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다가 눈에 띄는 주장 중에 한글은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를 웬만큼 배워 본 사람들은 알다시피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당장 영어, 중국어만 배워봐도 한국어에 없는 발음이 있고 그런 발음은 당연히 한글로 표기가 안 됩니다. 그리고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가 어디까지나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지, 이 세상 모든 언어를 다 표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니까요. 즉 한글로 불어나 중국어, 영어의 일부 음운을 표기할 수 없다고 해도 그건 한글의 결점이나 단점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부 한글의 우수성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이처럼 사실과 다른 과대평가로 우리를 민망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진화심리학계에서도 주로 비전문가들의 주장이긴 하지만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진화심리학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거나, 진화심리학으로 환원될 것이라는 주장들이 그렇습니다. 물론 진화심리학계에서의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사회과학 이론의 성립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고 어느 정도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화심리학의 의의를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진화심리학이 새로운 경제 이론 확립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여가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기존의 경제학이 주로 인간의 합리성을 가정했다면 진화심리학은 기존의 가정과 다른 적응된 비합리성이 존재하고 그런 성향이 일정한 경제현상을 유발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이론들이 종래의 거시 경제학 이론 체계를 뒤흔든다거나 하는 정도의 의의를 가진 것은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진화심리학 추종자들 중 상당수는 진화심리학 혹은 진화론으로 인해 경제학 입문서의 내용이나 체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 내지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이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진화심리학 이후에도 거시경제학 내지는 경제학 입문서의 내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화심리학의 영향으로 개발된 이론이라는 것들은 주로 미시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의의에 대한 환상의 또 다른 버젼으로는 다음과 같은 오류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경제현상은 이기심의 결과이고, 이기심은 진화한 본성이니, 결국 진화론을 알아야 사회과학을 이해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좌파들이 추구하는 이타심에 호소하려는 정책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바보 같은 생각들입니다. 우선, 수요 공급의 법칙이 이기적 본성의 결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수요 공급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을 알아야 할 현실적 필요는 전혀 없음도 명백합니다. 실제로 먼저 태어나고 죽은 사람은 아담 스미스이지, 다윈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기적인 이유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은 수요 공급의 법칙의 이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엄밀히 말하자면 단순한 군더더기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우파들에게 실제로 꽤 인기가 있는 오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진화심리학 이전에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인류가 몰랐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정답을 말하기 위해 대단한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미 2천년도 훨씬 전에 일부 철학자들이 언급한 이래로 우리는 인간에게 이기적 본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 왜 그러한 본성을 갖게 되었는지, 즉 어떠한 과정을 통해 그러한 본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관해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러한 진화심리학의 가르침은 우리의 정치철학이나 윤리학 따위에 아무런 실질적인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살인자가 어떠한 진화과정을 거쳐 그러한 살인자의 마음을 갖게 되었든 간에 그러한 사정은 현실에서 살인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결론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살인자의 마음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문제를 처벌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고려했다면, 그 문제에 관한 새로운 이론은 우리의 결론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문제를 애초에 고려한 적이 없고 따라서 그 문제에 관한 진화심리학에서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그것은 우리의 결론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좌파들이 이타심에 호소한다는 주장은 사실 관계에 대한 인식도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좌파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사회나 공동체의 이익이란 사익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사익과 전혀 무관하게 단지 모든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할 것만을 주장하는 세력이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은 일부 우파들 외에는 없을 겁니다. 단적인 예로, 복지정책이 이타심에 호소하는 것입니까? 세금을 많이 내는 부자들의 입장에서는 타인을 위해 많은 세금을 내야하니, 이타심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에게만 그런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사실은 망각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일부 우파들은 이 사실을 철저히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책의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복지정책은 우선 자신들에게이익이 되고 또한 공동체에도 이익이 됩니다. 즉 좌파가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것은 언제나 최소한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좌파가 이타심에만 호소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진화심리학이 설사 일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이기적 본성을 갖는다는 점을 가르쳐 주었다고 해도 그로부터 좌파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 문제는 진화심리학을 떠나서 순수한 논리적 사고력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한글은 참으로 우수한 문자 체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글의 우수성에 감동한 나머지 한글은 이 세상 모든 언어를 다 표기할 수 있다는 식의 오바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진화심리학 역시 뛰어난 과학적 성취입니다. 하지만 오바는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