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인류 역사상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며 인권을 보장받고 사는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지금처럼 무신론이 득세하며 과학과 이성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에 차있었던때도 처음인듯 하다.

물론 지성인이나 학자에 한정하자면 세계 1차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인간의 이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꺽이고 절망했던 적도 있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의 교훈을 잊고 다시 인간이 이룬 과학의 성취에 빠졌으며 1960대이후의 경제발전과 성장은 물질이 주는 쾌락과 안락함에 사람들로 하여금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물질에 대한 목마름은 더 많이 가지려는 무한한 경쟁과 탐욕속에서 바닷물을 들이키듯이 물질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목마른 사람들이 되어갔으며 물질이 풍요로와지는 곳은 곧 사람의 마음도 타락되어 갔다.

 

이러한 물질의 풍요속에 마음이 공허해진 일단의 사람들은 선에 심취하기도 하고 한때는 히말라야나 사막을 찾아서 트레킹을  하면서 히말라야의 태초의 고독이 주는 자유로움과 새로움을 맛보기도 하였지만 알려지다시피 이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히말라야는 돈만 있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이 되었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곳에 사는 순박하고 맑은 눈으로부터 충전해가던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의 눈을 돈을 쫒아 살아가는 사람들로 변질시켜놓았다.

 

인간은 자신들이 이룬 거대한 문명의 껍데기를 보면서 자위하고 신을 모독하고 니체는 그래도 신은 죽었다라고 외쳤지만 도킨스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외치고 있다.

신은 죽었다라고 니체가 외친 이유는 단순히 신에 대한 모독이나 비난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결과였지만 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언명은 소위 오늘날의 과학의 발전과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얄팍한 시건방짐일 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의 지혜로운 것보다 낫다고 하였고 나의 생각과 너희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여

인간과 하나님의 차원이 다른 부분을 말하면서 인간에게 겸손을 요구하였지만 인간은 가인처럼 오히려 하나님게 대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이 그랬듯이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난 1차 걸프전 비용을 미국의 사회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자.
빈곤 아동 일 년 무료 급식비( $ 4.8 billion) : 3일 이하의 지상전 경비
빈곤충 산모와 아기의 일 년 보조비 ( $1.4 billion) : 하루 아하의 지상전 경비
집 없는 사람들의 급식 및 임시 보호처 일 년 제공비($ 200 million) : 공중전 10시간 비용
성인 문맹 퇴치를 위한 일 년 경비($ 192 million) : 9시간 동안의 공중전경비

이게 독똑한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행한 내역이다.

혹자는 그건 부시나 네오콘의 탐욕이다

그리고 부시는 보수 기독교가 지지하는 인간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쪽에서 지지하는 오바마는 얼마나 다를까?

아니 무신론의 러시아에서 체첸이나 아프간에 쏱아부은 돈은 또 무엇일까?

 

성경은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인간은 어리석고 죄인이라고 말한다.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깨달을 때 겸손해지고 겸손할 때 잘못을 조금이라도 고칠 수 있으며 설령 고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신의 자비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