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막(?) 나가는 여자의 회고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출도 여러번, 그 뒤로 아실만한 생활...
그 회고에서 아주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어요. 여고때 가출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묻더랍니다.

"집이 싫으냐?"
"네."
"나가라."

그리고 아버지가 문 밖까지 배웅한 뒤 문 닫고 돌아서더랍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그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생활을 시작했죠. 아마 아버지가 그 여자를 쫓아내려고 묻진 않았을 겁니다. 문까지 배웅했을 때도 혼내주려는 생각 뿐이었겠죠. 여자도 그날 집 밖으로 나오면서 자기가 두번 다시 이 곳을 찾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몰랐을 겁니다.

그렇지만, 사소하다면 사소했던 저 대화에서 그 여자의 젊은 날이 결정되었죠.

인생엔 어떤 고비가 있습니다. 그 고비는 때로 사소하거나 너무나 당연해서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의 작은 결정으로 인생의 한 시기가 결정됩니다. 가령, 어릴 적 우연히 본 사진 한장에 감명받아 직업이 결정되는 것. 그 사진이 대통령이면 정치를, 예술가면 예술을, 술꾼이면 알콜 중독...(말이 샌다. 쿨럭)

그러면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정치는 어디서 결정되었을까요? 다 아시겠지만 그건 분당입니다.

분당 이전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등 노무현이 설정했던 과업들의 실행 수단은 여러 옵션이 가능했습니다. 민주당내 영남 민주화 세력의 동참, 혹은 디제이 식의 동진 정책, 당시 우호적인 대중적 분위기에서 정상적인 총선 승리를 통한 정치 개혁 수행 등등.

그래서 전 처음에 노무현이 분당을 주저했다는 주장, 사실에 가까울 거라 봅니다. 그도 보통 사람이 아닌지라 분당이 결코 당 하나 만드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겠죠. 거기에 대통령이란 자리가 주는 중압감이 있으니 흔쾌히 동조할 수 없었을 겁니다. 당장 탄핵이 없었다면 열우당은 결코 과반수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한나라당 5: 열우당 3: 민주당 2 정도의 의석을 얻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겠죠. 그러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게 빤합니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올라탄 권력이란 호랑이는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맹수 주변의 파리떼처럼 온갖 불나방이 몰려들어 시야를 흐리게 만들죠. 우선 분당하면 이득이 될 세력들이 그를 둘러쌉니다. 다 아시겠죠. 호남 지분을 노리는 천신정과 권력의 핵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유시민을 비롯한 친노 그룹이 그들입니다. 목적은 다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지분 확대를 위해 분당의 명분을 만들어냅니다. 천신정은 호남 구태 청산과 지역주의 타파를, 그리고 친노그룹은 정치 개혁을 노무현에게 들이밉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겠죠. 만에 하나 이 분당이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 될 것.

물론 노무현이 그런 사탕발림에 넘어갈 만큼 멍청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죠. 노무현은 디제이와 달리 자신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령 노무현은 재임시절 자신을 싫어한다며 도망치는 임동원을 기어이 붙잡와 핵심으로 발굴했던 디제이와 같은 모습은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죠. 오히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맘에 드는 사람들만을 믿고 의지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한번 틀어지면 다시 회복하지 못했죠.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인보다는 지사에 가까운 타잎입니다. 퇴임 후 자신은 대통령보다 재야 인사 정도 했으면 더 행복했을 것이란 말을 하기도 했죠?

예. 그는 자신의 편이라 그때까지 믿었던 천신정 및 유시민 등이 단합(?)해서 분당을 들이미는 순간 흔들립니다. 그 주장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나마 자신의 세력이 다 떨어질 것이란 불안감까지 안았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알 도리가 없으니 짐작이라 해둡시다.

어쨌든 노무현이 결심하면서 분당은 결정됩니다. 남은 것은 명분 만들기와 시간 뿐이었죠. 명분이야 아시다시피 민주당 당직자들이 알아서 만들어줬습니다. 시간? 그건 아무 것도 아니었죠.

여기까지 우연으로 보이나요? 예. 우연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 우연은 이제 노무현의 운명을 결정해버립니다.

분당을 결심한 순간부터 그에게 선택지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그때 구민주당을 남으로 선언한 처집니다. 그도 정치 1,2년한 신인이 아닌 만큼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후계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정확히 향후 개혁 진영의 주력을 친노 중심으로 재창출하지 않으면 파산할 처지가 된 것입니다. 디제이야 비록 밖에서 굴러왔을지라도 노무현을 민주당 이름으로 후계자로 만들 수 있었지만 노무현에겐 이제 그런 사치는 허용될 수 없죠. All or Nothing!

