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리엔지니어링


백성주    lietz@hanmail.net    010-5557-4671


대입제도 리엔지니어링


1. 기업의 제품개발 경쟁과 대입제도

  1991년 5월이었던 것 같다. 나는 경남 진주에 있는 연암공업전문대 전자과 2학년이었는데, 어느 날 캠퍼스를 거닐면서 기업의 연구개발 경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세탁기를 생산하는 3개의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재 각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A기업의 세탁기는 50%, B기업의 세탁기는 30%, C기업의 세탁기는 20%라고 가정해 보자.


  우선 당장은 A기업의 세탁기가 제일 잘 팔리고 있다. B기업이나 C기업은 새 세탁기 모델을 출시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A기업도 방심하지는 않고, 새 세탁기 모델을 연구한다. 결국 A, B, C 세 기업은 번갈아 가며 새 세탁기 모델을 출시한다. A, B, C 세 기업은 세탁기 연구개발 경쟁을 끝없이 벌이게 된다. 말 그대로 ‘무한경쟁’이다. 


  세탁기를 만드는 기업도,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도 연구개발 무한경쟁을 하고 있으며, 그 어느 기업도 이 무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기업이 연구개발 경쟁을 안 하면, 나중에 그 기업의 제품은 소비자에게 외면을 당하고,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은 망하지 않으려면 연구개발을 끝없이 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나는 ‘기업의 연구개발 무한경쟁’을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나라 대입제도를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우리나라 대입제도에도‘경쟁’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본고사, 학력고사, 선지원 후시험, 선시험 후지원, 등 모든 대입제도에 경쟁 요소가 들어 있다. 이 경쟁은 곧바로 성적순을 올리기 위한 무한경쟁으로 격화된다. 과외가 성적순을 올리기에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과외를 받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과외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모두가 과외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 놓이므로 결국 과외문제가 발생한다. 대입제도를 바꾸는 교육개혁을 여러 번 했지만, 새 대입제도에도 경쟁 요소가 들어 있었다. 대입제도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하여 과외문제가 계속 일어났다.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늘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대입제도에서 경쟁을 제거하면 과외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경쟁을 제거하지 않으면 과외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2.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제도

  우리나라 대학은 시험을 쳐서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험성적순’으로 선발한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시험성적순에 따라 1점 2점 차이로도 합격 불합격이 달라진다. 이것이 대입제도에 들어 있는 경쟁 요소이다. 


  시험성적순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동되는 것이다. 시험성적순은 다니는 학교, 가르치는 교사, 다니는 학원, 과외선생님, 배우는 교재, 풀어 본 문제의 양, 공부하는 시간의 양, 공부에 집중하는 정도, 지능, 학습방법, 체력, 시험 당일의 컨디션, 배짱, 찍기 운, 공부하는 환경, 필기구, 등에 따라 변동된다.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면 두 가지 무한경쟁이 일어난다. 첫째는 대입원서를 낼 때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둘째는 고등학교에서 성적순을 올리기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대입원서를 낼 때 해마다 눈치작전, 하향 안전지원이 벌어진다. 수능시험 성적이 어떠냐에 따라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지망하는 대학 학과를 바꾼다. 원래 서울대에 지원하려던 사람이 연세대나 고려대로 하향 지원하면, 원래 연세대나 고려대를 지원하려던 사람이 수능시험점수에 밀려서 또 다른 대학으로 하향 지원하게 된다. (그 반대로 상향 지원하는 사람도 있다.) 명문대 비명문대를 가릴 것 없이, 또 수도권 소재 대학 지방대를 가릴 것 없이, 이런 식으로 모든 대학 모든 학과 사이에 하향 지원 연쇄반응이 일어나므로, 애초에 모의고사에서 나타났던 경쟁자 외에 또 다른 잠재적인 경쟁자가 있는 것이다. 잠재적인 경쟁자의 수는 대략적으로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표면적인 입시경쟁률은 대략 1:1 정도이지만, 실제로는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성적순을 올리기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 가지만 분명히 말해 두자. 고등학생들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라든지 그 과목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미친 듯이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합격발표가 날 때까지 성적이 높은 입학지원자도 안심하고 잠잘 수 없다. 


3. 교육개혁은 과외문제 해결에 왜 실패했나?

  36번의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모두 실패했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했으면, 실패의 원인과 실패의 과정이 무엇인지 먼저 규명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부도 교육전문가도 학부모도 그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36번이나 부실시공한 건축업자가 부실시공의 원인을 단 한 번도 분석해 보지 않은 것과 같다. 황당무계한 일이다.


  수십 년 동안 교육개혁을 하면서 우리가 실행해 본 대입시험의 종류는 예비고사,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내신, 논술, 면접, 체력장, 실기시험 등이 있었다. 이 모든 대입제도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니, ‘시험, 경쟁, 선발’ 3요소가 들어 있다. 이 대입제도들은 겉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한 것이다.


  교육개혁을 하면서 시험의 종류를 바꾸는 방법 외에도 과외를 법으로 금지한다든지, 내신성적의 반영비율을 바꾼다든지, 어느 한 과목의 성적에 가중치를 부여한다든지, 경시대회 수상 성적을 반영한다든지, 수능시험의 난이도를 대폭 낮춘다든지, 내신등급제나 수능등급제를 실행한다든지, 내신등급을 절대평가나 상대평가로 산출한다든지, 텔레비전이나 위성으로 방송과외를 하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모두가 시험성적순을 산출하는 방법이고, 경쟁 요소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 대학은 시험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 시험성적순을 높이기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과외가 시험성적순을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누군가가 과외를 받고, 경쟁자인 다른 학생들도 과외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교육개혁을 할 때마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었으니 과외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다. 


