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개천절, 긴 장마와 무더위에 지쳐 기진맥진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릴 요량으로 고창의 선운사까지 당일치기 치고는 꽤 먼 거리의 길을 나섰다. 작년 9월초에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마눌과 선운사를 찾았을 때 막 꽃대를 내밀고 있는 꽃무릇의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 올해는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무릇 군락의 아름다움을 볼 설레임에 지친 몸도 따라 나서 준 것이다.

휴일이라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아침 7시에 출발한 차는 11시 반 경에 선운사에 도착했다. 선운사를 들어서면서 주변의 꽃무릇이 이미 지고 꽃대가 꺾여 있는 것에 한편 실망하면서도 도솔암을 오르는 주변에는 아직 꽃이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런데 선운사 경내를 들어서자 마눌님이 무척 실망하는 눈초리다. 작년에는 선운사는 새벽이 좋다는 생각에 전날 미리 선운사 주변에서 숙박하고 다음날 일찍 선운사와 도솔암을 올랐기 때문에 아침의 고요함과 새벽(아침) 안개가 숙연함을 넘어 말 그대로 도솔천을 거니는 느낌의 평온함을 안겨 주었었다. 거기에다 도솔암을 오르는 주변의 갓 올라오는 꽃무릇은 생명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해 주었고, 먼 발치에서 성질 급하게 꽃까지 피운 꽃무릅 한 송이는 자만이나 교태보다는 의연하고 자신만만해 보여 좋았다. 곳곳에는 꽃대가 땅 속을 막 비집고 올라오는 놈, 꽃잎을 피우기 위해 제법 꽃대를 추켜 올린 놈들이 꽃을 피운 어미 꽃무릇을 따라 종종 걸음치듯 따라 나서는 풍경이 무척 화목해 보이기도 했다. 산야의 듬성듬성 군락을 지어 이런 모습들이 산길을 따라 연출되다 보니 꽃무릇 군락을 찾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도솔암까지 단번에 올랐던 기억이다. 

이런 작년의 기억이 선명한 마눌님은 정오가 다 되어가는 햇볕 쨍쨍한 선운사 경내의 모습이 무척 생경하고 실망스러웠던 모양이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극언(?)까지 하는 것을 보니 오늘의 광경과 느낌이 충격적이었던 같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작년의 감동이 너무 컸던 것이지 선운사는 작년이나 올해나 그냥 그대로였을 뿐이고....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마눌은 그래도 선운사 경내의 불상들을 찾아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얼마의 돈을 불전함에 넣기도 한다. 마눌님이 신실한 불자? 아니다. 불교에 호의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불자도 아니며 평소에 무신론(불교는 신을 믿는 종교는 아니니 이와 관련 없나?)의 소유자다. 그런데 왜 불상에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불전함에 돈까지 넣었냐고? 그건 순전히 고3을 둔 수험생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란 역시 강하고 자식에 대해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것 같다. 나는 함께 경내를 거닐면서 불상과 불전함을 지나쳤지만 합장을 하거나 기도하지 않았다. 알량한 고집인지,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인지, 평소에 믿지 않는 대상에 일시적 기원을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그랬는지, 합장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어색했는지 몰라도 나는 둘째의 대학 합격 기원을 담지 못했다. 그러나 마눌님은, 엄마는 역시 달랐다. 자신의 알량한 지적 허영이나 자존심도 자식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내려놓는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위대하다“ 아니 내 마눌님은 나보다 훨씬 위대하다. 남자들이여! 아빠들이여! 이건 모두 인정하자.


선운사 경내를 나와 본격적으로 도솔암으로 향하는 산길을 올랐다. 혹시나 하면서 주변의 꽃무릇 군락들을 살폈지만 온통 꽃대가 쓰러져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쓰러지고 꺾어진 꽃대 그것만을 보노라면 도솔천이 아니라 이건 마치 아수라장이다. 흐드러지게 핀 장관의 끝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지만 화려하게 불태운 것은 좋으나 그 끝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다.

이승엔 아무 것도 남기지 말고 기억도 되지 말라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내 인생의 끝이 저렇게 되고 싶지 않고 누군가에게, 특히 내 자식들에게 저런 끝의 기억을 주고 싶지는 않다. 너무 호들갑 떠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꽃무릇의 끝의 충격은 아직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

어찌보면 작년의 갓 꽃대들이 올라오던 그 모습이 그것대로 아름답고 황홀했는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화려함을 욕망했던 나 자신(인간)의 탐욕이 스스로 이런 실망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저 꺾어진 꽃무릇의 꽃대는 자연(섭리)를 따라 말없이 사라지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꽃무릇의 잔해가 심난했지만 산길의 나무 그늘이 한 낮의 더위를 피하게 해 주어 그럭저럭 도솔암까지 올라왔다. 역시 도솔암 언덕배기 그늘 밑에도 꽃무릇 꺾어진 꽃대의 무리가 곳곳에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아래 밑둥을 살펴보니 잎이 되려는지 새싹 같은 모양의 뭉치들이 꽃대 아래를 둘러싸고 있다. 이 때서야 꽃무릇이 상사화라 불린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꽃무릇은 상사화와는 다른 것이나 꽃이 피고 진 후에 잎이 나와 꽃과 잎이 서로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상사화라고도 불린다. (원래의 상사화는 꽃과 잎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꽃무릇과 같으나, 잎이 지고 난 뒤에 꽃이 피고 져 꽃무릇과는 반대다. 상사화는 6~7월의 여름 꽃이고 꽃무릇은 9월의 가을 꽃인 것도 다르다)

인간이란 요상하고 변덕이 심한 것인지, 그 밑둥의 잎 새싹을 보고 나니 꺾어진 꽃대가 새삼 달리 보인다. 꽃의 자태를 오래토록 마냥 뽐내기만 했다면 저 잎들은 언제 피어오를 수 있을까? 꽃이 더 자태를 뽐낼려고 버텼거나 잎과의 상봉을 원했다면 꽃무릇의 잎의 싹은 돋아날 수 있었을까? 꽃이 잎을 보지 못함은 잎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꽃무릇의 숙명이지 않을까? 그 숙명이 꽃에 의해 거절 당할 때 그 꽃무릇은 내년을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적당한 때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순리인가 보다.

이런 이야기를 하산길에 마눌님과 나누면서 나도 60 정도까지 일하다가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 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우리 마눌님이 정색을 한다.

“무슨 소리. 70까지 일해야지, 인생 90, 100이라고 하는데 60 이후 뭐 할끼고?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사람이 일 없으면 금방 늙고 우울해진데이. 회사에 오래토록 딱 붙어 있어라.”

누가 70까지 회사에 남겨 두남? 60까지 살아남는 것도 운이 좋아야 하는데.....  남자들이 60까지 하겠다는 것은 밑밥이며 마눌에게 보내는 백신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으로의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예비하라고 미리 흘려놓는 자락이다. 남자들의 불안함의 다른 표현이고.

이 땅의 마눌님들이여! 불쌍한 남편을, 아빠를 굽이 보살피소서!


Tip : 산사를 찾을 때는 시와 때가 중요하다. 특히 時를 잘 택해야 한다. 새벽이나 아침의 안개가 피어오르는 남들이 찾지 않는 때나 석양이 어스름한 고즈넉한 저녁에 산사를 찾아라. 봄, 여름, 가을 낮이라면 햇볕 나는 날보다 비가 살포시 내리는 날이 나을 것 같고, 눈 덮인 산사라면 어느 시간이라도 괜찮을 듯하다. 찾아가는 時에 따라 산사의 풍경과 느낌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