결국 총선의 안정 의석 확보를 위해 그는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죠. 안그래도 그의 약점을 노리고 있던 민주당으로선 그 무리는 당연히 좋은 공격 소재였죠.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된다는 발언, 그거 선거 중립이니 뭐니를 떠나 정치 도의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많습니다. 당장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디제이가 야당 총재시절에 "꼬마 민주당 찍으면 신한국당 된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는지. 아니 디제이는 그만두고 진보 정당의 대표들조차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는지.

그도 대통령으로서 어울리지 않은 발언이란 정도는 알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로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절박한 처지였던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총선에서 열우당이 만약 5-60석 정도 얻었다면 이후 노무현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사소한 법률 하나 개정이라도 할라치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게 구걸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 개혁이요?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죠.

그렇다면 민주당과의 재합당이요? 이건 그에게 정치적 파산을 의미하는 겁니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난 1년뒤도 못내다본 바보' 선언에 다름 아니죠. 그런 상황에서 레임덕이란 단어조차 호사겠지요. 

그 이후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두 아시니 넘어가죠. 개인적으로, 정말 개인적으로 남상국 사장 사건은 마음이 아픕니다. 남사장에게도 그렇지만 노무현에게도 그렇습니다. 아마 노무현도 당시의 절박한 처지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발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발언은 결국 그의 죽음과도 오버랩되버렸죠. (진짜로 지금 우울해지는군요.)

탄핵으로 말미암아 열우당은 기적적으로 과반수를 이루었죠. 그러면 성공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드러나지만 당시 열우당의 횡재는 비극의 씨앗이었습니다. 횡재해 들어온 국회의원들 다수는 당나라 군대라서 정치적 감각도, 실무 능력도, 정책 생산 능력도, 하다 못해 당운영의 노하우도 없는 인간들 천지였죠. 그렇지만 승리감에 도취한 열우당은 자기 반성 능력조차 망각했습니다. 어쩌면 이 후자야말로 그들이 손에 들었던 축배 속의 치명적인 독약이었겠죠.

여기서 저에게 물으시겠죠? 소수당이 되도 문제고 다수당이 되도 문제라니 그게 논리적이냐고.

예. 무리한 결정이 빚어내는 운명이란게 그런 겁니다. 제가 처음에 썼던 그 여자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그녀가 문 밖으로 나선 순간 그녀가 어디로 걸음을 옮기든 젊은 한 시절의 운명은 결정되버린 겁니다. 그녀가 친구 집으로 가든, 술집을 가든, 어디서 알바를 구했든 그 끝이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그녀가 운명을 바꿀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의 감정을 거스르고 돌아가 집의 문을 두드리는 것 뿐이었죠.  그렇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이제 감정이 아니라 관성 때문에라도 돌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밀리 매니아답게 말해볼까요? 2차 대전에서 독일의 운명은 대소전을 결정하는 순간, 그리고 일본은 진주만을 습격한 순간 결정되버린 겁니다. 지금 돌이켜보세요. 어쩌면 독일은, 그리고 일본은 전쟁 초기에 패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그러면 빨리 한계를 깨닫고 더 유리한 조건에서 강화하거나 항복했겠죠. 운명이란 그런 겁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 초기의 행운이 더 큰 불행을 만들어내는.

그래도 그녀는 자신만 책임진 존재였습니다. 노무현은 자신의 마음만 바꾼다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죠. 더구나 이제 죽으나 사나 같이해야할(혹은 그가 하리라 믿었던) 자신의 세력은, 자신들에게 먹을게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돌아서서 노무현을 물어뜯을 여우와 승냥이들 천지입니다.

한번의 무리는 돌이키지 않는 순간 또다른 무리를 부릅니다. 당나라 부대 열우당의 권력 중심을 잡아야 하는 미션이 그에게 주어졌죠. 이때 유시민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전당대회에서 정동영을 배신자라며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는 독설을 퍼부어 댑니다.

전 정말로 그때 유시민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안그래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열우당을 더 허약하게 만들, 그런 공세를 왜 했느냐고 말입니다. 이건 정동영을 변호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사건 이후로 일시적으로 진공상태였던 열우당내 권력 중심을 둘러싼 권력 투쟁이 그야말로 추하게 진행되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유시민이 진정 노무현을 위한다면, 당내 지분을 갖고 있던 세력들을 콘트롤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어야 합니다. 설령 나중에 그들의 등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노무현의 전위대를 자임하던 그의 독설과 공격으로, 열우당내 제 세력들이 점점 더 노무현과 멀어지는 결과만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피곤하군요. 또 생각나면 3을 쓰겠습니다. 아....마지막으로...초인종 누르는 양반들. 귀찮으니까 꺼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