  가장 극적인 예는 전두환정부에서 실행한 ‘과외금지 정책’이다. 과외를 법으로 금지하는 정책마저도 과외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돈 많은 학부모는 입주 가정교사를 두어 남 몰래 과외를 했고, 돈 없는 학부모는 과외를 못 시켜서 매우 억울해 했다. 그래서 결국 노태우정부는 과외금지 정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개혁이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실패한 원인은 대입제도에 들어 있는 ‘경쟁’ 요소를 제거하지 않은 탓이다. 껍데기만 바꾸고 본질을 그대로 놔두어서는 과외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심지어는 법으로 과외를 금지하는 정책도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 


4. 다른 나라에는 왜 과외문제가 일어나지 않는가?


  다른 나라의 대입제도에도 경쟁요소가 그대로 들어 있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에는 과외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 


  이 질문에 나는 앞서 제시한 논리로는 대답할 수가 없다. 다른 나라의 대입제도에도 경쟁요소가 있으니, 과외문제가 일어나야 당연할 것 같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과외문제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무언가 또 다른 원인이 있어서, 그것이 과외를 억제하는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5. 무시험 대입제도


  대입제도에 있는 경쟁 요소를 그대로 놔두면, 경쟁은 즉각 무한경쟁으로 격화되어 과외문제가 일어난다. 과외문제를 없애고자 한다면 우리는 대입제도에서 경쟁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대학입학전형에서 시험성적순으로 경쟁하므로, 시험을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나는 이것을 ‘무시험 대입제도’라고 부른다.  


6. 선발은 불가피해도, 시험과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대학마다 입학정원이 정해져 있다. 그러니 입학정원에 맞추어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열린대학이라고 해서 입학정원이 가변적인 대학도 더러 있기는 하다.) 

  입학생을 선발할 때 시험을 쳐야만 하는 필요성은 본래 없다. 또 시험성적순으로 경쟁시켜서 선발해야만 하는 필요성은 더더욱 없다. 


  대입제도에서 경쟁시험을 실행하는 것은 모두에게 선발될 기회를 평등하게 주고, 학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성적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경쟁시험이 반드시 실행되어야 하는 필요성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쌀밥을 주식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필요성은 없듯이 말이다.


  대입제도에 시험이 꼭 있어야 된다는 고정관념과 시험성적순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조차도 학원에 들어가는 데에는 시험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저 돈만 내고 들어가서 배우면 된다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학원에서 강사에게 배우는 것과 대학에서 교수에게 배우는 것이 본질이 같은데, 왜 한 쪽은 시험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쪽은 시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고정관념이 별로 근거가 없음이 드러난다. 


  교수가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이 무엇을 배우는 데에는 본래 시험이 필요 없다. 그냥 가르치고, 그냥 배우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도올 김용옥 선생에게서 논어를 배운 적이 있다. 그 때 시청자들은 대학의 동양철학과에서 가르치는 논어를 아무 입학시험 없이, 아무 경쟁시험 없이 그냥 배웠다. 우리가 논어를 아무 경쟁시험 없이 배울 수 있다면, 다른 과목 역시 아무 입학시험 없이 배워도 괜찮을 것이다. 입학시험에 경쟁까지 덧붙여서 입학생을 선발할 필요도 없다. 등록금만 낼 수 있다면, 대학은 입학지원자 중에서 아무나 무작위로 뽑아 가르쳐도 된다. 


7.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어떤 대학 어떤 학과가 무시험 대입제도를 실행하면, 입학정원보다 입학지원자가 많은 경우가 자주 발생할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합격자를 선발해야 할까? 이런 경우에는 추첨(제비뽑기)으로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면 된다. 추첨이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무시험 대입제도에 추첨을 더해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해야 한다.


  추첨은 운에 따른다. 과외로 성적순을 올리는 것처럼 추첨으로 합격할 확률을 올릴 수는 없다. 복채를 산다든지 기도를 드린다든지 하는 방법으로도 합격할 확률을 올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추첨은 과외문제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8. 자격시험-추첨 대입제도와 AP


  대학이 무시험-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면, 성적이 우수한 입학지원자가 불합격하고, 성적이 아주 낮은 입학지원자가 합격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대단히 불합리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자격시험을 먼저 실행할 수도 있다. 1단계로 자격시험을 실행해서 합격자를 가려내고, 2단계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낸다. 이 자격시험은 커트라인을 정해서 합격과 불합격만 판정할 뿐이므로, 내신등급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것을 ‘자격시험-추첨 대입제도‘라고 부른다.


  자격시험은 한두 과목만 치르는 것이 좋다. 자격시험 대신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미국의 대학들이 실행하고 있는 AP제도이다. AP란 대학에서 수강할 과목 중에서 몇 개를 골라 고등학교에 수업을 개설하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에게만 어떤 학과를 지원할 자격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분적분학을 배운 학생만이 이공계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나는 자격시험이나 AP제도에 대해서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성적이 우수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대학교육을 받는 것이 이익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성적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대입제도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므로, 다수 사람의 견해에 따라 자격시험-추첨을 실행하거나, AP를 실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9. 대입제도 이원화


  무시험-추첨 대입제도가 전면적으로 실행되면, 과외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장점이 있다는 이유로 모든 대학 모든 학과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명문대와 인기학과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할 것이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도 명문대와 인기학과를 선호해서 경쟁시험 대입제도를 감수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입제도는 한 종류만 있어서는 안 된다. 경쟁시험으로 선발하는 대입제도도 있어야 하고, 무시험-추첨으로 선발하는 대입제도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대입제도 이원화’라고 부른다.


  대입제도의 선택은 대학과 학과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 교육부는 단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으로 개입을 그쳐야 한다. 


  경쟁시험은 여러 가지 형태가 가능하다. 따라서 일률적인 수능시험보다는 대학별 학과별 본고사를 치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혹은 편리하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대학이 공동으로 수능시험을 출제하여 대학별 학과별 본고사를 대신하는 것은 가능하다. 교육부는 이 일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미국의 경우, 국토가 넓기 때문에 대학별 본고사는 실행할 수가 없다.)


