가가 있었죠. 거기가 놀이터였고 하루 죙일 거기서 놀았는데 굳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던거죠. TV도 없고 뭣도 없고 그 흔한 구슬치기 딱지치기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다만 학교에 갈 때는 입었습니다. 그때는 그런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당연한거 였는데^^
초등학교 고학년 때 서울로 이사왔는데, 운동화는 그 때 첨 신어봤습니다. 아이들이 유리구슬로 이상한 놀이를 하고 그래서 신기해했었다는....
말씀하시니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겨울에도 아그들이 그냥 내복 하나만 입고 돌아댕기고 그랬죠.
그런데 그 내복 모양이, 사타구니 부분만 푹 파여있는 형태였다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산된 제품이었죠. 생각해보면 상당히 기능적인 제품인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내복이 싹 사라졌더군요.
모르기는 해도 1~2세기 전만 해도 동아시아권 나라의 서민들 대부분은 옷 한벌 지어입는 게 아마 요즘 자동차 한 대 뽑는 정도의,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대사였을지도 모릅니다. <도쿠가와이에야스>를 보면 어떤 영주가 자신이 아는 농부의 딸을 언급하면서 "걔도 이제 열 다섯 살이 됐으니 옷을 한 벌 지어줘야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사실 당시의 생산력 수준을 생각해보면 옷 한 벌 지어입는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특별한 귀족이나 부자의 자제가 아닌 이상 평번한 서민들의 자녀들은 성인식이나 혼인식을 치를 때까지 그냥 거적대기 비슷한 것만 걸치고 생활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대부분이 (심지어 전통음식이라는 것들도) 사실은 정말 길어봤자 2-300년이요, 보통은 100년 이내, 대부분은 5-60년이나 되었을까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술도 마찬가지 아닐까라는.... 혹시 한 2-30년쯤 지나면 폭탄주가 한국의 전통주로 둔갑해서 (예를 들면 불판에 구워먹는 숯불갈비처럼)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명목하에 뉴욕타임즈 같은 곳에 소개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먹음직스러운 숯불위에 갈비들이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고 테이블 한켠에는 소맥잔이 보이는 화보를 곁들여서 말이지요. 크~
덧: 전에 오랫만에 (아니지 다시 생각해보면 그저 몇년만이었는데) 한국갔더니 다들 갑자기 소맥만 먹는게 유행(일상?)이라 격세지감을 느끼던 기억이 나네요.
미투라 고라님 학독이 아니라 확독으로 아는데요
피노키오님은 완전 깡촌이었나봐여
구슬치기를 서울에 와서야 알았다는것을 보니까? ㅎㅎㅎㅎ
저는 수제비와 콩칼국수등이 생각나네요
특히 콩칼국수는 콩을 갈아서 끓이고 거기에 칼국수 면을 넣어서 만드는데 참 맛있고 특히 자다가 깨어서 장독대위에 올려놓은 식은 죽을 먹으면 쫄깃하면서 너무 맛있었다는
팥 칼국수 역시 너무 맛있어서 지금도 가끔 사먹습니다
네이버에 찾아봤더니 학독 확독 두 개가 다 나오고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치는 않은데...
학독의 원래 형태는 확독인데, 지금도 방언 형태에 남아있다는 글이 있네요...
어느 게 맞는지는 단언을 못하겠습니다.
http://www.nownforever.co.kr/xe/index.php?document_srl=22469&mid=gul_hangul3&page=11
미투라고라 님, 학독과 확독 그리고 확돌까지 세 개 모두 사투리로 쓰이고 있다는군요. 저도 언제 어디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들어본 적은 있는 단어들입니다. (대략) 같은 물건을 뜻하는 돌확이나 호박돌은 이미 알고 있었구요. 확은 중딩인가 고딩 국어책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요. 기억이 정확치 않습니다만. 다음(Daum) 사전에서 관련 정보를 옮겨와 적어놓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절구통이나 돌확은 그것 자체가 민속 문화재이거나 가치 있는 골동품이죠. 시골 고향집에 그런 것들이 있다면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고물장사들이 시골 깊숙이까지 들어가서 옛 생활용품, 농기구, 창틀, 문틀, 대문짝, 다듬잇돌, 놋그릇 등등 골동품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조리 수집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물장사한테 넘기지 말고요, 집안 전통 유물로 잘 보관하거나 민속박물관 같은 데 기증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확
⑴ 방앗공이가 떨어지는 자리에 놓인 절구 모양의 우묵한 돌.
