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에 토마스 쿤(Thomas Kuhn)만큼 큰 영향을 끼친 과학 철학자는 없을 것 같다. 1962년에 초판이 나온 그의 책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는 150만권 정도나 팔렸다고 한다. 또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과학 철학계를 넘어서 온갖 방면에서 쓰이고 있다. 그의 생각은 과학 철학계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지만 온갖 조류의 인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이 쿤이 인식론적 상대론을 주창했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인식론적 상대론에 따르면 어떤 과학 이론 AB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 따질 수 없다. 심지어 과학이 미신보다 인식론적으로 우월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점성술도 상대성 이론도 다 일종의 믿음일 뿐이다. 상대성 이론은 과학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식이고 점성술은 미신이기 때문에 망상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모든 믿음은 평등하다.

 

인식론적 상대론을 받아들이는 인문학자들에게는 쿤이 영웅이자 혁명가였다. 반면 과학적 방법론을 존중하는 과학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에게 쿤은 무지몽매를 부추기는 이단아였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았다.

 

쿤은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에 대해 억울해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인정했듯이 그렇게 해석될 만한 단어와 문장을 많이 썼다. 그리고 쿤이 인식론적 상대론과 관련하여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 글에서 쿤의 글을 일일이 인용하면서 어느 해석이 옳은지 따져볼 생각은 없다. 대신 쿤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을 제시하고 그 함의를 따져볼 것이다.

 

 

 

쿤은 이론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정밀성(정밀한 예측), 내적 일관성(이론 내에 모순이 없는가), 외적 일관성(지배적인 다른 이론들과 충돌하지는 않는가), 일반성(얼마나 많은 것들을 설명하나), 단순성 또는 우아함(누더기 이론은 아닌가) 등이 이론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누가 봐도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런 기준들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1. 각각의 기준에 대해 과학자들마다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단순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자들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

 

2. 여러 기준들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 예컨대, 이론 AB에 비해 더 정밀하게 예측하지만 BA에 비해 더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런 빈 공간을 온갖 “주관적” 기준으로 채운다. 따라서 같은 시대의 합리적인 과학자들이 같은 증거들을 보고도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어떤 과학자는 기존 이론인 A를 더 선호하고 다른 과학자는 새로운 이론인 B를 더 선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때 누가 더 비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 두 가지 해석을 제시해 보겠다.

 

첫째 해석에 따르면 쿤은 인식론적 상대론자다. 이렇게 해석된 쿤을 좋아하는 인문학자가 볼 때 쿤은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미신보다 우월하며, 과학은 계속 진보한다는 과학자들의 믿음에 똥침을 제대로 날린 혁명가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과학 방법론의 애매성 때문에 두 이론 또는 두 패러다임 사이의 결판에는 온갖 주관적, 사회적,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이 “항상” 중요하게 개입된다. 따라서 패배한 이론 또는 패러다임이 객관적으로 볼 때 인식론적으로 열등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단지 여러 요인들에 의해 패배했을 뿐이다. 따라서 패배한 이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과학자를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위의 문단에서 “항상”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해석에 따르면 쿤의 과학 철학은 과학자들의 생각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과학자들의 자부심은 “우리가 쌓은 지식은 미신보다 인식론적으로 우월하며 과학은 계속 진보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데 쿤 역시 이런 믿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가 쿤”이 아니라 “평범한 쿤”이다.

 

이제 누구도 과학 이론을 수학 정리(theorem)처럼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무리 합리적인 과학자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또한 과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휘둘릴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사기를 치기도 한다. 따라서 두 이론 또는 두 패러다임 사이의 결판에 온갖 주관적, 사회적, 심리적,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이 “때로는” 개입된다. 따라서 “때로는” 패배한 이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매달리는 과학자도 아주 합리적일 때가 있다.