  예체능계 학과의 경우는 실기시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실기시험만으로 선발하는 것은 경쟁시험 대입제도에 해당한다. 


10. 내신성적 금지와 고교등급제 금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여 대입제도를 이원화하자면, 내신성적제도는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 서너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내신성적제도는 본래 매우 불합리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내신성적을 산출하기 위해서 성적순 올리기 경쟁이 벌어지면, 과외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무시험-추첨 대학에 입학할 학생들은 내신성적을 산출하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고, 굳이 내신성적을 산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넷째는 내신성적의 반영비율을 높이면 내신성적이 합격을 결정하다시피 하게 되고, 내신성적의 반영비율을 낮추면 굳이 내신성적을 산출할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상대평가방식으로 내신성적을 산출하면, 비평준화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과학고, 외국어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불리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고교등급제를 실행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절대평가방식으로 내신성적을 산출하면, ‘내신성적 부풀리기’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미 내신성적 부풀리기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내신성적 부풀리기가 일어나면, 대학은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을 불신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은 내신성적의 반영비율을 실질적으로 낮추거나, 고교등급제를 실행함으로써 내신성적제도를 무력화하게 된다. 고교등급제는 출신 고교별로 내신성적을 보정하는데, 이 때문에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를 적절하게 보완하기가 불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고교등급제가 실행되고 있다. 프랑스식 고교등급제는 이렇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고등학교 출신 입학생의 내신등급이 A였고, 대학에서 받은 성적이 C였다. 대학은 고등학교의 내신과 대학의 성적을 비교해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상관관계에 따라서 그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에 보정 점수를 더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프랑스와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상당히 다르고, 고교 내신과 대학 성적의 상관관계도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 그래서 프랑스식 고교등급제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신성적제도는 본래 불합리한 제도다. 학교별로 학생들의 수준이 다르고 시험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내신등급을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불합리함을 적절하게 보완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금지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다. 여러 가지 논문에 따르면, 내신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학에서 학업성적이 좋을 가능성(연관성)이 가장 높다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내신성적제도를 금지하는 것이 더 좋다. 내신성적제도를 금지하면, 무시험-추첨 대학을 선택할 학생은 공부부담이 없어질 것이고, 경쟁시험 대학을 선택할 학생은 본고사(수능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다.


  미국의 대입전형에서는 내신성적이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왜 그들은 내신성적을 중시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은 학생의 성적을 중시하지만, 미국의 대학은 성적 외에도 특별활동을 중시한다. 대학은 입학지원자가 운동을 했다든지 봉사활동을 했다든지 하는 것을 가치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활동은 내신에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미국은 내신성적을 중요시하고, 한국은 내신성적을 중요시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대학이 대입전형에서 내신성적을 중시하려면, 특별활동 등에 대한 의식이 미국과 같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인재에 대한 의식(성적이 좋은 사람이 더 나은 인재다)이 바뀌지 않고, 그 때문에 명문대학의 인재 독점의식이 바뀌지 않으니, 결국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대입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11.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여러 사람에게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이 없을 것이라고 반론했다. 첫째로, 지금 현재에도 많은 지방대 사립대들은 그냥 원서만 내면 입학할 수 있으니,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둘째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대학은 삼류 대학으로 낙인찍힐 것이므로, 어느 대학도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들의 반론(결론)에도 동의하지 않고, 반대 이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의 대입 상황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고,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에는 10가지 정도의 장점이 있으므로 도입하는 대학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 장점에 대해서는 아래의 12번 글을 읽어 보라. 일단 한두 대학이 도입하면 결국 대부분의 대학이 도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내 예상이 맞을지, 다른 사람들의 예상이 맞을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학생과 대학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누구의 예상이 맞는지에 대해서 좀 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12.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의 10가지 장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가 갖고 있는 장점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정부, 학부모, 학생, 대학, 지방대학, 명문대, 인기학과 등 각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각자에게 서로 다른 장점이 있다.

  첫째로 과외문제가 해결된다. 무시험-추첨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과외공부로 성적순을 올려봤자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하는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는 않는다. 과외문제해결은 서민 학부모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장점일 것이다. (경쟁시험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해당되지 않는 장점이다.)


  둘째로 공부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무시험-추첨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성적순을 올리기 위해서 죽어라 노력할 필요가 없다. 공부에 매달리는 대신에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훈련할 여유가 생긴다. 시간적인 여유, 정신적인 여유, 금전적인 여유가 다 생긴다. (경쟁시험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해당되지 않는 장점이다.)


  셋째로 고등학교 교육을 바꿀 기초가 되어 준다. 입시교육을 없애고, 그 대신에 전인교육, 인성교육, 참교육, 자아실현이 가능한 새 커리큘럼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입시교육에 대해서는 아래의 15번 글에서 따로 자세히 논한다.) 


  넷째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는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다. 기술적인 면에서나 비용적인 면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점은 전혀 없고, 비용도 아주 적게 든다.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하는 시스템과 무작위로 추첨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성인들의 평생교육을 쉽게 지원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성인들이 대학교육을 받으려고 하면, 대학입학을 위해서 성적순을 올리는 재수를 해야 했다. 이 재수 과정이 없어져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줄어든다.


  여섯째로 무시험-추첨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자신의 적성과 관심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학을 선택하거나 학과를 선택할 때 성적순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성적순에 밀려서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입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본 기사에 의하면, 서울대생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54%의 학생이 자신의 적성과 무관한 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과를 바꾸기도 어렵고, 재수를 하기도 어려워서 대부분은 그대로 다니다가 졸업한다고 한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 아래에서는 성적순을 고려해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만 그 대학 그 학과의 경쟁률이 높나 낮나만 고려하면 될 것이다.


