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칸노르님으로부터 촉발되고 흐강님으로부터 더더욱 확장된 '국민성'에 대한 개념 논쟁이 마침내 종착점에 이르렀습니다.
결론적으로 '지역차별'은 허구의 개념이었다는 것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또는 존재하더라도 논리상 의미가 없는 개념을 가지고 호들갑을 떠신 겁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다음의 두가지 사항을 확실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 국민성에 대해  연구는 진행되고 있으나 학문으로 정착되지 아니한 개념이며 영속적이지 아니한 트렌드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2. 차칸노르님 흐강님 길벗님을 제외한 아크로 논자들 다수의 입장은 국민성을 존재하지 아니한 개념으로 보거나 존재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고있다.


위 두가지 주장에 대해 특별히 하자가 없는 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확정적이고 불공평한 판단을 초래할 '차이'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심지어 이 차이는 흐강님이나 길벗님이 주장하는 차이의 개념조차 차별로 보고 비판하는 분도 계십니다. 러셀님이나 디즈님이 대표적인 경우이며 이것이 현재 아크로의 다수의견이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 http://theacro.com/zbxe/free/935981 이 링크에서 논해진 해당 댓글들과 '국민성'이 언급된 다른 분들의 발제글 참고)

여기에서 한가지 첨언.

디즈님의 경우는 '차이'의 존재만으로도 비판대상이었으나(참고 : 디즈님과 차칸노르님의 논쟁 중에서), 러셀님의 경우는 차이의 존재만으로는 비판한 거 같지는 않고 집단간 '차이'가 '우월'이라는 판단을 거쳐 '차별'로 발전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차별을 주장하는 입장에선 디즈님의 주장이 확실하고 러셀님의 경우는 약간의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흐강님은 이런 주장에 대해 차이는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을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고 차칸노르님은 중반 이후 등장하지 않았지만 같은 의견을 내실 것으로 보입니다.

전 당연히 아크로 논자들 다수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논조(위 두가지의 저의 글에서)를 보면 차칸노르님이나 흐강님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반대의 입장이었습니다.
차칸노르님이 처음으로 국민성을 언급하며 주장하신 '국민성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지에 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그 증거는 차칸노르님의 발제글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참고 : http://theacro.com/zbxe/free/934724 본문의 박스 안 참고)

단 제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차칸노르님이 틀렸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지역차별을 주장하려면 차칸노르님의 주장을 포함한 강준만의 주장과 방식이 맞습니다.
차이를 인정해야 차별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가 없는데 웬 차별?
이 개념이 이해가 안되면, 모든 조건이 동등한 쌍둥이 중 형이 동생을 욕한다고 차별이 되는 지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그냥 욕하는 것일 뿐이죠.

그러나 러셀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의 경우는 이보다 좀더 치밀했습니다.
차이만으로 차별이 성립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우열'이란 개념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차이를 우열로 판단하기에 차별이 성립된다고 보는 것이죠.
차이의 존재만으로 차별이 성립된다고 보는 경우보단 발전하였으나, 이 역시 기본적으로 차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차이가 우열을 초래하는 근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이를 우열로 판단하지 않으면 차별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이는 다소 복잡해집니다.
차이와 우열 사이에는 너무나 자의적인 해석이 존재하고 차별을 초래하는 당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난 너보다 성적이 좋아."라고만 말하고 "난 너보다 성적이 좋으므로 내가 우월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너보다 성적이 좋아"라는 차이를 인정하는 그 말속에 이미 우월의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그렇게 말한 자에게 그럼 그 말 속에 우월을 내포하고 있는지 없는 지 따져 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판단에 따르면, 차이에 대하여 우월을 주장해야 차별이 성립된다고 보는 이 주장도 사실은 불공정한 차이의 존재만으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야 제가 지난 날 주장했던 지역차별문제(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bewood&document_srl=892903)에 적극적으로 비판을 해오신 님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때 전 차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말했고 지금과 같은 이런 단순한 국민적 속성을 갖는 차별이 아닌 진짜 심각한 민족적 속성을 갖는 차별에 대해서 언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급했다는 그 자체에 대해 비판을 넘어 심지어 신고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몇몇 유저들께선 이 문제를 가지고 빈정거리고 계시죠. 대단한 논리구조입니다.

