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최근 출범한 [지역차별 극복을 위한 시민행동]의 대표로 선임되었습니다. 감당하기 어렵지만 저라도 일단 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아래는 인사말입니다. 자뻑(?) 같은 느낌도 들지만 이 단체의 취지를 조곤조곤 알린다는 취지에서 소개합니다.^^ 


<취임 인사말>


부족한 저에게 지역차별 극복을 위한 시민행동의 초대 대표 자리를 맡겨주셔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시민행동을 준비하면서 여러분을 만나뵈었습니다. 시민행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와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만남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그런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현실이 얼마나 바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이 나라의 지역차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뿌리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의 심각성이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깊은 무력감과 좌절을 안기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나 우리 시민행동이 아직 약하고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인종주의적인 성격의 지역차별과 비하, 모욕 그리고 폭력이 심지어 지식인 사회에서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저명한 지식인들이 그런 인종주의적 언행에 앞장서거나 부추기는 일조차 적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분노하는 개인들은 마땅히 항의할 수단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저런 인종주의적 폭력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맞서 싸우고자 하는 단체나 조직조차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민행동의 출범은 이 문제에 대한 분노와 항의가 파편화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 나라의 공론의 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그래서 작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시민행동이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민의식과 공론의 장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일을 시민행동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시민행동은 또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한계와 취약점을 극복하는 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가고 혁신이 일상화되며 시장의 무한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전근대적인 인종주의적 가치관이 횡행하는 사회나 조직은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전세계에서 소수의 나라들만이 몇 세기에 걸쳐서 간신히 이룩했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거의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뛰어난 성과이자 위업입니다. 하지만 그 성과는 거대한 폭력을 수반한 인종주의적 가치관을 동원했거나 또는 용인하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과거 몇 십년에 걸쳐 두드러진 성과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 방식이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심각한 착각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동력을 상실하고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에도 이러한 인종주의적 가치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리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시민행동의 실천은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시민들이 보다 많은 자유와 참여를 통해 경제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전망과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제가 만난 분들은 저 개인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남들은 이런 활동을 하다가도 그만둘 나이 아니냐?”는 얘기였습니다. 맞습니다. 늘그막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저도 가끔씩 합니다.


젊었을 적에 나름 변혁운동을 꿈꾸었다가 그 가능성을 접으면서 저는 자신에게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운동권 배경을 이용하지 않겠다, 그냥 내 노동으로 벌어먹고 살겠다, 대학 졸업장을 밥벌이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물론 다짐에 미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저 나름으로는 최초의 약속을 크게 배반하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저를 키워준 이 사회, 그리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 진보를 위해 싸웠던 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힘이나마 이러한 실천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저처럼 부족한 자라도 나서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첫 걸음을 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능력을 과신하는 오만은 결코 아닙니다.


많이 부족하고 많이 미약합니다. 조직과 배경, 인지도, 자금, 명분도 그렇지만 그런 한계를 극복해가야 할 지혜와 능력, 의지도 마찬가지로 취약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지켜봐주시고, 지도편달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십시오. 좀더 건강해진 이 나라의 공론과 상식 그리고 시스템이란 결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