  일곱째로 재수하기가 아주 쉽다. 대학을 다니다 보면, 자신의 적성에 안 맞는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한다. 이 대학생은 재수할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재수 과정이 너무 힘들고, 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재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무시험-추첨 대학에 입학할 학생은 시험공부를 다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재수할 수 있다.


  여덟째로 대학입학전형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 무시험-추첨 대학에 지원하는 사람은 인터넷으로 대학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자신의 인적사항만 입력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합격 여부도 그 다음 날이면 바로 알 수 있으므로, 초조해 하며 며칠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원서를 살 필요도 없고, 면접을 보러 갈 필요도 없기 때문에 교통비와 숙박비와 식비 등이 들지 않는다.


  아홉째로 지방대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지금 지방대 중에서 미충원율이 높은 대학은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면, 경쟁시험 대입제도를 채택할 때보다 더 많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로 위에서 말한 여덟 가지 장점이 입학지원의 유인(인센티브)이 되기 때문이고, 둘째로 입학전형시기를 다른 대학보다 앞당길 수 있어서 우선적으로 입학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는 명문대나 수도권 소재 대학과 경쟁하기 어렵고, 사립대는 국립대와 경쟁하기 어렵다. 명성, 평판, 교수진의 수준, 재단의 전입금, 장학금, 등등 모든 면에서 약세다. 지방대와 사립대는 대입제도를 바꿈으로써 다른 모든 면이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유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입학지원자들이 명문대/인기학과-->국립대-->지방대/사립대-->전문대 이런 순서로 지원했다. 하지만 무시험-추첨 대학이 생기면, 3월 2일에도 입학생을 선발할 수 있고, 모집인원에 미달하면 충원될 때까지 1년 내내 계속 추가로 모집할 수 있다. 명문대를 지원하는 사람은 아마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무시험-추첨 대학을 지원하는 사람은 시기적으로 먼저 선발될 것이므로, 나머지 비명문대인 경쟁시험 대학은 가장 나중에 입학생을 선발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명문대인 경쟁시험 대학이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또 지방대 사립대의 경우는 이 현상이 좀 더 민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에도 대학들이 서열이 있기 마련인데, 어느 한 지방대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면, 나머지 지방대들도 무시험-추첨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부가 대학에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않더라도 대입제도 이원화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열째로 기존의 대학서열이 붕괴되고, 새로운 대학서열이 생긴다. 기존의 대학서열은 대체로 입학생들의 성적이 그대로 대학의 서열이 되었다. (대략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수도권 소재 대학-지방 국립대-지방 사립대-전문대 순서다.) 그래서 상위권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입학생들의 성적서열로 이어지는 순환이 일어났다. 명문대와 명문대생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선순환으로 느껴지겠지만, 명문대가 아닌 다른 대학과 대학생들은 이 대학서열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악순환으로 느끼기도 한다. 무시험-추첨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의 경우는 입학생들의 성적을 전혀 추측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험-추첨 대학은 기존의 대학서열에서 떨어져 나온다. 무시험-추첨 대학에만 해당하는 새 대학서열이 생길 것이다. 새 대학서열은 입학생들의 성적서열로 결정되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취업률이나 교육수준 등이 종합되어 결정될 것이다. 무시험-추첨 대학들이 새 대학서열을 놓고 서로 경쟁하게 되며, 새 대학서열은 상당히 가변적일 것이다.  


13. 사교육은 절대악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교육비문제 속에 과외문제가 포함되지만, 과외문제와 사교육비문제는 서로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위의 1번~12번 글은 과외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룬 글이다.)


  공교육은 국가가 학교를 통해서 행하는 교육으로 정의하고, 사교육은 학원 강사선생님과 과외선생님 개인이 행하는 교육으로 정의하자.


  사교육의 종류는 다양하다. 영어 수학 국어 미술 같은 입시용 사교육도 있고, 태권도나 피아노나 미술 같은 사교육도 있고, 선행학습을 위한 사교육도 있고, 내신성적을 위한 사교육도 있고, 공무원시험이나 각종 자격시험을 위한 사교육도 있고, 직업을 위한 기술 사교육도 있고, 취미생활을 위한 사교육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교육비문제 때문에 사교육 자체를 죄악시한다. 그러나 사교육은 절대악이 아니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사교육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 1~2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사교육은 학생 개인에게 충분한 도움이 된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과목은 따로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또 공교육보다 좋은 사교육도 많이 있는데, 예를 들면 원어민 강사에 의한 영어회화교육이 있다. 이런 사교육은 절대악이기는커녕 도리어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받도록 장려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므로 사교육과 사교육비문제를 서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교육은 좋은 것이고, 사교육비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여 대입제도를 이원화하면 과외를 받는 학생이 줄어들고, 선행학습이나 내신성적이나 입시용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줄어들 것이다. 내신성적제도를 엄격히 금지하면,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받는 학생이 줄어든다. 자격시험-추첨 대입제도를 실행한다면, 자격시험의 과목 수나 난이도를 조정함으로써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줄어든다. 그러나 취미생활을 위한 사교육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다. 


14. 공교육 붕괴와 학교의 학원화


  학교를 마치고 나서 고등학생들은 학원이나 독서실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다음 날 학생들은 학교 수업시간에 졸거나 잔다. 교사는 피로에 지친 학생들을 깨워서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학원에서 한 선행학습은 수업의 분위기를 망친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과 하지 않은 학생이 섞여 있으면, 누구를 기준으로 가르쳐야 할지 참 난감해진다. 어떤 학생들은 학원 교사와 학교 교사를 비교하여, 학교 교사를 얕잡아보기도 한다.(나는 학원 강사가 아니라, 학원 교사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사교육이 주가 되고, 공교육이 종이 되기도 한다. 사교육이 주가 되면 공교육은 붕괴된다. 성적을 올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대학입학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교육을 받지 말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공교육의 수준이 낮아서 사교육이 필요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공교육 강화를 통해서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억지로 하려고 들면, 학교가 학원을 본받아서 성적순 올리기 교육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 이것을 ‘학교의 학원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학교의 학원화’가 이루어지면, 학교별로 성적 올리기 교육이 다를 것이므로 특별히 우수한 고등학교가 생기게 된다. 중학생들은 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될 것이다. 이것이 중학생의 과외문제를 새로 일으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학교를 없애고 학원에서 배우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이것을 ‘학원의 학교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고교평준화를 허물어서 고등학교끼리 경쟁하게 만들면 국가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사교육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한다. 자립형 사립학교를 설립하자는 제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를 허물면 중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입시교육을 받게 될 것이므로 사교육비문제가 새로 생길 것이다. 애초에 고교평준화정책이 도입된 이유가 중학교의 입시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