 

위의 문단에서는 “항상” 대신 “때로는”이 들어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기준으로 볼 때 이론 AB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가리기가 애매하다. 이럴 때 “주관적” 요인들이 판단에 크게 개입될 수 있다. 이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전문가라면 누가 봐도 뻔하다. 물론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는 없겠지만 온갖 기준들이 한 쪽이 더 낫다는 것을 압도적으로 가리킬 때가 있는 것이다.

 

 

 

쿤은 혁명(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교체되는 것)이 일어나는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뉴턴 역학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 의해 교체되는 사례를 살펴보자. 1919년에 에딩턴(Arthur Eddington)이 일식이 일어날 때에 태양 “주변”의 별들을 관찰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뉴턴 역학을 무너뜨리게 된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이 그 관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갈아탔으며 아인슈타인은 전세계적인 스타 물리학자가 된다.

 

1920년대에 뉴턴 역학에 집착하는 것이 비합리적이었나? 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그 정도는 동의할 수 있다. 에딩턴의 관찰에 미심쩍은 점도 있었다.

 

The early accuracy, however, was poor. The results were argued by some to have been plagued by systematic error and possibly confirmation bias, although modern reanalysis of the dataset suggests that Eddington's analysis was accurate.

http://en.wikipedia.org/wiki/Tests_of_general_relativity

 

또한 당시에는 중간 이론이나 작은 이론을 수정하거나 새로 추가함으로써 뉴턴 역학을 구출하겠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에딩턴의 관찰을 의심하거나 다른 식으로 뉴턴 역학을 구출하려고 했던 물리학자를 두고 비합리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지 100년이나 지난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뉴턴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 중 누가 우월한 이론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상당히 애매하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여전히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이 우월함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압도적이다. 21세기에 “일반 상대성 이론보다 뉴턴 역학이 더 낫다”라고 주장한다면 물리학에 대해 잘 모른다는 핀잔을 받을 만하다.

 

과학 이론에 대한 판단은 한창 두 이론이 경쟁할 때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는 한 쪽이 승리한 지 수백 년이 지나도 끊임없이 판단을 내린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온갖 증거들을 검토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뉴턴의 이론을 대조한다. 그런 대조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거나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대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뉴턴의 이론보다 낫다”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더 부합하는 증거가 나타나더라도 물리학자들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의 이론보다 뉴턴의 이론에 더 부합하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런 증거가 과학자의 실수나 기계의 오작동이라고 보기 힘들어진다면 과학계에 주목을 받을 것이다.

 

 

 

쿤이 좋아하는 플로지스톤(phlogiston, 연소) 이론과 산소 이론의 충돌, 지동설과 천동설의 충돌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도 두 이론 중 어느 쪽이 우월한지에 대해 상당히 애매한가? 아니면 산소 이론과 지동설이 우월함을 보여주는 근거들이 압도적으로 많은가?

 

만약 세월이 한참 흘러서 실증적 증거들이 아주 많이 쌓이고, 이론에 대한 수학적, 개념적, 논리적 분석이 많이 이루어진 후에는 두 이론 중 한 이론이 우월함을 사실상 확신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쿤이 인정한다면 그 순간 그는 “혁명가 쿤”이 아니라 “평범한 쿤”이 된다.

 

만약 쿤이 무덤에서 나와서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뉴턴의 이론 중 누가 옳은지 객관적으로 가릴 수 없다. 지금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집권하는 것은 온갖 “주관적” 요인들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면, “플로지스톤 이론을 주창하는 것이 지금도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고래는 인간보다는 상어에 더 가까운 친척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지금도 합리적이다”라고 주장한다면 “혁명가 쿤”이 아니라 “바보 쿤”으로 불릴 것 같다.

 

 

 

과학 혁명이 일어날 당시에는 애매한 경우도 있다는 쿤의 분석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때로는 애매하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애매하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그리고 많은 과학 철학자들이 거부하는 것은 “항상 상당히 애매하다”는 테제다.

 

수학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지만 한 쪽 이론이 더 낫다는 점을 아주 압도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때가 있다는 점만 받아들인다면 인식론적 상대론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으며 과학의 진보에 대해 의심을 품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바탕 소동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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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