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새 아크로를 뜨겁게 달군 토론을 대충 훑어봤지만 제가 특별히 더할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올만한 얘기는 웬만큼 나온 것 같더군요. 그럼에도 몇 가지 얘기를 덧붙이는 것은 사소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몇 가지 논점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차칸노르님이나 흐르는강물님의 입장에 좀더 동조하는 편입니다. 특별한 논거라기보다 막연하나마 제가 살아온 경험 또는 나름대로 정리해온 인식의 기본틀을 기본으로 하는 생각입니다.

애초에 차칸노르 님이 사용하신 '국민성'이란 개념이 과연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토론이 국민성 개념 자체를 놓고 마치 학문적 개념 범주를 논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은 좀 위험하다고 봅니다. 차칸노르 님이 하고자 했던 논의의 카테고리를 따라가주는 게 건강한 토론을 위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범주란 것은, 단순히 '문화'란 말로는 규정하기 어려운 공동체 집단의 공통된 사고방식, 행동특성, 가치관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 문화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저는 문화보다는 좀더 깊은 차원까지 내려가는, 어떤 집단적 무의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성향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걸 국민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본다는 겁니다. 물론 막연한 개념이긴 합니다만...

문화란 것은 어떤 형태로건, 설혹 그것이 무형문화재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비교적 분명하게,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실체라고 봅니다. 건축이나 미술 등 외에도 문학이랄지 음악 풍습 예술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건축이나 미술, 문학, 예술, 풍습 등을 형성한 어떤 공통적인 무의식이랄까, 정신적/정서적 메카니즘은 그렇게 간단하게 표현해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아는 게 짧아서 적절한 예를 들기가 어렵습니다만, 가령 한일 양국민을 비교하는 표현에 이런 게 있더군요.

'한국 사람이 처음 일본에 가보면 두 나라가 너무나 비슷한 것에 놀란다. 하지만 일본에서 오래 살면 살수록 두 나라가 너무나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

물론 최근의 토론에서도 이런 인상비평식 논거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정밀하게 설계된 조사결과나 연구자료가 아직 충분치 않다면 이런 식의 인상비평이나 견문담도 당분간 1차자료로서 나름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일 양국의 겉으로 매우 비슷하게 보이는 측면이 저로서는 양국의 '문화'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한일 양국이 오래 전부터 다양한 문화적 교류를 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양국의 문화에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은 필연적 귀결일 겁니다.  하지만 그 문화를 구성하는 보다 근원적인 정서적 뿌리나 성향 등으로 파고 들어가면 그렇게 쉽게 양국이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론이 나오기 쉽다는 거죠. 바로 이런 차이를 굳이 표현하자면 '국민성' 또는 그것과 비슷한 개념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댜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한일 두 나라뿐만 아니라 한중일 세 나라로 범위를 확대해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세 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유교문화 등을 주고받는 관계였지만 그 정서적 바탕을 파고들어갈수록 차이점도 무척 많이 발견되는 나라들인 것 같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습니다만, 제가 주장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어떤 현상이 존재한다면 그 현상에 붙이는 이름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객관적인 실체로서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규명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한중일 세 나라에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선 보다 근원적인 기질/성향 등 무의식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고 아직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과학적 개념이 없다면 당분간 '민족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어떤 유전적 우열을 따지는 등 인종적인 시각으로 연결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무엇보다도 인종주의적 우열을 따지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그 허구성이 입증됐다고 알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이 문제와 관련해서 '국민성의 차이를 인정하면 그 연장선에서 영남패권이나 호남차별도 정당화된다'는 논리도 등장하던데, 저는 이런 논리야말로 위험하다고 봅니다.

저런 논리를 그대로 인정하면 '영남이나 호남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에 차별은 안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자, 어떤 얘기가 연상되십니까? 전에 이 게시판에서 당당하게 '호남도 결국 신라 핏줄이니까 제발 좀 살려주세요'라고 주장해야 한다던 어떤 허접쓰레기의 논리로 귀결됩니다. 만일 호남과 영남이 다르면 당연히 호남은 탄압하고 차별해도 된다는 겁니까?

아무리 국민성의 개념을 부인해도 영/호남의 차이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 차이는 몇백 몇천 몇만 가지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당장 사투리가 다르고 풍습도 상당히 다르죠. 정치적 선택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 아크로에서도 '호남 사투리가 문제가 있고 영남의 사투리는 듣기가 좋아서...' 이런 분이 계셨지요? 그 분 발언의 뒷부분에 생략된 표현이 그겁니다. '그래서 호남차별은 좀 불가피한 점이 있어...' 이거죠. 

저런 차이를 근거로 호남을 탄압할 때 어떻게 방어해야 합니까? 저런 차이는 민족성의 차이가 아니니까 탄압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할 겁니까? 애초에 국민성의 개념을 부인하면서 '다르지 않으니까 차별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저 논리는 곧바로 '다르면 차별해도 된다'는 논리의 동전의 양면이니까요. 꼭 국민성의 차이만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다르면 차별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에요. 저기서 주어 즉 무엇이 다르냐... 이것은 그냥 편한대로 만들어 넣으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것은 '다름은 차별과 탄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지 '다르지 않으니까 차별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그리고, 종교의 유무가 내세적인 가치관 및 성향과 연결된다는 논리를 펼치는 분도 계시던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그 주장인즉, 북유럽의 종교적 성향이 약하고 남유럽이 더 강한데 어떻게 해서 북유럽이 내세적이고 남유럽이 더 현세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논리더군요.

종교적 성향과 종교의 유무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이 점을 헷갈리기 때문에 나오는 착각이라고 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종교적 성향(단순히 신자 수가 많다는 점에서) 강하다고 말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이 내세적인 가치관이 강하다고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종교적 선택을 통해서 어떤 가치관을 얻으려고 하는지가 중요하지 단순히 신자로 등록했다고 해서 내세적인 가치관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심한 착각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세에서 잘먹고 잘살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경우가 아마 99%쯤 될 거라고 봅니다. 아마 그 이상이었으면 이상이었지 그 이하는 아닐 겁니다. 그래서 유불선 나아가 기독교도 한국에 들어오면 결국 샤머니즘의 변형에 불과하게 된다고 다들 그러는 것 아닙니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는 영남과 호남의 차이도 굳이 감출 필요 없이 당당하게 거론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내가 보기에는 두 지방이 기질이란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종특'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꼭 억지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얘길 한다고 해서 제가 호남을 미화하기 위해 영남을 헐뜯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저는 영남도 강점과 약점이 있고 호남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다만 양자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어느 분이 '호남이야말로 한국 속의 한국'이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좀 많이 공감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남 등이 호남을 향해서 퍼붓는 비난과 혐오, 비하의 핵심 내용들이 옛날(또는 지금도) 일본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욕하던 내용과 판박이라는 사실만 봐도 이 사실을 실감합니다. 믿을 수 없고, 뒷통수 잘치고,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무례하고 등등...  Honam, the Heart of Korea('s vulgar nature)라고나 할까요? ㅎㅎㅎ

이런 말하면 또 호남근본주의자라는 비판도 나올 것이고 반대로 어떤 분은 또 호남을 비하한다고 흥분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좀더 공개해서 탁 깨놓고 얘기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차칸노르 님의 포스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