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쓴 글인데, 잊어먹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한번은 해두고 싶은 얘기라서요...




이미 돌아가신 분을 놓고 이리저리 씹어대는 것, 나도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코 흘러간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결코 대충 덮고 지나갈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를 총결산하는 열쇠를 그의 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서가 조작이라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무시한다. 그런 주장은 유서의 진실성을 가장 먼저 주장한 문재인 등 노무현재단에 가서 펼치는 게 우선일 것이다.


노무현의 유서를 맨처음 읽으면서 가장 먼저 받은 느낌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 느낌의 정체는 곧 밝혀졌다. 그의 유서는 평어체 즉, '하라'는 반말투였던 것이다. 이게 무얼 말하며, 왜 이상한가?


노무현의 유서는 철저하게 자기 가족과 가장 가까운 친지 동료들을 상대로 쓰여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어체로 쓸 수 있었다. 굳이 경어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만일 노무현이 유서의 내용에 조금이라도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발언하는 내용을 넣었다면 결코 평어체를 사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게 뭘 말할까? 노무현은 성장기 이후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대부분 공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인권변호사의 경력도 그렇지만, 그의 인생 후반기 즉 인생의 절정기는 대부분 스타 정치인이자 이 나라의 최고권력자로 살았다. 즉,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서에는 단 한마디도, 말 그대로 단 한마디도 그의 공인으로서의 삶을 떠받쳤던 국민 대중에 대해 남기는 말이 없었다. 오직 가장 가까운 소수의 친인척들에게만 메시지를 남겼다.


이것은 노무현이 그가 정치를 해왔던 근본적인 목표이자 지향점이었던 국민 대중에 대해서 처절한 배신감에 몸무림치면서 삶을 마감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 대중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말도 없었던 것이다. 당신들, 나와 상관없어~! 우리 이제 안면 몰수합시다. 이게 노무현이 유서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음으로서 단적으로 웅변했던 메시지이다.


노무현이 철저하게 실패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도 없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그 발언을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결정적으로 부인했다. 그는 농부로서 자신의 밭을, 정치인으로서 전체 유권자 대중을 탓하면서 삶을 마감했다. 이것은 그의 삶 전체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 입으로 가장 진솔하게 자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대중은 몇십년에 걸친 처절한 정치역정의 마무리(본인 포함해 누구나 생각했던)라고 할 수 있는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그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항상 사용하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서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가 최초로 빠졌다는 사실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그만큼 그가 받은 상처와 충격이 크다는 사실도 눈길을 끌었지만, 동시에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가 국민들과 유권자 대중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와 도리를 잃지 않았다는 점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이 노무현과 김대중의 차이점이다. 김대중은 정치인이었고 자신이 정치를 하는 이유를 잊은 적이 없었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누구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지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서 누구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지를 순식간에 잊었다. 아니 어쩌면 그런 개념조차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결과 당연하게 다가온 실패를 그는 다시 밭의 탓으로, 유권자의 탓으로 돌렸다. 이렇게 완벽하게 실패한 정치인의 다른 사례를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송장에게 발길질하지 말라고 하지만 죽은 노무현의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여전히 노무현의 그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노무현 자신조차 부정했던 노무현식 정치를 답습하는 무리들이 제1야당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새누리당보다 차라리 민주당을 더 혐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을 벗어버리고 친노라는 쓰레기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한 결단코 희망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당 구조는 죽었다 깨어나도 친노 잔당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친노들이 우리나라 야권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이자 볼모 신세가 바로 민주당의 현주소이다.


안철수에게 일말의 기대나마 거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당을 박살내고 야권을 새롭게 개편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미 작년 대선무렵에 나는 안철수에게 경고했다. 어떤 이유로도 문재인과의 후보단일화에 응하지 말라고. 하지만 안철수는 죽을 길을 갔고, 그 결과는 다들 보시는 바와 같다.


민주당은 아마 바뀌지 않을 거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서 스스로 뛰쳐나오기에는 개구리가 너무 멍청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푹 삶아져서 깨끗하게 정리되기를 원한다. 바라는 게 있다면 그 기간이 제발 조금이라도 더 단축됐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