⑵ 절구 아가리로부터 밑바닥까지의 움푹 들어간 구멍.
원어: 방아확
어원: 방핫확 (유해역下:16)
예문: 어머니는 방아확에 곡식을 집어넣고 빻으셨다.
관련 속담: 확 깊은 집에 주둥이 긴 개가 들어온다. (모든 일이 다 조화가 맞는다는 말.)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296421&q=%ED%99%95
확돌
‘돌확’의 방언(경기, 전북, 충남).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296449&q=%ED%99%95%EB%8F%8C
돌확
⑴ 돌로 만든 절구.
할머님은 마당에서 돌확에 쌀을 갈고 계시다.
박 노인은 방앗간 자리에서 예전에 쓰던 돌확을 찾아내 왔다.
⑵ 돌을 다듬어 절구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돌멩이를 넣어 장식으로 정원 따위에 두는 물건.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068280&q=%EB%8F%8C%ED%99%95
돌확 [농기구]
곡식이나 양념을 가는 데 쓰는 연장.
'확독'이라고도 하며 주로 남부지방에서 쓰인다. 모양은 자연석을 우묵하게 파거나 안쪽이 우둘투둘하게 구워내는 2가지 형태가 있다. 손에 잡히는 둥근 돌이나 흙으로 구워낸 것을 사용하여 곡식을 으깬다. 특히 적은 양의 보리를 찧거나 마늘·생강·고추 등을 갈기도 하는데 음식의 제 맛을 잃지 않고 각 가정에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도구였으나 지금은 보기가 힘들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5d1068a&q=돌확
호박돌
직경이 20~30센티미터쯤 되는 둥근 돌, ‘돌확’의 방언.
호박통
‘호박’의 방언, ‘돌확’의 방언.
줌돌
돌확 위에 양념의 재료나 곡식 따위를 올려놓고 으깨는 데 쓰는, 끝이 둥글고 길쭉한 돌.
출처:
다음(Daum) 사전
http://dic.daum.net
저는 처음으로 돈까스를 먹었던 날이 생각나네요.
해운대에 살던 시절, 초등학교 다니던 형이 (아마 무슨 상인가를 받고) 점심으로 어머니랑 양식집에서 돈까스를 먹고 와서 막 자랑질을 하더군요. 당시에는 양식집에서 돈까스랑 햄벅스테이크 파는 일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형이 유치원생이던 저한테 스프와 샐러드, 빵 등등이 나오는 형식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하며 한껏 과장해서 자랑하는데 정말 엄청 먹고싶었죠.
그래서 유치원에서 연극하는 날인가에 부모님이 오시는 걸 노리고 양식 먹으러 가자고 노래를 불러서 마침내 대망의 돈까스를 먹게 됐습니다...ㅎㅎ
그 집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코코풍?의 하얀 조각 의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와 은은한 조명, 클래식 음악 같은 것이 어우러지는 당시 제 눈에는 아주 별세계 같은 집이었죠. 스프도 너무 맛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인가가 나왔던 것 같은데 하여간 너무 맛있고 행복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더군요...ㅎㅎㅎ
지금이야 흔해빠진 돈까스지만, 80년대에는 제법 격식있는 요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그 괴상한 이름이었어요. 돈까스...?
몇 년 뒤에 어머니가 어디에서 읽으셨는지 돈까스는 틀린 말이고, 포크 커틀릿이 맞는 말이라고 하셔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솔직히 어디가서 포크 커틀릿 주세요 하면 이상한 인간 취급이나 받았겠죠...;;;
나중에 대학생때인가 일본식 돈까스를 처음 먹었을때, 그동안 알고 있던 돈까스와 너무 달라서 놀랐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서 돈까스라는 음식이 일본에서 개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일본식 돈까스가 우리나라 돈까스랑 과연 같은 음식인지는 좀 의문이 생기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저런 커틀릿 요리가 구한말 경에 서양에서 직접 들어와 정착되었는데, 나중에 일제 강점기를 맞아 일본식 요리인 돈까스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불리우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야구가 미국선교사에 의해 보급되었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며 많은 용어가 일본식으로 바뀐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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