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아는 부산 사람들이 몇 되는데, 그 가운데 두 명은 부모가 모두 호남 출신이다. 또 한 명은 아버지가 대구 사람이고 엄마는 호남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이 호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도 지역 문제에 대해 억울한 기억을 갖고는 있다. 가령 한 친구는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무척 친하게 지내던 이웃 아저씨랑 싸움이 붙었는데, 그 아저씨가 "어디 전라도 놈이 여기 와서..." 이러고 했던 말을 '살 떨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나 정의감 그런 게 아니고 말 그대로 무척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공포였다.

그들의 그런 기억이 지역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호남'으로부터 더 멀어지고 싶어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용하는 점도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부모가 모두 또는 한쪽이 호남이면서도 호남에 대해서는 별로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전라도가 싫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친구도 있었다. 정치적인 성향은 말할 것도 없다. 영남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갖는 정치의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아버지가 영남, 어머니가 호남인 친구는 열렬한 한나라당 지지자였다.

영남이 아닌, 가령 서울이나 경기도 등에도 부모가 호남 출신인 친구들이 있었다. 이들은 호남에 대해 정서적 일체감을 갖는 비율이 높아진다. 적어도 영남 거주자에 비해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이들 가운데도 "호남은 아무래도 그렇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다.

내가 아는 선배의 부인은 제주도 출신이고 선배와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해서 무려 30년 가까이 광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형수는 지금도 가끔 "이렇게 오래 광주에서 살았는데도 호남 사람들의 그 야비한 말투와 무례함이 싫다"고 선배에게 고백한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광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교 때 서울로 올라온 나 역시 TV나 영화 또는 실제 생활에서 듣는 호남 사투리가 그다지 고상하거나 정겹게 들리지 않는다. 상스럽고, 야비하고, 더럽고... 그런 말투 같다.

몇 달 전 순천에 갔다. 생태 수도라나 뭐라나 순천만의 갈대를 보러 간 것이었다. 가보니 웬 경상도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왁자지껄한 그 말투... 난 속으로 씁쓸하게 생각했다. 과연 경상도의 관광지에 가도 이렇게 호남 사투리가 왁자지껄할까? 모르긴 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가기도 힘들겠지만, 돈이 있어서 간다 해도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 전라도 놈이 가서 크게 웃고 떠들 수 있을까?

순천에서 하룻밤 자고 기차 시간 기다리면서 역 근처 커피숍에 들어갔다. 아줌마들 몇이 들어와서 등뒤에서 떠들어댄다. 서울에서도 아줌마들 떠들어대는 소리를 즐거워하지 않는 내가 상스럽고 야비하고 더러운 전라도 아줌씨들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쫌 곤혹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내 일행은 경상도 출신이었다.

그런데 내 등뒤에서 들려오는 전라도 사투리, 순천 말씨가 점점 나를 이상한 심정으로 몰아갔다. 너무 오랜만에, 정말 너무 오랜만에 '진짜'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느낌이었다. 조곤조곤하고, 나즉하고, 정겨웠다. 감겨드는 말씨도 아니었고, 불퉁대는 말씨도 아니었다. 간간이 웃음소리와 함께 섞여 들려오는 그 소리의 울림을 나는 마치 취한 것처럼 들었다. 듣고, 또 듣고, 더 듣고싶었다.

이야기 내용은 별 게 아니었다. 누구를 흉보는 것도 아니었고, 주로 자식들 얘기였고, 오메, 정말 이뻐졌드라야... 그리고 그 아줌마들은 커피숍을 나갔다.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선로에 무슨 이상이 생겨서 기차가 20분인가 늦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옆에 앉아있던, 나이가 6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늙은이가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오셨오?"

"서울에서 왔다가, 서울로 가는 길입니다."

'21세기에 사시는 분들이 19세기에 와서 고생이 많으시오."

