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라는 단어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의미하거나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재화 교환의 편리한 매개체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고, 상품가치의 척도라는 경제학적인 의미도 있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물신적 숭배대상이라는 의미도 있고, 때로는 교회의 헌금처럼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쉽게 자본이 되어 생산을 조직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하기도 하는 천변만화의 수많은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요.

따라서 모든 단어는 해당 단어가 등장하는 범주와 맥락속에서 실체적인 의미가 도출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이 헌금으로 모인 돈을 '자본'이라는 엉뚱한 의미로 사용하면 어리석은 바보가 되는 것은 그래서이지요. 똑같은 돈이라 할 지라도 의미마저 똑같은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의 말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알려면 사용하는 단어가 해당 범주와 맥락 속의 실체적인 의미와 맞는지 아닌지를 살피면 되는 것도 그래서이지요.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지역을 지칭하는 단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전적인 의미야 당연히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행정단위지역을 지칭하는 단어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정학적인 범주와 맥락 속의 의미일 뿐이고, 정치나 사회 문화같은 범주와 맥락 속에서는 전혀 동떨어지고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 될 겁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담화 속에 등장하는 영남과 호남을 행정학적인 사전적 의미로 사용하면 자칫 어리석은 일이 된다는 것과, 나아가 정치적 실패마저 불러오는 거대한 오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야권이 <호남의 몰표>라는 정치적현상에 대하여, 몰표라는 정치적의미보다 호남이라는 행정적 지역단위에 더 주목하는 엉뚱한 짓을 하다가 거하게 말아먹은 것이 그 비극적이고 생생한 사례가 될 것입니다. 강북과 강남이 표상하는 정치적인 의미를 <빈부격차>가 아니라 단순한 지역구분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우리는 바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범주와 맥락속에서의 경상도와 전라도의 실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경상도와 전라도는 구체적인 지역의 의미보다는, 한국사회의 커다란 정치적 갈등구조를 지역의 이름을 빌려 표현하는 정치노선이나 가치관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독재와 민주주의, 갑과 을, 차별과 평등, 독점과 균형, 탈법과 원칙 등등을 포괄하는 어떤 이념적 상징체라는 것이죠. 경상도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경상도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경상도의 의미는 지역이 아니라 이념이기 때문입니다(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솔직하고 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라도는 지역의 의미로, 경상도는 이념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반칙입니다.

또한 노빠들과 진보돌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인 의미의 <호남 유권자>는 결코 <호남지역 유권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어리석게 대다수 호남 유권자들의 당연한(?) 야권 지지 현상을 <호남지역주의> 라고 매도하지요. 이것은 그들이 범주에 따른 단어의 의미변화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저능아집단이라는 것과, 지역과 이념적 의미를 칼같이 구분하는 보통의 새누리당 지지자들보다도 멍청하다는 반증입니다. 물론 어리석고 멍청하기로는 그런 노빠들과 진보돌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며, 스스로를 <지역주의자> 라고 자학하는 호남출신노빠들이 최강이겠지요.

제가 아크로에 와서 알게된 두 명의 대구분들이 계신데, 몸은 경상도사람일지언정 정치노선과 가치관은 전라도사람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경상도사람일까요 전라도사람일까요? 혹시 여러분은 어디 사람입니까?


(덧) 그 누구보다 경상도스러운 아크로의 어떤 분은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적이 없으니 결코 경상도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하더군요. 어리석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