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근혜를 보며 떠오르는 한마디는 '소탐대실'이다. 마치 소잡는 칼을 가지고 연필을 깍고 있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상속받은 것이든 스스로 개척한 것이든, 박근혜는 압도적인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보통의 정치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한국같은 나라에서 여성의 몸으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압도적인 정치적 자산 때문이 아니었던가.

나는 박근혜가 보유한 정치적 자산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것들을 추진하는데 쓰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하겠다고 했었다. 양극화 해소와 복지, 경제민주화와 사회통합, 한 단계 더 발전된 국가, 남북긴장 해소 등등. 나는 박근혜가 북한을 요리해서 개성공단을 재개시키고, 전두환을 서슬이 퍼렇게 압박하여 항복을 받아낼 때 기대에 부응하는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우리 시대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밖에 없었고, 박근혜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 박근혜는 우려하던 모습 역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야당을 대화가 아니라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제압해야할 대결상대로 파악하고, 정작 자신이야말로 가장 정쟁에 골몰하는 주제에 민생타령을 읊어대고, 껄끄러운 인사를 공작의 냄새 물씬 풍기면서 쳐내고, 합법적인 권한을 사적인 권력으로 착각하는 모습이 그렇다. 바로 박정희 따라하기와 유신독재의 망령이다. 진정 박근혜에게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의 딸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일까?

우리 시대에 더 이상 박정희는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다. 세종대왕이 아무리 위대하다한들, 민주공화국에 조선의 군주가 필요할리가 없지 않는가. 박정희의 유일한 공은 당대 한국 사회의 올바른 발전 방향과 전략을 제시했다는 것에 있다. 바로 자본주의적 고도 성장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 이것 말고 박정희가 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유일한 공마저도 지금 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사실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박정희로부터 배워야할 것은 털끝만큼도 없는 것이다. 2013년의 박정희는 그저 시대 구분도 못하는 또라이일 뿐. 

박근혜는 해야할 일이 정말 많은 사람이고,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박근혜가 자신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을 정말로 효율적으로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십수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좀처럼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계 상황을 돌파해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런점에서 박근혜가 문재인을 제치고 당선된 것은 대한민국에 다행이라 할 것이고, 그 자체로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박근혜가 아버지를 복권시키고 아버지의 시대를 재현하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데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소모시키고 낭비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불행이고 매우 아까운 일이 될 것이다. 박정희의 복권은 과오를 정당화시키고 미화하는 것으로 결코 성공할 수 없고,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 노릇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의 유일한 공마저 부정당할 것은 뻔한 이치다.

박근혜가 좀 더 현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럴려면 아버지에 대한 미련부터 끊어내길 바란다. 박근혜의 삽질이야 야권지지자의 한명으로써 환영할 일이겠지만,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불행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