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트레이드 마크가 <법과 원칙> 인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죠. 그런데 어제 김한길과의 회담 내용을 보니 박근혜는 정작 <법과 원칙>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채동욱에 대한 감찰은 적법한 절차에 따른 조치이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지요. 

원칙이라는 말에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의 규칙' 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고, 규칙을 일관성있게 적용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법과 원칙> 에서의 원칙은 명백히 후자의 의미이죠. 이미 규칙을 의미하는 법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굳이 원칙이라는 단어를 따로 병치를 시킨 것은 그래서입니다. '원래의 규칙'이라는 의미라면 동어반복이 될 뿐이죠.  

보통 동일한 사안에 서로 다른 규칙을 적용할 때, 우리는 원칙이 없다 라고 말을 합니다. 무원칙한 행정이라는 말이 '적법하지 않은 행정' 이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왔다 갔다하는 행정'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원칙이란 "규칙을 적용하는 규칙이나 메뉴얼" 이라는 의미이겠지요.

<법과 원칙> 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느냐면, 법대로만 통치를 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법률을 원칙없이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의 폐해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독재자들이 흔히 '법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냐' 라는 말을 즐겨쓰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법대로만으로는 부족하고, 원칙 역시 지켰느냐까지 따질 수 있는 사회인 것이죠. 

원래 권력이란게 다른 것이 아니고 <규칙의 적용권과 해석권> 이 핵심입니다. '권력관계에 있다'라는 말은 서로 다른 사람들간에 규칙의 적용권과 해석권이 동등하지 않다라는 의미이고요. 사회는 결코 법대로만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 규칙을 적용하고 유보할 것이냐와 규칙을 어떻게 해석하여 적용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권력자라고 하지요.

박근혜는 한창 김학의 법무차관인 것으로 의심되는 성접대 동영상이 돌아다니고 언론들이 연루 의혹을 제기할 때, 아무런 감찰이나 조사조치도 취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규칙의 적용을 유보한 것이고, 이 역시 적법한 조치인 것은 맞으니 자체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불법은 아닐테니 당연하지요. 그러나 채동욱 총장에 대해서는 다르죠. 규칙의 적용을 강행한 것이고, 그런데 이 역시 적법한 조치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원칙은 어디에? 정말로 문제가 없을까요?

아무래도 박근혜는 <법과 원칙> 이라는 말을 '법대로'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법과 원칙> 은 결코 그런 뜻도 아니고, 흔히 오해하듯 강력한 법치를 의미하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통치자가 법률을 자의적으로 적용 또는 해석하지 않고 일관성있게 운용하는, <민주적인 통치>에 훨씬 더 가까운 말입니다. 따라서 원칙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함부로  "적법한 조치이니 문제없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나는 규칙을 자의적으로 적용하고 해석하는 독재자에요" 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진배가 없습니다.

저는 박근혜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칭찬받고 성공하길 바랬던 사람입니다만, 이래서는 곤란한겁니다. 우리 사회가 대통령의 그런 자의적인 법적용과 해석을 용납하지도 않을거니와, 이미 그것만으로는 결코 무사하게 돌아갈 수도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랐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말을 태연하게 뱉는 여자가 대통령직에 앉아있는 것은 모두의 불행일 것입니다.

누가 박근혜에게 <법과 원칙> 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제대로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는데, 주위에 늘어선 유신의 떨거지들과 홍위병들이 그럴리가 없겠지요.