  무시험-추첨 대학에 지원할 학생은 선행학습을 할 필요도 없고, 굳이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무시험-추첨 대입제도의 도입은 공교육 붕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15. 입시교육문제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살펴보면, ‘대학입학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교육’이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입시교육’이라고 부른다. 


  입시교육은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에 따르면 성적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은 좋은 것이고, 성적을 높이지 못하거나 떨어뜨리는 교육은 좋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전인교육, 인성교육, 참교육, 대안교육, 영재교육, 자아실현교육은 학생과 학부모와 학교장과 교사 모두에게 거부당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입시교육이 중학교나 초등학교의 교육에도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다. 부모는 자식이 커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자식이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만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부와 무관하거나 거리가 멀거나 방해가 된다 싶은 것은 금지하게 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심한 공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입시교육은 여러 가지 교육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과외문제와 사교육비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사교육비문제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사교육비문제는 입시교육문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밖에 공부 스트레스, 야간자율학습, 공교육 붕괴, 0교시수업, 등도 입시교육에서 생겨나는 교육문제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시작은 대입제도개혁에서 시작해야 한다. 대입제도를 바꿈으로써 입시교육을 없애면 여러 가지 교육문제도 해결되고 사교육비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수 있다. 


16. 국민들 자신이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해결 방법을 모르고, 결정권이 없고, 일상생활에 바쁘다. 그래서 지난 60여 년 동안 국민들은 사교육비문제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문제해결을 남에게 맡기기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은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60여 년 동안 교육개혁을 36번이나 하고도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라. 대통령이니까, 교육부장관이니까, 무슨 박사이니까, 무슨 교육전문가니까 무슨 능력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들도 아무 것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이솝우화에는 종달새와 새끼들이 이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우화의 교훈은 일은 남에게 맡기고 있으면 해결이 안 되고,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고 나서는 순간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자신의 힘으로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결 방법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해서, 대입제도를 이원화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해결 방법을 널리 알리고, 지방대의 총장이나 학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안해야 한다.


17. 대학평준화는 과외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고 있다. 


  대학평준화는 실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서울대와 부산대와 전남대를 평준화하는 일을 생각해 보자. 이 세 대학은 교수진, 건물, 시설, 장비, 장학금, 선배 등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르다. 대학을 평준화하려면 이 다른 점을 같거나 비슷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수진을 평준화하려면 서울대 교수를 부산대나 전남대에 가라고 해야 하는데, 누가 가고 싶어 하겠는가? 부산의 집값과 서울의 집값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어느 부산대 교수가 서울대에 와서 가르치려고 하겠는가? 또 많은 돈을 들여서 건물과 시설과 장비를 같은 수준으로 갖추어야 하고, 교수의 연봉과 학생들의 장학금제도도 비슷하게 맞추어야 한다. 


  이렇게 억지로 평준화를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캠퍼스 위치다. 둘째는 그 캠퍼스에서 배출된 선배들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이 있듯이, 다른 모든 조건이 비슷하다면, 유명한 캠퍼스에 잘난 선배가 있는 관악캠퍼스에 입학하고 싶은 학생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입학지원자들이 선호하는 캠퍼스가 생기고 성적순으로 입학생을 선발하면, 입학생들의 수준은 결코 평준화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대학의 평판과 명성에 영향을 미쳐서 관악캠퍼스로 성적이 높은 학생이 몰리는 현상이 생긴다. 그러면 결국 과외문제는 해결되지 않게 된다. 


18. 예상되는 반론과 답변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세 가지 반론에 대해서 미리 답변한다.


  첫째로 학생의 노력이 아닌 추첨으로 합격/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추첨으로 합격/불합격이 결정되는 것과 입시지옥인 현 상태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 생각해 보시라. 또 추첨이 싫은 사람은 경쟁시험으로 선발하는 대학에 원서를 낼 수 있다. 또 엄밀히 말하면, 노력보다는 여러 가지 운(지능, 부모, 재산, 지역, 선생님 등)에 의해서 성적이 더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둘째로 고등학생의 학력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질 것이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평가시험을 쳐서 성적을 비교하면 확실히 지금보다는 성적이 낮을 것이다. 학생들은 장래의 취직을 생각해서 공부할 것이므로, 학력이 그다지 많이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고등학교 커리큘럼을 바꿀 것이므로 지금보다 학력이 높아지는 면도 생길 것이다. 낮아지는 면과 높아지는 면을 비교하면, 높아지는 면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셋째로 대학이 무시험으로 입학생을 선발한 예가 없다. 이 반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오스트리아는 의대와 약대를 제외하고는 입학시험 없이 입학생을 선발한다. 스위스도 무시험으로 입학생을 선발한다고 알고 있다. 이것을 ‘열린대학’이라고 부른다. 140년 전부터 열린대학이 존재했다.(다음넷에서 검색해 보시라.)    


19. 교육개혁 목표와 정책 실패 유형


  교육개혁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교육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교육개혁정책의 결과를 놓고 이 두 가지 기준에 비추어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면 된다. 


