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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학계든 일반인들 사이에서든 인종간의 '신체적 운동적'차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지능적'차이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묻어둔다고해서 그 사실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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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의 지능적 차이에 대해서 언급한 학계의 인사들 - 인종차별 발언의 죄목으로 결국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했다
위에 기사를 보면 과학을 오용하는 예로 제임스왓슨과 러시튼 교수를 예로 들었지만 이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잘못된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한 독해력 한다고 자부하는 나도(물론, 가끔 내가 생각해도 오독을 해서 어이없는 헛발질을 하기는 하지만 ^^) 저 문장을 세번째 읽고서야 왜 제임스 박사의 발언이 물의를 빚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저 간단한 문장을 세번이나 읽어야 이해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 역시 당연하게도 '흑인은 백인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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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10년경 구글 검색을 통해 이런 저런 영문 글들을 읽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이 이야기되더군요:
현생인류는 20만년전 남아프리카에서 출현해서 10만년전 일차로 일부가 아프리카를 벗어났으나 이어지지 못했고
8만년전 이차로 일부 (홍해 인근에 모여있던 5,000여명 중 150명 가량) 가 아프리카에서 벗어나 전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북아메리카로의 진출이 가장 늦었는데, 1.2만년 이전에 시작되어 아메리카 대륙 전역으로 급속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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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했어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의 아이큐를 측정해 본 결과와 그 차이가 저렇게까지 심하게 나왔을까... 전 이게 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출신 아이들 중에서도 문자문화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유럽-중동-인도-동아시아 등 유라시아 문명)에 일찌감치 입양되어 거기서 성장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아이큐 측정을 해 본 사례들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그건 또 결과가 어떨지...
2. 인종적으로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동아시아인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아이큐 검사를 하면 이들이 흑인보다 더 낮게 나온다고 하더군요. 동아시아인들의 아이큐 우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까?
3. 개나 고양이 등 가축의 품종은 인간이 체구를 키우기 위해, 싸움을 잘 시키기 위해, 또는 애완용으로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을 만들기 위해 수없는 노력을 거쳐서, 즉 엄청난 진화적 압력을 가해서 만들어낸 겁니다. 그런데 인간의 종족이 그런가요? 기후의 차이 이외에는 모든 인종의 환경이 거의 같다고 봐도 됩니다. 진화적 압력이 전혀 가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슨 근거로 어떤 종족은 지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또 누구는 성격이 난폭해졌다는 겁니까?
4. "인류의 한 집단이 유전자에 의한 영향 때문에 다른 집단에 비해서 아이큐가 낮다는 게 밝혀진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그냥 받아들여야죠. 아직까지 "모든 인종은 아이큐의 차이가 없다는 게 절대진리다. 이에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더라도 나는 믿지 않겠다. 내 말은 절대로 옳으니까..."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어떤 증거도 내놓지 않으면서 "모든 인종의 지능 차이가 있다는 게 절대진리다. 이 말이 너희들 비위에 맞지 않더라도 이걸 믿어야 한다. 진실은 아픔을 동반하는 법이다"라며 핍박당하는 선지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이 봤습니다만... -_-a
하하하/
현재 하하하님께서는 징계 기간중에 계십니다.
http://theacro.com/zbxe/93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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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로기/
제가 무식해서 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특정 집단 안에서 지능의 개인적 편차는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그러한 편차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기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과학적 명제라고 봐요.
가령 이런 경우를 보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황인종과 흑인종, 백인종 사이의 지능지수 차이란 건 결국 평균치의 차이일 겁니다. 황인종>백인종>흑인종 이렇게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가장 지능지수가 뒤떨어지는 흑인종 내에는 지능지수가 매우 높은 사람이 전혀 없을까요? 그럴 리는 없겠죠? 제가 알기로도 탁월한 지적능력과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흑인 학자들이 적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지능지수에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여 저 흑인 학자들이 2세를 많이 낫도록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만) 장기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흑인종 전체의 지능지수 평균이 지금보다 훨씬 올라갈 거라고 당연히 예상할 수 있겠죠?
이렇게 인위적인 조작으로 통제가 가능한 변수라면 그것은 '본원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요?
