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의 이중잣대에 의한 편파 왜곡 보도는 광우병 사태에서 정점을 찍었죠.

당시 한미FTA 찬반논란 논쟁에 참여하셨던 분들, 그리고 광우병 논쟁에 참여하셨던 분들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그 광우병 논쟁에 참여하면서 광우병 관련 지식을 어디서 취득하셨는지. 바로 조중동입니다. 뭐더라? 100도씨 끓은 물에서도 죽지 않는다는 병균....(검색은 귀차니즘이 동원되어 생략)의 보도를 동아일보에서 최초로 했고 그리고 그 보도를 받아 (아마도)조선일보에서 확대재생산 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권 때의 일이죠.


물론, 저야 노무현과 노무현 정권 그리고 친노에 대하여 지극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 혐오감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만 내가 가진 혐오감을 표출할 때 반드시 지키는 것, 두가지가 있죠. 최소한 팩트에 의하여 기술하자, 그리고 그 혐오감과 동등한 사건이 다른 정치 집단에서 발생했을 때 동등한 혐오감을 표출하자....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관련한 광우병 보도에 대한 조중동의 언론 총공세는 뭐, 그건 그럴 수 있습니다. 노무현이 국민 건강은 도외시 하고 쇠고기 협상을 날림으로 한건 사실이니까요. 문제는 그 날림으로 한 쇠고기 협상을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부시 알현의 조공'으로 이명박이 미국으로 날라가는 비행기 안에서 수시로 협상팀에 전화를 해 '협상할 것을 독려했다'라는 사실이죠.


이 사실은, 이명박이 취임하면서 고려대=동아일보, 서울대=조선일보라는 언론사의 주요 인맥 상, 일등 신문인 조선일보를 젖히고 감히 고려대 따위 출신 주제에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것에 분노한 조선일보가 그 내막을 샅샅히 보도하면서 밝혀진 사실이죠.


그리고 이명박 정권 내내 조선일보는 쇠고기 관련 협상과 광우병에 대하여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에 대한 이중잣대에 대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이 일어나자 조선일보는 사고를 통해 '우리는 쇠고기 협상 관련 논조를 바꾼 적이 없습니다'라고 구차한 해명을 했던, 웃기지도 않은 사건이 있었죠.


뭐, 꼭 조중동 뿐 아니라 그 반대 포지션에 있는 흔히 '한경대'라고 불려지는 언론들조차 침소봉대식 팩트 보도가 일상화된 상태니 믿을만한 언론이 별로 없습니다만(저는 개인적으로는 CBS노컷 뉴스와 경향신문-이 신문도 노빠라는 주제만 언급되면 논조가 괴괴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그리고 한국일보를 그나마 믿고 봅니다.) 어쨌든 크로스체킹을 하지 않고 조중동 보도를 톡 따와 '팩트로 주장하면' 망신살이 '16대조상은 물론 3대 후손에게까지 미칠 것'이라고 감히 충고드립니다. 언더스탠?


뭐, 이번 채동욱 사건에서 조선일보는 또 한번의 이중잣대를 보여주었네요. 4년 전에 ㄴ장관 혼외자 문제를 보도한 다른 언론을 '하수구 저널리즘'으로 비난한 조선일보의 전력을 꼬집은 기사 하나 인용하죠. 


'하수구 저널리즘?'

똑같이 조선일보를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맞받아치는 것은 상수도에 대한 모독이자 하수도에 대한 배반행위입니다. 조선일보, 너희는 그냥 암덩어리 그 자체입니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기생하는, 반드시 제거해야할 악성 종양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감정을 표출하자면 조중동을 신뢰하는 군상들.... 같은 동포 먹기 쪽팔리니까 그냥 쓰레받이에 담아 동해 바다에 전부 처넣으면 하는게 제 소원입니다. 배달민족 동포 수준 좀 올리고 싶다는거죠. 원.... 믿을게 따로 있지.... 

조선일보가 6일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하면서 이 신문이 4년 전 공직자의 혼외자 보도와 관련해 ‘하수구 저널리즘’이라 비판한 칼럼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 기사로 “채 총장이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던 1999년 무렵 현재 부인이 아닌 ㄱ씨와 만나 2002년 이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라며 “이는 청와대의 채 총장 인선·검증 과정이나 지난 4월 초 국회의 인사청문회 때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 후보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될 수 있는 혼외자녀 문제를 숨기고 국민을 속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2009년 11월 한 중앙일간지가 ㄴ장관의 혼외자 문제를 보도했을 때 강하게 비판한 사례가 있다. 신문은 당시 ‘그래서 어떻다는 말이냐?”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이 장관의 문제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혼외 딸’ 논란과 비교했다. 신문은 “(1994년 당시) ‘파리 마치’라는 주간지가 파파라치가 찍은 미테랑 부녀의 사진을 게재했다”라며 “현직 대통령의 숨겨진 자식을 보도한 대특종이었지만, 잡지에 쏟아진 시선은 냉랭했다. 르피가로는 “하수구 저널리즘”이라 쏘아붙이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신문은 이어 “프랑스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도 공직자의 사생활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그런데 불문율이 ㄴ장관 사건에서 깨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런 문제들은 ㄴ장관이 알아서 해결할 개인적 이슈에 불과하다”라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로선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은 그런 사생활의 문제가 ㄴ장관의 직무에 영향을 미칠 ‘공적(公的) 이슈’냐 하는 점이다”라고 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