다시한번 정리합니다.
차이를 인정하기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한 차별은 없는 것입니다. 
차이는 없는데 차별은 있다는 헛소리는 금물입니다. 이미 위에서 쌍둥이의 예를 들어드렸습니다. 차이가 없는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 그냥 욕질에 불과합니다.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인정할 수 없는 민족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차이가 없으면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강준만은 트렌드에 불과한 국민성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며 이 논리에 의거하여 지역차별의 문제를 이론으로 체계화시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차별을 주장하시려면 차이부터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강준만의 논리를 빌어온 차칸노르님의 주장이 맞고 흐강님의 주장과 길벗님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됩니다.


ps1. 지금까지 제글에 댓글을 남겨주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발 그냥 헛소리 정도로 취급해 조용히 지나가 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혹시 댓글을 남기신다해도 답변 드릴 여유가 거의 없을 듯 하여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ps2.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문맥의 수정이 있었고, 푸른색 부분은 추가한 부분입니다.



ps3. 내용추가 (2013.10.13) :

전문용어 하나 없이 쓴 글조차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아, 본문의 의미를 보다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1. 국민성에 대한 개념을 언급한 분이 있었습니다.
2. 이 개념은 학술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한 개념이라고 반론을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3. 그리고 국민성이란 것 자체가 차별적 개념이라고 반발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4. 국민성의 개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5. 이렇게 하여, 국민성 개념에 대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생깁니다. (편의상 찬성 반대라고 명명하였음)
6. 국민성 반대론자의 입장이 아크로에서 다수의 입장을 가지게 됩니다.
7. 그리고 이때 국민성이란 개념 자체에 대한 논쟁이 다시 점화됩니다.
8. 배가 산으로 갑니다. 이미 이때쯤 처음 문제를 제기한 분은 빠져 나가 버립니다.
9. 이런 모습을 보고, 본 논쟁의 허무함에 대해 지적해드립니다. (참고 : http://theacro.com/zbxe/free/934724)
10. 추가로 국민성 개념을 반대하면서 지역차별론을 주장을 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임을 지적해 드립니다. (참고 : http://theacro.com/zbxe/free/935739)
11. 그런데 아크로는 차이 자체가 차별이라고 보는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과거 저의 글 '지역차별문제'에서 확인)
12. 국민성 개념 자체는 어느정도 이해가 되면서, 이젠 차이와 차별에 대해 논쟁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지역차별 논리에 대한 문제로 연결됩니다. (그럼 욕도 못해? 라는 분도 계시던데... 이런 멍청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13. 차이만으로 차별이라고 보는 입장과 차이에 우월이란 개념을 추가하여 차별이라고 보는 입장이 나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차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크로의 대세였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죠.

이처럼 위 과정에서 논의되어진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해야만 저의 결론을 이해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처음 국민성이란 개념이 제기되었던 상태로 다시 돌아가서 차칸노르님이 강준만의 말을 인용하면서 주장했던 취지를 살펴보면, 바로 그것이 차별을 반대하는 논리를 체계화 시켜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아크로는 국민성을 부정하고 차이만으로 차별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강준만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형국이 된 것입니다.
헷갈리는 자기모순이 벌어진 것이죠. 
그렇다면 제 결론은? 이 대세론이 논리적 모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드린 것입니다. 자존심 문제로 생각진 마시길...

이렇게 까지 초간단 설명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안되면 이젠 머리 탓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에겐 책임이 없어요.^^



 ps4. 아래 차칸노르님과 디즈레일리님의 댓글은 13일 오후부터 추가된 내용이므로 전체 문맥상 혼란이 올 수도 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