  교육개혁 정책이 실패하는 데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교육 관련 당사자들이 교육부의 기대와 다르게 반응해서 실패했다. 둘째는 방법을 실행하기가 불가능해서 실패했다. 셋째는 방법을 실행할 수는 있지만, 그 방법으로는 아무리 해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서 실패했다. 교육개혁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은 먼저 교육 관련 당사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해 보고, 실행 가능한 정책인지 검토해 보고,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정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대개 예측할 수 있다.


20. 교육개혁 토론


  텔레비전에서 가끔 교육개혁에 관한 토론을 하는데, 토론자들은 두 시간 동안 누구나 다 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늘어놓거나, 그림의 떡인 다른 나라의 사례를 가르쳐 주거나, 교육이상을 들먹이기만 한다. 정작 중요한 교육개혁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제안도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 토론이 끝나도 남는 성과는 없다. 나는 교육개혁 토론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늘 답답하고 허탈하다. 앞으로는 교육개혁방법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아무 방법도 제안하지 못하는 교육전문가들은 토론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교육전문가와 교육개혁전문가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경영학 교수와 기업인은 서로 다르므로 구별해야 하듯이, 교육전문가와 교육개혁전문가는 서로 다르므로 구별해야 한다. 교육개혁 토론에는 교육개혁전문가가 나와야 한다. 아무 방법도 제안하지 못하는 교육전문가는 교육개혁 토론에는 쓸모가 없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듯이, 교육개혁 정책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을지 검토해서 그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개혁 토론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토론자들은 그 방법들을 놓고 토론해야 한다.


고등학교 리엔지니어링


21. 공교육 부실의 개념


  사람들은 흔히 ‘공교육 부실’이라는 말을 쓴다. 사교육이 성적순 올리기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교육에 비해서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공교육 부실의 의미를 다르게 정의하여 사용한다. 나는 중고등학교의 교육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관점에서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영어과목을 생각해 보자. 중학교 고등학교 합쳐서 6년을 배우는 과목이 영어다. 그런데 보통의 고등학교 졸업자는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심지어는 발음을 알아듣지도 못한다. 6년을 열심히 공부해도 외국인과 말도 할 수 없는 영어교육이 과연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것을 두고 ‘영어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한다. 


  또 예를 들어 국어과목을 생각해 보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이 충분할까? 시험성적순 올리기를 주로 하느라고 암기와 문제풀이만 하였을 테니, 이런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국어교육을 충분하다고 말할 수 는 없을 테니, 나는 이것을 두고 ‘국어교육이 부실하다’고 말한다. 


  다른 과목들에 대한 교육도 충분하지 않다. 수학, 체육이 특히 그러하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충분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불충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불충분한지 먼저 논의해 보아야 한다. 


22. 대입제도를 먼저 바꾸고 그 다음에 커리큘럼을 바꾼다


  경쟁시험 대입제도 아래에서는 대학입학이 최우선이다. 현재의 커리큘럼은 대학입학에 최적화되어 있다. 만약 커리큘럼을 바꾸면 학생들의 성적순 올리기에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중고등학교의 교육이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커리큘럼을 바꿀 여지가 별로 없다.


  무시험-추첨 대입제도를 도입하여 대입제도를 이원화하고, 내신성적제도를 없애면, 비로소 중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새 커리큘럼은 과목별로 충분히 배울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경쟁시험 대학에 입학할 학생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23.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누어 가르치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6년~89년을 생각해 보면, 1년에 대략 22개 정도의 과목을 배웠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커리큘럼이 합리적일까? 나는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학생들은 오후 2시면 일과가 끝나고, 그 때부터는 특별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면 이런 특별활동을 할 시간 여유가 없을 것이다.


  배우는 과목을 줄일 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마다 필요한 것이 다르므로, 일괄적으로 줄일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으로 나누자고 주장한다. 한편으로 수업시수를 늘려야 하는 과목(예를 들면 체육)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없지만 새로 개설해야 하는 과목(예를 들면 요리)도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배울 과목을 조정함으로써 시간 여유가 생긴다. 그러니 고등학교의 새 커리큘럼이 경쟁시험 대학에 입학할 학생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중학교에는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의 구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더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주장을 하지 않는다. 


  필수과목이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배우고 합격해야 하는 과목이다. 선택과목이란 배우든 안 배우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데에 아무 상관이 없는 과목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선택과목은 단 한 시간도 안 배우고 졸업해도 된다. 


  어떤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정할 것인가? 나는 국어, 수학, 체육,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추천한다. 영어를 필수과목에서 제외한 것이 조금 의외일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아래의 30번 글에서 자세히 말할 것이다. 


  네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선택과목이다. 음악, 미술, 정치, 경제, 지리, 물리,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세계사, 제2 외국어, 윤리, 한문, 고전문학, 작문 등등...... 


24. 새로 개설할 과목


  만약 자격시험-추첨 대입제도가 도입된다면, AP 과목들을 새로 개설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새로 개설해서 배울 과목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남녀평등의 세상에서는 남자도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또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가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요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요리 과목을 배우다가 아예 이 분야의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장기자랑을 할 때 춤을 멋지게 추는 사람을 보면 흥겨움을 느낀다. 그런데 춤을 배울 만한 데가 따로 없다. 댄스 과목을 개설하여 춤을 배운다면, 일평생 유용하게 쓸 만한 기술이 될 것 같다.