어떤 생물적 집단 사이에 본원적으로 유전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저런 인위적 조작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어떤 천장이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명제가 성립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지금 흑인들의 지능이 낮은 것은 과거의 어떤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요인에 의해서 우수한 지능을 가진 흑인 조상들의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는 얘기일 테니까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는 정말 이 분야를 잘 몰라서 여쭤보는 겁니다.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적능력은 주로 시장에서의 부가가치 생산능력과 자기 분야에서의 실적등 사후적결과로 측정될겁니다.그런데 어떤 사람의 선천적 아이큐와 사회적능력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큐가 가장 높은 사람들은 검찰청과 법원에 모여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의 사회적능력이 (객관적으로) 타 집단에 비해 그만큼 높을까요? 전혀 아니올시다에 걸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능력을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선천적 요소들은 아이큐 말고도 여러가지가 많을 겁니다. 건강 성격 외모 음성 등등. 그런데 어떤 집단의 건강능력수치가 낮음을 이유로 차별을 염려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거 조사한다는 이야기도 못들었구요. 그런데 왜 하필 아이큐만 떠들어댈까요? 혹시 건강능력수치는 흑인들이 높게 나올거 같아서가 아닐까요?
차별이란 본래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에는 같은 집단내에서도 신분을 근거로 차별했어요. 그게 사라지자 흑인들을 납치해서 차별했구요. 처음에는 피부색이 근거. 그게 지탄을 받으니까 이제 아이큐를 찾아낸거죠. 만약 흑인들의 아이큐가 비슷했다면, 그들은 다른 것을 찾아냈을겁니다. 즉 아이큐가 정말로 낮은 결과가 확실하게 나오면 어떻게하느냐 미리 대비해야 한다라는 걱정은 차별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씀. 호남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게 인간이라는 생물입니다.
만약 아이큐가 비슷하게 나와서 그들이 다른 것을 찾아냈고, 그것이 집중력의 선천적 차이라고 칩시다. 그럼 우리는 또 그걸 걱정하고 대비해야만 할까요? 그것을 계몽을 통해 무력화시켜놓으면, 그때는 또 적당한 다른 것을 찾아내서 들이댈텐데요? 정답은 차별은 그냥 닥치고 싸워야 하는거지 미리 고민하고 대비하고 그러는게 아닌거죠. 차별하고 싶은 놈들은 무슨 수를 쓰던 핑계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들의 의도대로 따라다녀야 하죠?
제 경험으로는 사회적능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격인 것 같습니다. 머리나쁜 사람하고 같이 일할 수는 있어도 머리좋고 성질드러운 놈하고는 같이 일하기 힘듭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의 협력적인 사회적관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라서 그렇죠. 흑인들의 성격이 가장 낙천적이고 쾌활하고 명랑하지 않나요? 자본주의가 가장 좋아할만한 성격인거죠. 그런데 아마도 성격능력수치같은건 절대로 조사를 안할거 같습니다. 그런건 백인들에게 불리한 수치일 거 같거든요.
그리고 사회적능력의 높고 낮음은 이미 그 자체로 사회에서 그만큼의 보상을 받을겁니다. 그런데 왜 그걸 이유로 낮은 사람들을 따로 또 차별하고 높은 사람들을 우대해야하죠?
결국 결론은 이런겁니다.
A : 쟤들은 피부색이 까맣다네?
B : 그래서 뭐 씹탱아. 어쩌라고.
A : 쟤들은 평균 아이큐가 낮다네?
B : 그래서 뭐 씹탱아. 어쩌라고.
이게 정답이라는 말씀.
재미있는 이야기이군요.
인간이 생존하는 모든 지역에서 인텔리젼스라는 종합적 능력의 정도가 낮은 개체도 존재하고 높은 개체도 존재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동아시아 지역에는 평균적으로 높은 지력을 유지하는 개체들이 다수 존재하였다는 것 입니다. 생태적으로 볼때 동아시아에서는 타지역에 비교해서 아이큐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선발압이 작용한 것이고 이에 따라 개체군들이 이동한 것일 겁니다. 이런 것은 해당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적 선발압 (specific selection pressure)이 존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발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도 높은 아이큐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독 아이큐를 높이지 않으면 인간의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이고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에서는 그런 선발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이큐를 높인 선발압은 무엇으로 생각하시나요?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상호의존성, 지적능력이 높을 수록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사회 형성 혹은 사기나 cheating에서 살아남고자 반발 심리등등...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적 능력이 어떤 유전자의 획득이나 탈락에 의해 조절되었다면 아이큐의 양적인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니고 있는 유전자의 유무에 의해 차이가 발생하였다기 보다는 해당 유전자들의 발현의 차이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유전적 연관성을 유전자의 존재 유무로 확인할 것이냐? 아니면 유전자의 발현 조절까지 모두 포함할 것이냐에 따라 유전적 관련성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집단이라고 하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아이큐가 아프리카지역보다 평균적으로 높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중국, 대만, 일본, 북한을 포함하는 한국지역에서 유독 높은 아이큐를 가지지 않으면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 조성되어있었거나 반대로 생존에 유리한 호조건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기 때문에 높은 아이큐가 유지된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생존에 '불리한 조건 혹은 좋은조건'이 무얼까 궁금하여 질문드린 것입니다.
