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이해, 과학자가 담당해야 할 소통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옛날 얘기가 떠오른다. 지금 젊은 IT 관계자들은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의구(義矩) 성기수 박사님의 에피소드이다.

성 박사님이 SERI(시스템공학연구소. 삼성경제연구소가 아님^^) 소장으로 계실 때의 일인 것 같은데 분명치는 않다. 1970년대 KIST 시절의 얘기일 수도 있다.

당시 국내에서 은행 전산화로 가장 앞서간다는 A은행의 전산투자 효율에 대해서 진단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국책과제를 많이 수행하던 연구소로서는 상당히 긴장되는 일감이었다. A은행에 자료를 요청했더니 한 트럭분의 서류를 보내왔다. 이것을 살펴보는 것만 해도 몇 달이 걸릴 지경이었다. 성 박사 휘하의 연구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성기수 박사는 지켜보다가 지침을 내렸다.

A은행 지점들을 지역별로 몇 개씩 골라서 대표적인 창구 업무들을 처리해봐라. 그 업무 처리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불편사항은 무엇인지 체크하고 똑같은 업무들을 다른 은행들의 지점에 가서 처리해봐라. 그리고 그 결과치를 각 은행들의 전산투자비용과 대비해서 뽑아봐라. 이것이 각 은행들의 전산투자 ROI이다.

비교적 간단한 이 테스트의 결과물을 들이댔더니 국내에서 가장 앞선 전산 인프라와 인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던 A은행은 아뭇 소리도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 ROI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다지 높지 못했던 것이다.

또 있다. 지금은 이런 식의 기사가 사라졌지만, 과거 D램 기술개발이 국내 산업경제 분야의 중요한 관심사였을 때는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 성공할 때마다 그것을 소개하는 기사에 '신문지 몇 장 분량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용량'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이러한 표현을 처음 적용한 분이 성기수 박사이다.

지금이야 메가, 기가, 테라라는 단위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지만 당시로서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낯선 용어들이었다. 그래서 당시 신문지 지면 한 페이지에 들어가는 평균 글자 수를 기준으로 반도체의 용량을 쉽게 이해시켰던 것이다.

1945년 4월이던가, 미국 뉴욕지방의 작은 신문에 실렸던 기사의 번역 샘플을 본 적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로 점철이 된 기사였다. 알고봤더니 그 기사의 내용은 한 마디로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과학 등 지적 산출물의 뉴프론티어가 확보하는 성과는 항상 대중과의 거리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숙명이다. 그런 거리가 없다면 그 성과 자체는 무의미한 존재일 테니까. 하지만 동시에 과학과 과학자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원래 이 역할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아무리 어려운 기술과 개념이라도 기자는 일반인의 시각과 일반인의 표현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언론이 이 역할을 못하니까 엉뚱하게 과학자에게 불똥이 튄다. 과학자는 연구를 열심히 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그걸 하는 데에도 시간과 역량이 충분치 않다.

탁월한 과학자이면서도 대중을 위한 강연이나 저술로도 유명한 파인만이나 또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대중용 메시지로 만들어낼 수 있었던 성기수 박사처럼 전문분야의 역량과 소통능력을 겸하여 갖춘 분들이 계시면 좋지만, 그런 분들은 사실 예외적인 존재이다. 있으면 좋지만, 그런 분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태도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결국 과학과 대중의 소통은 언론이 담당해야 할 몫이다.

기자들의 역량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제대로 취재와 검증, 자료 검토에 투입할 시간이 부족한 언론사 내부의 시스템 탓이 클 것이다.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는 '대중에게 알려야 할 것'보다는 '대중이 듣고싶어하는 것'에 집중하는 우리나라 언론산업의 구조에 그 책임을 돌려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