  심리상담이 필요한 사람이 많이 있다. 병원에 가서 정신과의사에게 심리상담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쉽지 않은 일이다. 심리학을 교재로 만들어 배우면, 자신에게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조금 진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치료는 정신과의사에게 받아야 한다. 심리학교재 외에도 자기계발서를 배운다든지, 육아법을 배운다든지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25. 교육의 업그레이드


  대학별 본고사가 실행되면, 본고사를 치르는 과목은 몇 개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고등학교의 커리큘럼은 대학입시와 상관없이 정해질 것이다. 특히 선택과목은 교사 1인당 가르치는 학생수는 지금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고, 수강하는 학생들의 집중력도 지금보다 현저히 높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등학교 교육 내용을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서 가르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음악과목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는 노래 몇 곡 배우고, 악기 한두 번 다뤄 보고, 이론 몇 가지 배우고, 음악사에 대해서 조금 배우다가 시험 쳐서 내신성적을 산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음악교사의 결정 여부에 따라 수업시수도 늘어날 수 있고, 배우는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가령 내가 음악교사라면, 학생들에게 3년 내내 기타를 가르칠 것이다. 기타를 배우게 되면, 악보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고, 노래도 즐겨 부를 수 있을 것이고, 자연히 가수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일렉트릭 기타를 배움으로써 밴드를 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타를 배우는 데에 전력투구해서 국악이나 음악사를 못 배운다 하더라도 별로 아쉬울 것은 없다. 


  또 예를 들어 내가 체육교사라면, 여러 운동 종목을 조금씩 해 보는 대신에 학생들이 체력을 기르는 데에 중점을 두어 가르칠 수도 있다. 매일 1시간의 체육시간에 학생이 각자 좋아하는 종목의 운동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몸짱 코스를 만들어도 되고, 에어로빅을 전문으로 가르칠 수도 있다.


  교사가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 하는 것은 교사 혼자만의 결정에 따를 수는 없다. 몇 개의 안을 놓고 교장이 승인하거나 혹은 학부모가 승인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 내용을 바꿈으로써 학생들에게 보다 도움이 되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 


26. 예상되는 어려운 점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을 나누고, 이것을 실제로 운영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과목별로 교실을 배정하는 것과 선택 과목이 겹치지 않도록 학생이 시간표를 짜는 것이 간단할 리가 없다. 수업이 없을 때 학생이 있을 곳을 마련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기타 사항


27. 체벌문제


  가끔 체벌문제가 발생한다. 지금은 허용도 아니고, 금지도 아니라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다. 체벌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체벌이 아니면 교실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필요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 심하지 않은 체벌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체벌은 폭력행위로서 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점수제를 도입하여 체벌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의견이 서로 다른 이들이 토론을 통해서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핀란드의 유치원 교육을 취재한 것을 보았더니, 여러 어린이가 공동체로 생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고 한다. 체벌을 원천적으로 없애려면 가정과 유치원에서부터 말로 통제가 되어야 한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교실에 가득하다면, 체벌 없이 어떻게 교실의 질서를 유지하겠는가? 이것은 당장은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체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보다는 회초리가 초등학생들을 더 쉽게 훈육할 수 있게 한다. 단, 선생님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회초리로 학생을 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때리는 횟수에도 제한을 두어야 한다. 중학생 이후로는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었고, 체벌은 반감을 생기게 한다. 체벌 대신에 상담이나 노동을 부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 대신 학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분위기가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규칙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몹시 어려움을 겪겠지만, 학생을 한 사람의 미성숙한 인격체로 보호하고 대할 필요가 있다. 


28. 두발자유화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각자 최대한 잘 차려 입고 나간다. 그것이 예의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멋지게 꾸미고 나감으로써 자아존중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입시교육에 억눌려서 살고 있으므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고 있다. 이 억눌린 마음이 패션을 통해서 분출될 수도 있다. 성적이 좋고 만사가 잘 풀리는 학생들이야 자신감과 자존감이 충분할 테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자신감과 자존감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것과 옷을 이렇게 저렇게 골라 입는 것은 자아존중감을 채우는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통기한이 다 지난 고정관념으로 학생은 머리가 짧은 단정한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학생들의 시도를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헌법에는 국민이 가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학생들은 머리를 자유롭게 기를 권리가 있다. 내가 교육부장관이라면, 일부러 머리를 염색하여 모범을 보이면서 두발자유화를 실행할 것이다. 


29. 영어방송국보다는 영어파일 공유가 더 낫다


  이명박 대통령은 영어방송국을 설립해서 영어교육에 도움을 주고 영어사교육비를 낮추고자 한다. 텔레비전 방송은 실시간으로 시청하거나 녹화해서 시청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라면, 영어 강의를 녹화해서 동영상파일을 만들고, 이를 웹하드나 P2P로 무료로 공유해서, 누구나 자신이 편리한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영어 강의에만 이 방법을 적용할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과목에도 이 방법을 적용하여 강의 동영상파일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 이 강의 동영상파일을 이용하면,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공부를 보충해 줄 수 있다. 방과 후 보충수업은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지만, 되풀이해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의 동영상파일은 강력한 장점이 있다. 


  수십 종의 강의 교재를 새로 만들고, 이것을 강의해서 동영상파일로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 대통령이나 교육부장관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이 일을 할 수도 있다. 몇 백억 원을 모으면 되는데, 가구당 10만 원 정도면 내면 된다. 수십 종의 강의동영상을 10만 원에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습득교육


30. 영어습득이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의 목표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교육은 대학입시용이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6년을 배워도 영어가 습득되지 않고 있다. 영어를 습득하려고 하는 사람은 학교 교육과 별도로 공부해야 한다.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영어습득 공부는 대학 이후로 미뤄지곤 한다. 대학입시에 영어과목이 있는 것이 영어습득을 방해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를 통해서 영어를 습득하고 있고, 국내에서 하는 공부만으로 영어를 습득하는 사람은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하며, 성공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영어를 배워서 사용하는 용도를 생각해 보자. 영어로 된 책이나 신문이나 문서를 읽는다. 외국인을 만나서 사업상의 대화를 나눈다. 외국여행을 한다. 외국 영화를 감상한다. 대략 네 가지 빈도가 높은 용도가 있다. 영어로 글을 쓰거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빈도가 낮은 용도다. 이 다섯 가지 용도를 생각한다면, 중고등학교의 영어교육의 목표는 영어습득이라야 한다.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에서 행해진 영어교육이 영어습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느냐 하면,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영어교육은 부실했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영어교육은 교재에서 방법까지 모두 바뀌어야 한다. 영어를 대학입학시험과목에서도 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입시와는 무관하게 영어습득에 주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 입시공부를 안 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영어능력을 키우는 효과를 낸다.