저도 만약에 그것이 QTL이든 단일 유전자이던 아이큐에 영향을 주는 변화를 일으켰다면 그것은 선발압이 발생시킨 결과물일 것 입니다. 특정 선발압의 직접적인 목표를 유전자로 하였는지 아니면 뇌내 단백질 활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였는지는 다른 연구자들이 확인해 주겠지요.
저는 가장 궁금한 것이 슈베르트나 베토벤 쇼팽등 음악가나 다빈치나 피카소같은 천재들이나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후손들이 지금 말씀하시는 유전자대로라면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월등한 유전자로 부모못지 않는 저명한 음악가 과학자 정치가등 대물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거든요
만일 그렇다면 뛰어난 사람들의 후손들이 그 분야를 독점하다시피 할텐데 대부분 후손들은 좀 더 나은재능정도나 여러세대 지나면 그마져도 희미해 지거든요
이걸 어떻게 봐야 합니까?
유전적으로요
유전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제가 살아오면서 관찰하고 경험한 바로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는데 보면 성격이나 두뇌 소질은 물론 걸음걸이나 말하는 태도까지 닮기도 하더군요
모방을 통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개발하며 학습한 모든 것들이 유전자에 기억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 전인 30세전까지 아주 훌륭한 인생을 살아야 좋은 자녀들이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닮지 않고 아버지를 더 많이 닮거든요
만일 유전자가 천년정도 지나야 변하는 것이라면 할아버지의 손자는 할아버지와 붕어빵이고 변수가 적어야 하는데 이게 그렇지 않더군요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천부인권이라든지 만인평등론은 하나의 가정, <소수의 예외적인 경우들은 제외하면, 대체로 인간의 타고난 지적 자질은 대개 엇비슷하며, 왕이니 귀족이니 하는 신분이라는 후천적, 사회적 요인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근대 서구의 로크니 아담스미스, 칸트같은 계몽사상가들이 그리 생각했고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유럽 사상가들이라고 하면 대개 그리 생각했습니다. 데카르트만 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은 <이치에 맞게 사리를 헤아릴 수 있는> 양식(good sense)라고 했죠. 해서 데카르트나 로크같은 사람들은 스콜라주의식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 교육 전통도 배격했습니다. 이미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선천적으로 구비하고 있는데(하나님이 부여했건 뭘 어찌됐건) 뭣하러 귀찮게 번잡하게 격이니 식을 암송해가며 그런 걸 배우냐, 이런 거죠.
그런데 (다 아시다시피) 서구전통에선 근대가 아니라 아예 고대부터 이런 계산능력(이성능력)이야말로 인간이 동물이 아닌, 인간일 수 있는 '본질'로 봤거든요.
고로 이 둘을 결합하면, 그 본질(이성적 능력, 계산능력)에 있어선 인간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개 엇비슷하다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까지 오면 기회의 균등이라든지 법 앞에서의 평등,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철폐 등과 같은 사회-정치적 주장들에 힘이 실리게 되죠.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유독 '지능'에 관심에 많은 거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은 뭐냐면 (위에서 피노님이 댓글에서 말한 것처럼) 인종간 지능차이야 아무려면 어떠냐라는 입장입니다. 그 딴거 별 대수로운게 아니다란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건 제 개인적인 입장이 그렇다고는 말이고요, 실제 인종 간 지능차이가 적잖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 과학적 사실이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파장은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방금 언급한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들이 보통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가끔 과도하게 보이리만치)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게 괜한 게 아닙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이미 깔려있기 때문이에요. 본인들이 이걸 의식하고 있는지는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로 이 문제는 우려할만하며, 미리 대책을 생각해 둬야 한다는 바이올로기님의 말이 전 기우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보편적 인권은 순수한 믿음의 차원에 속한다. 인권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 근거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결심에 의해 정립된 공리다(우리가 인간성에 관한 지식에 근거하여 보편적 인권을 정립하는 순간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에 비해 좀 더 존귀하고 지혜롭다는 불가피한 결론에 직면해야 한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윤리적 책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 슬라보예 지젝, <How To Read 라캉>, (웅진지식하우스, 2007), 180쪽.
