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는 목적이 뭔가? 기자 생활을 하던 무렵 후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진실을 드러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래서 "왜 진실을 드러내야 하는데? 진실을 드러내서 뭘 할건데?" 이렇게 물어보면 시원한 답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기사를 쓰는 목적을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기사에서 정확한 팩트와 정보, 탄탄한 논리의 구성이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 즉 '진실'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사가 아닌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도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다만 그 변화의 방식과 절차, 깊이, 소요되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문학 및 철학의 걸작들은 몇십, 몇백, 몇천년에... 걸쳐 독자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저자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먼 후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문학 등 위대한 저작들은 발표하는 그 순간부터 작가의 것이 아닌, 이 사회의 것이 된다. 작가는 산고 끝에 작품을 발표하지만 그 작품이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구체적으로 예상할 수 없다. 여인이 자식을 낳으면서 그 자식이 실제로 어떤 운명을 살아갈 것인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기사나 보고서 등 실용문은 필자나 기자가 자신이 쓰는 리포트의 독자가 누구인지, 그 독자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필자가 어떤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해서 어떻게 그 행동을 변화시켜야 할 것인지, 그러한 변화는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서 현실화될 것인지 철저하게 계산한 글이다. 이런 계산이 철저할수록 뛰어난 기사, 훌륭한 보고서가 된다.

기사나 보고서의 효용이 이렇게 명확하기 때문에 실은 기사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일회성이라는 얘기다. 기사나 실용문은 일회성으로서의 효용에 충실해야 한다.

기사를 쓰는 것은 또한 재능이 아닌 기능이다. 기사를 쓸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문장이나 글을 대하는 관념론과 미신이다. 뭔가 필이 꽂혀야 쓸 수 있다는 생각, 일종의영감을 기대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좋은 기사, 훌륭한 리포트, 유용한 실용문을 쓸 수 없다.

기사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다. 작품은 작가 자신도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짧은 단편 하나를 몇십년 동안 묵히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창작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는 창작이 아닌 노동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창작의 결과인 작품이 아니고, 노동의 결과물인 제품이기 때문에 기사는 정해진 프로세스를 따라, 정해진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해, 일정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하지만 최대한 이런 특징에 접근하는 문장 형태가 기사와 리포트라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