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세를 좋아하는구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어떤 것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안전한 입장을 고수하려면 최대한 말을 줄이는게 좋다. 짧으면 짧을수록 문장 성분에서 주어, 목적어, 보어 등을 생략할 수 있고, 나중에 자의적으로 해석할 겨를을 얻게 된다. 그것이 나중에 논란이 일어날 때 편하게 위치를 잡을 수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허장성세를 떨기 위해서는 남에게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속여야 한다. 약해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잡히지 않으면 이야기를 길게 할 일이 없고, 자신의 헐거움을 숨길 수 있다. 뒤집어 까보면 그런 것을 모두 드러내어 글을 써야할 때 공갈빵마냥 텅텅 빈 속을 숨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평생 속을 숨기고 산다면 모를까, 실속 있는 글을 쓰고싶은 욕망이 있다면 고통스러워 버티기 힘들 것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책을 부지런히 읽지도 않는다. 다만, 책을 읽는데 있어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읽고 있으면 재미도 있다. 그런고로 이 글은 책을 읽기 위한 방책이다. 적어도 정기적으로 매 주 토요일마다 그 주 간에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고, 허세병이 도져 도저히 하루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지 못하겠으면 (이 글처럼) 부정기로 언제든 글을 써야겠다. 다만, 이것이 내 피곤이 되고 불안이 되면 관둘 것이다. 어쨌건 아크로에는 글을 열심히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적나라하게 구상의 성장을 써볼 만한 곳이다. 상상의 밑천인 자신이 읽는 책을 까발리는 것은 흡사 급소를 앞으로 내미는 것과 같다. 논제가 최근 읽고 있는 책들로부터 편향될 가능성이 높고, 어떤 책을 읽느냐로 깜냥을 쉽사리 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혼자 읽는 삶은 너무 외롭고 지쳤다. 같이 읽지는 않을지언정 독서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리라 생각한다.


책을 사는 일이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는다. 그렇기에 다 읽는 책이 그렇게 많지도 않다. 두꺼운 책은 대출 기간 1회만에 다 읽기 힘든 일이 다반사이며, 기한에 밀려 반납한 후 다시 빌릴 만큼 입맛이 남는 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는 책 목록을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터이다. 다 읽지 않고 중도에 그만 두는 책이 많을 것이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나열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다 읽을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를 상정하고 그런 것을 정리해보는 일도 경험이라 생각해 시도해본다. 나는 언제나 결과만을 남에게 보이기 좋아했고, 과정은 숨기기 급급했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은 결과물의 질을 높이기보다 과정을 숙련할 것이다. 이도 미숙한 과정이니 뻔뻔스럽게 미숙할 것이다고 타협하며 시작해본다. 안 되면 말고, 가 딱 좋다.


이번에 읽으려고 빌린 책은, <일반통행로/사유이미지>, <조봉암과 진보당>, <지식인의 세기 1>, <한국 주거의 사회사> 이렇게 4권이다. 이걸 다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흥미가 당겨서 빌린 것 뿐이니. <한국 주거의 사회사>는 ~의 미시사>, ~의 공간사>가 후발로 나와  한국 주거 공간 3부작이다. 이는 한국의 부동산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과거 독서의 연장선상에서 빌렸다. 발터 벤야민의 저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지젝의 문구 중 "발터 벤야민이 말한 바와 같이 정치를 문화화하는 것에서 문화를 정치화하는 것으로 그 초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정치가 문화화되는 퇴행적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직접적인 정치적 해결책을 통해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던 기획들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토막으로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맥락은 모르지만 [정치를 문화화]한다는 게 무엇인지 흥미가 쏠렸다. 개인적으로도 정치가 문화화(내 말로는 예능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퇴행적 현상]이라고 통렬하게 지적하는 지젝에게도 관심이 갔지만, 그 이전에 벤야민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조봉암과 진보당>은 아크로에서 하도 사민주의, 사민주의 하길래 그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여 빌려보았다. <지식인의 세기>는 '나는 고발한다'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내가 그에 무지하므로 읽어보면 한 허세 떨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완독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책을 한 번도 안 떠들러본다 한들 토요일 날에는 정기적으로 독서 관련 글을 올려야 될테니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한다.


홀로 하는 독서는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