31. 신돌이학습법의 영어 귀 뚫기


  사람이 모국어를 습득할 때는 듣기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말하기가 듣기 능력을 가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듣기에서 시작해서 말하기를 하게 되고, 그 다음이 읽기 쓰기이다. 영어를 습득하자면, 같은 방식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마도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나는 영어습득의 방법을 알기 위해서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신돌이학습법]을 읽고 이것이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자막을 가리고 영화를 보는 방법’이 나와 있다. 자막을 가리고 하루에 2시간씩 외국영화를 보는데, 대략 6개월이면 영어 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륙효과’이론이 나오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를 얼마쯤 달려야 하듯이, 영어 귀가 뚫리기 위해서는 자막 없이 영어를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32. 영어 귀 뚫기 원리


  [신돌이학습법]을 읽고, 나는 왜 그렇게 하면 영어 귀가 뚫리는지 원리를 알고 싶었다. 


영어를 습득하려면,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미국에서 자란 아기, 이민자, 어학연수생이 영어를 습득하는 데에 성공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확신이 든다. 외국영화를 보는데 자막을 가리면, 오로지 영어만 들린다. 그것이 바로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 속에 사는 것이 된다. 수백만 원을 들여서 어학연수를 가는 것과 자막을 가리고 외국영화를 보는 것이 서로 같은 원리인 것이다. 


  일단 영어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면, 우리가 모국어를 습득한 것과 같이 차례로 말하기 읽기 쓰기를 습득할 수 있게 된다.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는 것은 이 때부터 도움이 된다. 


  [신돌이학습법]에 나온 방법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영어능력을 충분히 습득할 수도 있다. 또 똑같이 중학교부터 시작했다 하더라도 사람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영어습득에 걸리는 시간이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영어교사의 할 일은 낙오하는 학생을 격려하고, 우수한 학생에게 다음 단계의 공부를 하게 해 주는 것이다. 내신성적제도가 없어짐으로써 우열반을 편성해도 무리가 없어지고, 각 학생의 실력에 맞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위의 23번 글에서 나는 영어를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으로 넣지 않았다. 또 경쟁시험 대학이 영어를 입시과목에서 제외하기를 바란다. 영어능력이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영어를 배우게 되어 있다. 기본적인 수준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높은 수준으로 배우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각자 필요에 따라 배우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장하는 원리가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대규모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봐야 한다. 이 실험은 아직 해 보지 않았다. 나 자신도 아직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몇몇 성공 사례가 잡지 등을 통해서 보도되고 있다.


기타 사항


33. 어른이 되기 전에 집중력을 습득해야 한다


  나는 집중력을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을 지속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집중력을 측정하려면 시간을 재면 된다.


  [집중력이 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에 보면, 집중력은 수동적 집중력과 능동적 집중력의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집중력은 이미 갖고 있지만, 재미를 느끼느냐 마느냐에 따라 집중력을 오래 발휘할 수도 있고, 짧게 발휘할 수도 있다. 영화나 게임 같은 것은 재미가 있기 때문에 쉽게 집중할 수 있는데, 이것은 수동적 집중력이다. 하지만 공부나 문제풀이 등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운데, 이것은 능동적 집중력이다. 능동적 집중력은 의도적으로 길러야만 한다. 사람은 저마다 서로 다른 집중력을 갖고 있다.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가지면, 우리는 장시간 일을 해야 한다. 짧아도 4시간, 길면 12시간 이상 같은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의 점원 직업이 쉬워 보여도, 집중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쉬울 수가 없다. 소설가가 되려면 하루에 8시간씩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 


  고등학교에서 학업에 낙오하는 학생이 절반은 되어 보인다. 모든 고등학생이 성적이 우수할 필요는 없지만, 낙오하는 학생은 학습에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읽기 시간을 늘리고, 쓰기 시간을 늘리고, 외우기 시간을 늘리고, 문제풀이 시간을 늘려라. 그러면 어른이 된 이후에도 웬만한 것들은 배울 수 있게 된다.


34. 대학특성화


  만약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부산대 전자공학과에서 가르친다면, 학부 수준에서는 대학특성화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학과가 좀 더 세분화되는 대학원에서나 대학특성화가 가능하다. 


  대학원이 특성화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사교육비경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학원의 명성과 학부의 명성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서 대학원이 특성화되어도 학부의 평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35. 대학의 기능과 대학진학률


  대학은 교육과 연구 두 가지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연구에는 돈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대부분 재정이 열악하다. 그러니 연구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교육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교육수준을 높이겠다면, 서울대 교수보다 더 잘 가르치는 외국대학 교수를 모방하면 될 것이다. 이것이 지방대가 살아남는 길이다.


  96년도에 본 어느 주간잡지에 따르면, 미국에는 1400개 이상의 주립대학급 대학이 있고, 대학생 이상의 재학인구가 29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와 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84%나 된다고, 진학률이 지나치게 높다고 하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남들이 다 대학을 졸업하는데, 나만 대학진학을 안 하는 것은 내게 불리하다.


맺음말


  세계경제가 어려워서 대공황이 오니 마니 하는 판국이라 올해는 교육개혁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교육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계가 마음에 걸려서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 끝에 이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이 쉽게 잘 나와 주면 좋으련만, 요즘은 글쓰기가 잘 되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길고 긴 글쓰기가 끝나서 기분이 너무 좋다.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방법을 제시했을 뿐이고, 방법을 실행할지 말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결정할 일이다. 사교육비문제로 고통을 당하든지 사교육비문제를 해결하든지 그건 여러분의 결정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