참, 나... 전라도 아니랄까봐, 철도 고장을 '지역 차별' 문제로 연결시키는 그 발상이 어쩐지 늙은이답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태도가 그다지 야비하거나 사나워보이지 않는다. 뭔가 '결기'랄까, 그런 게 느껴지는 태도였다.


호남 문제를 생각해보면 솔직한 결론은 '답이 없다'는 것이다. 호남 문제는 무엇보다 선입견의 문제이다. 호남에 대한 혐오감이다. 논리적인 게 아니다. 영남과 조중동, 한나라당은 호남 문제를 온갖 논리로 포장하지만 정작 이들이 제공하려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그 논리로 잘 포장한 호남 혐오감이 이들이 정말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노빠들이나 유시민이나 노무현 등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논리가 바로 '호남 혐오감을 잘 포장한 논리'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 논리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 의해 쓰일 때만 '호남 혐오감'을 내포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논리의 용도는 딱 하나다. 바로 호남 혐오감을 포장하는 데 외에는 별로 쓸 데가 없는 논리라는 얘기이다.

저렇게 완강한 벽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나는 솔직히 말해 답도 없고, 자신도 없다. 싸우고 싶지도 않다.

옛날에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호남 문제 해결은 간단하다. 호남 사람들을 모두 소개(疎開)시켜,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이다. 즉, 호남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자. 그리고 호남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표준말을 가르쳐 아예 호남 사투리를 쓰지 못하게 하자. 그런 다음, 텅 빈 호남 지역에는 짐승들만 키우자. 소나 말, 개나 닭 그런 가축만 키우는 게 아니다. 사슴, 노루, 멧돼지 등 사냥감이 될만한 짐승도 많이 키우자. 그런 다음, 호남 지역을 사냥터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한 입장료를 받고 전국의 모든 호남 혐오론자들에게 이들 짐승을 사냥하도록 허용한다. 그렇게 그 분들이 총이나 창이나 칼이나 그런 것으로 맘껏 호남땅에 사는 그 '호남 것'들을 살륙하면서 호남에 맺혔던 그 원한을 푸시도록 하는 게 어떨까... 이거야말로 호남 문제를 근원에서 해결하는 방식 아니겠는가...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렇게 빈 땅을 관리하는 소수의 관리 인력들이 있을 텐데, 이들이 나중에 '새로운 호남인'이 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근무를 교대해주어야 하며, 이들이 호남 땅을 관리하는 직책에 복무했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야 한다... 뭐 그런 얘기였다.

패권이란 이런 것이다. 호남 부모를 둔 2세들뿐만 아니라 호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까지 내면 깊숙한 곳에서 호남 혐오감을 갖게 만드는 것. 호남 남편을 만나 호남에서 몇십년을 산 아낙네까지도 여전히 호남 사투리가 야비하고 무례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 문제에 답이 없다. 싸울 자신도 없다. 어쩌면 저렇게 호남이 소멸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노빠들은 부인하겠지만 사실 노무현의 호남 문제에 대한 인식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호남이 없어지면 된다는 것이다. 맞다. 사실 호남 사람들이 모두 말투 바꾸고 조용히 살아가면 일일이 찾아서 죽이기야 하겠나? 물론 그 과정에서 견디다견디다 끝내 못 견디고 자살한 고대 정외과 휴학생, 군대 제대하고 집안 도우려 공사장에서 일하다 죽은 청년 같은 사례야 무수히 나오겠지만, 그런 희생이야 불가피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희생 치르고라도 호남이 소멸되면(물리적인 소멸이라기보다 그 정체성의 소멸), 그럼 호남 문제가 비로소 해결되지 않을까? 이 나라가 조용해지지 않을까? 호남 사람들의 실존적인 생존과 이해관계라는 측면에서도 이게 가장 바람직할 수도 있다. 적어도 저 끔찍한 저주와 혐오의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해결책이 합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버릴 수 없는 생각이 있다.

그런 해결책은 합리적일 수 있을지라도,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그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싸울 기력을 잃어가면서도 끝내 말한다.

끝내 승리한 니들은 불의한 자들이라고.

패권은 이런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