황인종은 중국 동남아등이고 백인들은 대다수가 서구나 선진국쪽에 분포되어 있고 흑인들은 사회적 인프라나 현대 교육이나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으니까 이것이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설령 미국 시민권자인 인종들을 대상으로 했어도 실험조건이 그다지 공평하지는 않을듯 합니다
일단 언어부터가 백인들은 먹고 들어가는데요 ㅎㅎㅎ
그리고 차별은 선천적 우열과도 상관없이 있어왔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천민이나 평민중 재주가 있는 사람을 발탁할때 반대하는 신하들의 주장이 선천적으로 지능이 떨어지거나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신분질서에 어긋난다는 취지로 반대한걸로 알고
서구에서도 신분상승이 있고 중국 같은 경우는 아예 노예제도가 없을때가 더 많고 평민과 사대부의 과거나 신분상 차이는 없었습니다
현직 벼슬을 하는 사람이나 고위직을 역임한 집안은 큰소리쳤지만 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이 평등한 사회제도였지요
1
우리가 기왕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안된다는 것에 합의하고 있다면, 인종간이나 성간의 선천적인 능력 차이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즉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성간의 상호태도나 인종간의 상호태도에, 우리가 이미 원칙적으로는 이룬 개선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은 안된다는 합의) 에 더해, 어떤 개선을 추가하나?
2
과학은 사실을 무차별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다.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나 크다.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기왕에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도 끊임없이 재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과학은 정말 알 필요가 있는 것들만을 가능한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서 알아야 한다.
3
정말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 것, 즉 과학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과학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고 인문학적인 실천이다. 과학은 결국 가치자유적 활동이나 가치중립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들이 되기로 합의할 가치가 있는 주관들의 '주관적'활동이다. 과학은 결코 순수하게 객관적이 될 수 없다.
4
성간이나 인종간에 선천적인 능력 차이가 있다해도 그것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잘 알고 있다. 나라는 개인은 내가 속한 성이나 인종의 평균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과 일반인들 다수는 그렇게 합리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더구나 세계 자체도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세계이다.
5
따라서 어느 모로 봐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소위 '방해'까지 받아 가면서 굳이 인종간이나 성간의 능력 차이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겠다고/확인했다고 선언하는 이들, 그리고 (객관적) 사실의 엄정한 확인이라는 과학의 소명을 들이대 자신들의 연구기획이나 연구작업을 정당화하는 이들을 나는 순진하다고, 또는 불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6
흑인들이 [본래] 더 범죄성향이 강하고 더 [선천적] 지능이 낮다는게 사실이 되면, 흑인들에게 범죄의 유혹에 덜 노출되는 생활환경과 더 질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을 좋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하지만 통상적인 역차별이 아닌, 이런식의 '과학적 인종학'에 기반한 역차별을 어떤 흑인이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7
아는게 병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지식은 그 자체로 인종차별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할 때, 그 결심은 지식으로부터도 나오지만 지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믿음과 판타지가 그 지식과 결심 사이를 가로막는 방식으로 매개한다. 아니, 애초 믿음과 판타지가 지식을 가능하게 한다. 순수한 지식욕망이라는 것은, 실증적 과학 그 자체의 가치라는 것은 없다.
8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끝나지 않은 세계에서 인종간이나 성간의 선천적 능력차이에 대한 지식은 그 세계를 더 빨리 끝나게 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 일말의 기여 가능성에 대한 어떤 말들도 헛소리다. 그 지식이나 그 말들은 그 세계가 더 오래가게 하는데 기여할 뿐이거나 최소한 당사자들을 기분 나쁘게 만든다. 물론 인간은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 존재이다. 과학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 필요성 또한 전제하지만 알아야 할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구별하는 것은 과학만의 몫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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