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생각에 영남인과 호남인 사이에 선천적인 기질 차이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양쪽의 환경이 차이가 나니까, 그것들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들은 있겠죠. 

우선 찾아볼 수 있는 압도적인 환경의 차이라면 자본주의 공업화의 정도가 다를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영남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인간형>에 좀 더 가깝고, 호남은 좀 더 멀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합니다. (물론 한국사회에서 그런 인간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겠죠) 제 추측이 맞다면, 공업화로부터 비켜나있는 농촌지역의 영남인과 호남인은 사투리나 지지정당등을 제외하면 거의 차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되겠죠.
출처(ref.) : 정치/사회 게시판 - 국민성 또는 문화, 호남과 영남 - http://theacro.com/zbxe/free/934459
by 미투라고라


뭐, 내 개인적 상황은 생략하겠다. 관심 있는 분도 없을테니까. <-- 요런 잡소리를 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북대학교 내에 설치되어 있는 '벤처인큐베이터' 안에서 창업한 한 벤처 회사의 개발과제를 수행하면서 겪었던 일이다. 당시, 모든 대학 내에 설립된 벤처육성센터에서는 학생들 취업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학생들을 지원해주는 것처럼 전북대학교에서는 이 벤처인큐베이터 안에서 창업한 회사에 학생들을 지원해주었다.


그 회사에서는 전북대학교 3학년생 3명을 지원해주었고 정식직원으로는 전북대학교 졸업생 두 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아, 전북대학교에 상주하면서 몇 번 웃을 기회가 있었는데 호남사람 전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호남사람들은 조사 '을'과 '를'을 대게 '을'로 쓰는 모양이다. 이런거....


(표준어)주어를   ----> 주어을
(표준어)밥을      ----> 밥을


전북대학교 캠퍼스 여기저기에 각종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는데 드물지 않게 '를'이라는 조사를 써야할 자리에 '을'이 써있었다. 각설하고....


그런데 하루는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학생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다.


"너 취업 어떻게 할건데?"

"글쎄? 괜히 중소기업 연구직으로 가서 고생 새빠지게 하고 어느날 회사가 문닫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대기업 생산직이 낫지 않을까?"


이 학생들의 대화를 아마 DJ나 이명박이 들었다면 좀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왜 학생들이 재수를 해서라도 대기업 가려는지를 모르는 채 '일자리는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간다'라고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 개인적으로는 그 대학생들이 불쌍했다. 꿈을 잃어버린 세대.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젊음이라는 것이 몇 번 엎어지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인생에서는 단 한번만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닌가? 그런데 그런 특권을 누리기도 전에 현실과 타협하는 것부터 배우는 젊음.


그런 생각도 잠깐 정식 직원으로 근무 중인 친구가 이런 소리를 했다.


"생산직은 뭐 아무나 하는 줄 아나?"



그 소리에 내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그럼, 그럼'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은 '뻔돌이들'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생산직은 못한다. 그러다가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생산직은 아무나 못하는데?"


그러자 그 친구가 망설임없이 대답을 해왔다.


"다른 직종은 근무를 안해봐서 모르는데 생산직은 눈치가 빨라야 해요"

"눈치?"


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조직이든 '눈치가 없으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생존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산직에서까지 눈치라........ 무슨 이유인지 궁금해졌고 친구는 이렇게 설명을 했다.


그 친구가 졸업 후에 '운이 좋아(?)' 대기업...아니 한국 유수의 재벌회사인 모모 기업에 생산관리직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당당함과 미래에 대한 포부도 잠시, 그 친구는 장벽에 부딪쳐야 했다. 그 것은 한국 조직 생활에서 필수인 알아서 기어야 한다는 '눈치'.


'눈치'가 없는 이 친구는 동료들이 알아서 길 때 혼자 일어서 있었고 동료들이 일어서 있을 때 혼자 기는 상황에 빈번히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속된 말로 '민폐를 끼치는 주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결국 지잔퇴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눈치라는게 시간에 비례해서 늘어나는건데 왜 좀더 버티지 그랬어?"


내가 질문을 던지자 그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 눈치라는 것이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체득하는 것이라 단기간 내에 눈치있게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굳이 눈치를 봐가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시 전북대학교..... 전주는 40여만명의 시민이 거주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인구규모가 적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어엿한 도시이다.(내 개인적으로는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전주 또는 춘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먹고 사는 문제, 그러니까 일자리 걱정만 없다면...) 


물론, 자영업을 하는 부모, 그 것도 직종이 좋은 자영업이라 어릴 때부터 유복하게 자랐으니 눈치라는 것을 볼 필요가 없었고 내가 살고 싶은 도시 중 하나였던 도시답게 그가 자라온 환경 자체가 '눈치'와는 거리가 먼 환경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호남의 소도시 출신이 영남 중급 규모의 도시의 재벌 회사 생산직에서 '눈치 때문에' 그 좋은 자리를 스스로 그만두다니.


차별이라는 것이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내가 들은 사례는 차별은 아니지만 불이익을 당하는 구조인 것은 사실이고 그 구조는 조직에서 암적 존재와 같은 '알아서 기는 분위기들'이 개인들에게 필요치 않는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이 사례가 피노키오님 주장의 실증적 사례일 것이지만 일반화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노키오님의 주장이 '참'이라면 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자신이 지시를 내리는 위치이건 지시를 지시를 받아 실행하는 위치이건 '명확한 메세지 전달'에 우리는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협화음과 불필요한 낭비 나아가 특정인이 불이익을 받게되는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는 것이고 그런 사회구조는 반드시 개선이 되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